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을 수 없는 사랑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7-39).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로마서 중에서도 정수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을 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몇 번째 서랍에 봉투가 있는데, 죽자마자 그 봉투를 열어 보거라.” 그리고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자손들이 그 서랍을 열어보니까 정말 봉투가 나왔어요. 그 봉투에 무슨 커다란 내용이 있나 했더니 ‘내 장례예배 순서지’ 그것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사회 볼 사람, 기도할 사람, 조사할 사람, 다 해 놓고 마지막에 성경본문하고 설교제목까지 자기가 주고 갔어요. 그게 바로 로마서 8장 37절~39절, 제목은 정확히 ‘끊을 수 없는 사랑’ 이걸 가지고 아무개 목사에게 설교를 부탁하거라는 거였죠. 얼마나 이 8장을 읽으면서 받은 감격이 컸으면 유언으로 내 마지막 가는 길에 설교를 해 달라고 했겠습니까? 오늘 이 본문이 바로 그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8장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얼마나 큰 구원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인지를 묘사합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 내어주시고 생명과 성령의 법을 심어주셔서 하나님을 위해 살게 하신 이 놀라운 은혜를 하나님이 주신 것이죠. 그랬는데 오늘 이 마지막 부분에 와서 시인이 이렇게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감사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렇게 하나님이 놀라운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는 시련과 고난을 만날 때에 하나님이 내버려 두시지 아니하시고 그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끊을 수 없이 더 큰 사랑을 매일 경험하며 살도록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와 신앙생활이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단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서 ‘땡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감사는 기도처럼, 찬양처럼 그렇게 감사하는 우리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놀랍게 바꾸어놓는 큰 힘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감사와 신앙생활이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유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하다가 투옥되었습니다. 언제 거기에서 살아날지도 기약이 없는 옥살이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을 바꾸어 복음을 인하여 하나님을 위해 고난을 받게 해주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오히려 그 옥 속에서 낙망하는 대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없이 어찌 찬송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찬송을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이들의 마음속에 놀라운 기쁨을 주시고 오히려 그 옥 속에서 고난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종종 가정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더 어려울 때는 목회자에게 부탁을 해서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목회자에게 심방을 청할 때에 기쁜 일이 있고 좋은 일이 있을 때만 자랑삼아서 목회자를 청하지 말고 이렇게 어려운 고난을 당하거나 매우 받아들일 수 없는 힘겨운 일을 만났을 때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환경을 향한 마음을 놀랍게 바꾸어 놓는 큰 힘이 있습니다. 아무리 인용해도 지루하지 않은 예화가 있지요. 영국의 청교도들이 본국의 박해를 못 이기고 재산과 모든 집을 버려두고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삶이 만만하지가 않았습니다. 예배당부터 먼저 짓고 학교를 짓고 비로소 집을 짓는 신앙을 가지고 새로운 땅에서 새 삶을 시작했지만, 한 해가 끝난 후 그들의 수확은 매우 초라했고 큰 흉년이 들었고 여러 사람들이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에 모두 모여서 우리가 이렇게 여기에서 흉년을 맞이하고 많은 지체들이 죽은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누군가 공표하며 금식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회개하자고 그랬을 때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흉년도 들었고 우리 지체 중 어떤 사람들은 질병으로 세상을 등졌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조국을 등지고 여기에 왔을 때 잘 먹고 부자 되고 건강하고 편안하게 살 우리 행복을 위해서 대서양을 건넌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지난 일 년 동안에 우리는 우리가 성경적이라고 확신하는 방식에 따라 마음껏 예배를 드려도 누구에게도 박해받지 않았고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을 마음껏 찬송하고 우리의 교리를 따라 믿고 살아도 누구로부터 비난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안 주신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우울하고 고통에 잠겨있던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아멘‘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어요. 그리고는 자신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인디언들까지 모두 초청해서 음식을 먹으며 함께 예배를 드린 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됐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같은 상황을 우리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고백을 하느냐에 따라서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말하기를 “감사할 일이 있어야 감사하지요.” 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에게 좋은 일이 생기고 이익이 되는 환경이 주어졌을 때 기뻐하고 좋아하는 것은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다가올 이익 때문에 감사하고 좋아하는 것인데, 그건 개도 할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 남모르고 “꽝꽝” 짓는 개한테 뼈다귀 몇 개만 만날 때마다 줘 보십시오. 그러면 꼬리를 치고 여러분을 좋아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개의 머리 속에 여러분들의 생김새와 봉지에서 꺼내는 짐승뼈다귀의 냄새가 연결되어 연상되기 때문에 뼈다귀를 좋아하고 그 뼈다귀 때문에 잠시 행복해하는 자기 자신에게 기쁨을 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환경과 기쁨을 만났을 때 그것이 가져다주는 이익 때문에 잠시 행복해하는 것은 감사가 아닙니다. 감사는 그것은 제쳐놓고 그것을 통해서 그것을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에 그분과 관계를 맺고 있는 행복 때문에 그분을 찬송하는 것이 감사요, 기쁨인 것입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인데 예배를 드리고 나니까 어떤 애가 추운데서 기다려요. 인사를 하더니 “목사님, 제가 이거 목사님 드리려고 크리스마스 선물 밤새도록 만든 건데 받으세요.” 그러고 줘요. 그래서 갖고 올라가서 보니까 무슨 도화지 색지 같은 걸로 조그맣게 봉지를 만들어서 거기에 털실로 끈을 매달고 카드를 하나 넣었는데 꼬불꼬불한 초등학생 글씨를 쓰고 거기에 초콜릿하고 사탕하고 해서 한 세 개 집어넣었어요. 아무래도 밤새도록 만든 것 같지는 않고 밤늦게까지 만든 거 같아요. 그런데 난 당이 떨어지기 전에는 초콜릿도 안 먹고 사탕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먹고 싶으면 슈퍼에 가면 한 봉지 천 원만 주면 사탕이 있는데 그게 무슨 선물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책상에 한동안 놔두고 봤어요. 그 촌스럽게 만들었지만 그 아이가 밤늦게까지 만드는 동안 나를 생각했다는 그 마음, 그게 얼마나 감사한지 한동안 두고 보다가 애들 나눠줬습니다.
어버이날이 되면 꽃집에 예쁜 꽃들이 얼마나 많고 또 시들지 않게 헝겊에 풀 먹여 만든 고운 꽃들이 문방구에 