사랑의 허비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고후 12:15)
녹취자: 이병두
건물을 지을 때는 기초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건물을 지을 때에는 건물을 견딜 수 있을 정도의 든든한 기반을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조사하고 건물을 짓는 것입니다. 만약에 땅이 물러서 건물을 지탱할 수 없다고 생각이 되면 전봇대 같은 파일을 기계로 땅에 박습니다. 그래서 그 건물을 올려 놓아도 될 정도로 파일을 박고 그 수백개의 파일 위에다 흙으로 덮고 건물을 짓는 것입니다. 파일이 들어가다가 바위를 만나게 되면, 더 이상 파일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파일 위를 잘라내 버립니다. 왜냐하면, 반석에 닿았기 때문에 그 위에 아무리 높은 건물을 올려도 든든하게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많은 섬김의 건축을 하기 위해 기초가 필요합니다. 그 기초는 하나님 사랑을 먼저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하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희랍어로 ‘아가페토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여’하는 것으로 구약에 나오는 히브리어인 ‘하시드’라는 말의 번역입니다. 곧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들이여’, ‘하나님의 사랑 혹은 자비를 입은 자들이여’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교사의 가장 중요한 자격은 ‘먼저 영혼을 사랑하기 전에 주님의 사랑을 먼저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던 예수님의 제자들을 만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잠시후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실 것이고, 이 세상에는 힘없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루살렘의 많은 양떼들만 남을 것입니다. 그때에 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질문을 하신 후 예수님의 양떼들을 제자들에게 맡기고 떠나신 것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매우 무책임한 것 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일 양떼들을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이 아니라, 이제 곧 이 양떼를 맡기고 승천하실 예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아마 우리 중에도 사랑의 결심으로 교사의 일을 시작했다가 포기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불쑥 교사를 하겠다고 신청했다가 일년도 채우지 못하고 집어치우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이것은 모두 어려운 환경을 만났거나 힘든 여건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 주님께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영혼들을 사랑하고 끝까지 희생 할 기초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크고 넓은 사랑을 깨달은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교사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입니다. 시련이 오거나 어려움이 온다고 할 지라도 주님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이 섬김의 동기이기에 결코 그것 때문에 영혼들 섬기는 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교사는 화려하지도 않고 유명하지도 않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도 않는 그야말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 때문에 이 길에 들어선 사람들입니다. 한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어도 그 사랑이 식어지면 교사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 영혼을 돌보는 사역을 감당하는 것은 매우 힘겨운 일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 사역의 가장 중요한 기초는 매일 매일 그리스도를 향한 현재적인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전에 주님께 사랑을 받아서 이제는 아주 뚜렷하게 ‘내가 영혼들을 위해서 살고, 영혼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한다’라는 뚜렷한 결단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그 뜨거운 결단과 함께 영혼을 계속 사랑하며 교사의 일을 하면서 경험하는 모든 시련과 어려움들을 이기며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금도 매일 매일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사로 섬길 때 사람의 위로와 격려는 우리에게 커다란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흘러가는 잠깐 동안의 위로일 뿐입니다. 주님께로부터 오는 직접적인 위로, 주님께로부터 오는 직접적인 사랑과 놀라운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고난과 역경을 이기며 영혼을 섬기며 살아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자신의 힘으로 영혼을 사랑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교사로서 매우 커다란 교만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이 있어야 사랑할 수 있고, 주님이 주신 사랑이 있어야 영혼들을 향하여 이 사랑의 섬김을 계속해 나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장자크 루소는 자신의 교육서인 ‘에밀’ 속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연주의자였던 그는 ‘아이에게 선과 악에 대해서 하루 종일 가르치는 것 보다는 오히려 숲속에서 한시간을 뛰놀게 하는 것이, 선과 악에 대해서 더 잘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연주의자가 아니라 은혜주의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의 말을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선과 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 아이에게 한학기 동안 가르치는 것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그 은혜의 품안에서 뛰놀 수 있도록 한시간 동안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그 모든 것 보다 낫다’라고 말입니다. 선생님이 목사님이 전도사님이 십자가에 대해서 목이 터져라 설교하고 예수님이 너의 죄 때문에 대신 죽었다고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믿어지지 않던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선생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에 감격하는 눈물을 보면서, 이제 것 자신들이 들었던 선생님들과 목사님이 가르쳐준 그 성경말씀이 진리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을 위한 가장 훌륭한 교재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감격해 하는 교사의 얼굴, 교사의 표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혼을 맡기셨습니다. 영혼을 무엇하라고 맡기셨습니까? 한편으로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라고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 속에는 구령의 열정이 계속 타올라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내 앞에서 올망졸망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아이들에게 만족하지 않고, 그 영혼들 중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고, 사실상 거듭나지 아니한 아이들을 깊이 살피며 그 영혼들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들이 자신들이 목양하는 아이를 위해 울지 않으면 아이들은 하나님을 떠나 살면서 피를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들의 기도는 화염검이 되어 우는 사자와 같이 으르렁거리는 사자의 입으로부터 우리의 영적인 자녀들을 지켜 보호해 줍니다. 이 세상에 가장 가엷은 양떼는 기도하지 않는 목자에게서 돌봄을 받는 양떼들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 유창하게 말하지만 그의 목회 사역에는 영적인 무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속수무책으로 양떼들은 악한 마귀의 권세에 노출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의 마음속에서는 먼저 구령에 대한 열정이 타올라야 합니다. 그 영혼들을 위한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미 구원받은 영혼들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영혼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우리는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지식의 성장이고 은혜의 성장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고 한걸음 더 나아가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뜨거워지는 사람이 되도록 돌보는 것이 바로 영적인 성장을 위하여 돌보는 것입니다.
(예화) 우리는 어렸을 때 신체검사를 일년에 한번씩 받았습니다. 나이가 든 지금은 건강검진하면서 신체검사를 해봐야 별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키가 줄었습니다. 그래도 174cm는 나갔는데 지금은 172cm라고 합니다. 2cm나 줄어들었습니다. 앞으로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한창 자랄 때 성장통을 느끼기까지 하면서 아이들이 쑥쑥 자랍니다. 제가 중학교 1학년에서 2학년 올라갈 때 10cm, 2학년에서 3학년 올라갈 때 10cm 그렇게 2년 동안에 20cm나 자랐습니다. 그 다음에 다시 한 5에서6cm 정도 자랐고, 한번 더 6에서 7cm 정도 자라고 멎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쭉쭉 자라는 것을 보면서 옛날에 배우던 학교 교실에 가보면 ‘저렇게 조그만 책상에서 어떻게 공부했을까?’ 초등학교 다니던 골목에 가보면 ‘그 때는 무지하게 큰 골목이었는데 어쩌면 이렇게 작을까? 집도 그때는 굉장히 높았는데 지금 가보니 조그마한 집들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두 성장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영혼들은 단순히 숫자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얼마나 성장했는가?’ 거기에 달린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돌보는 영혼들이 예전보다 주님을 사랑합니까? 그리고 예전보다 더 좋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욕설을 입에 달고 살고 게임에 몰두하던 아이들이 변하여 정말 주님 사랑하는 아이들로 단정한 아이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는 아이들로 변해가고 있는지 다시한번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역에 있어서 성공을 재는 것이 두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받은 아이들이 우리 학급에서 늘어나는가? 전도되고 있는가? 구원이 불확실했던 아이들이 변화를 받고 회심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 해가 지나면 많이 모였던 아이들을 눈물로 떠나 보내고 다시 반을 나누고 하는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 난다면, 우리는 정말 건강한 사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아이들이 점점 더 성숙해지는가?’하는 것입니다. 정말 아이들이 은혜를 받고 주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으며 하나님의 은혜의 장중에 붙들려서 살아가는가? 고난이 오고 어려움이 오면 기도하는 아이들인가?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알고 그것을 기뻐하는 아이들인가? 예배를 드리는 기쁨,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시고 자기도 하나님을 사랑한다라고 하는 은혜로운 영적인 연합속에서 예수를 믿고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뜨겁게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자라갈 때 우리는 우리의 사역이 성공하고 있는 줄을 아는 것입니다.
사도는 오늘 말하기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나 자신을 허비한다’라고 말합니다. ‘허비한다’고 하는 것은 가치가 적은 것을 위해서 많이 낭비하는 것을 ’허비한다’라고 말합니다. 이 번역은 좋은 번역은 아니지만은 원래 의미는 ’너희들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내가 낭비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렇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단다’ 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뜨거운 사랑으로 영혼들을 돌보는 이 사역에 힘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정말 아름다운 교사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만나 보십시오. 그 사람의 인생을 움직인 것은 돈이나 명예나 외모 이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움직인 그 이면에는 반드시 그에게 감동을 준 스승이 있고 감화를 준 위인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비록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볼 수 있는 그러한 위대한 스승까지는 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영혼들에게 깊은 감화를 끼쳐 우리가 영적인 부모로써 아이들이에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이고,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때에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기뻐하시는지를 가르쳐 줄 수 있는 그러한 선생님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영혼들을 사랑과 희생으로 돌봐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심령속에 역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주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부어주실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는 것들을 치워 버리고 장애물들을 멀리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모든 것이고 자기 사랑은 이 교만의 가장 훌륭한 뿌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은혜를 받고 그 말씀 속에서 주님을 만나는 은혜의 감격을 누리는 사람들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바를 내가 먼저 누리고 있고,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바를 내가 먼저 하고 있고, 최소한 그렇게 할려고 몸부림 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교역자들에게나 동역자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좋은 예배자였던 적이 없는 예배 인도자와 훌륭한 설교 청취자였던 적이 없는 유능한 설교자와 간절히 기도해 본 적이 없는 기도 인도자와 교회의 치리에 복종해 본 적이 없는 교회의 당회장입니다. 모든 가르침은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늘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선생님은 무슨 공과를 가르치든지 항상 ’너희 어저께 친구들을 위해 선생님을 위해 기도했니?라는 말로 시작을 합니다. 늘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생님들은 ‘너희 친구들 중에 예수 안 믿는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했니?’ 라는 질문으로 공과를 시작합니다. 그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언제나 모든 공과의 결론은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은혜를 받는 진실한 예배자 기도자 전도자 그리고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이 먼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이 깨뜨려지는 사람들에게 그 마음에 사랑으로 역사하십니다. 모진 채찍질로 노예를 다스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말 하나님의 사랑에 묶인 사람이야말로 채찍질을 당하며 두려움 속에 떠는 노예들 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줄은 노예의 밧줄보다 훨씬 더 강해서 주님 사랑의 줄에 묶인 사람들은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고 영혼들을 위하여 헌신 할 능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영혼들을 가르칠 때 가장 훌륭한 교재는 하나님의 불 붓는 사랑에 붙잡힌 선생님 그 자체가 가장 훌륭한 기도인 것입니다. 그 분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주님의 사랑을 보고, 그 분을 통해서 믿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그 분을 통해서 자신은 이길 수 없는 시련을 함께 이기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이 많이 가르치고 섬겨왔지만, 정말 우리가 처음 교사로 부름을 받아을 때의 그 기초를 지금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지를 물어봐야 합니다. 정말 예전처럼 뜨겁게 주님 사랑하며 영혼을 돌보고 그 영혼을 위해서 즐겨 말씀을 전하고 내가 올바르게 살아서 그 진리가 무엇인지를 영혼들에게 보여 주는 것 그 이상 소중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우리 홀로 버려두시는 것 같아도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지켜보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영혼들을 위하여 섬기고 희생하고 봉사하는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남들이 모르는 놀라운 위로의 은혜를 교사들에게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화) 지금도 처음 교사했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 어쩌면 그렇게 말을 안듣는지 공과공부를 마치고, 예배을 드린 후에 점심을 먹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개울 하나를 건너고 작은 산 모퉁이 하나를 돌고 기찻길 굴다리를 지나야지만 우리집에 이릅니다. 한 20분 이상 걸어가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매주일 밥먹으러 갈 때 마다 울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아이들은 변화되지 않을까?’ 총각 집사때의 일이었습니다.
(찬송) 영혼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다면, 내가 어디에 있든지 어떻게 살든지, 또 무엇을 견디게 되든지 나는 관계치를 않노라. 잠을 자면 저들을 꿈꾸고 잠을 깨면 첫째 생각이 잃어버린 영혼들이라, 잃어버린 영혼들이라
눈물을 한참 쏟으면서 집에 가면 밥맛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마른 막대기 같은 인간을 통해서 영혼들을 변화시키시고 마침내 교사 하다가 목회의 소명까지 받게 되어서 예기치 않은 길을 걸어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우리들이 가르치는 이 아이들을 절대로 하찮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 아이들 중에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이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사람이 혹은 요한 칼빈과 같은 사람이 아니면, 그들보다 더 훌륭하게 이 세상의 역사를 움직일 위대한 인물이 나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의 사랑을 남보다 더 많이 받게 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영혼들을 돌보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매일매일 영혼들 때문에 영혼을 섬기는게 아니고, 나를 대우해 주는 교회학교를 보면서 영혼들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동기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있지 않고 아무도 볼 수 없는 우리 안에 숨겨진 하나님 사랑의 비밀 속에 우리의 소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전보다 더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부르심을 감당해 나가는 사랑스런운 교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조금만 더 참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칭찬하실 것이고, 그리고 조금 더 세월이 흐르면 교회학교에서도 이제 늙었으니까 나가 달라고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열심히 섬길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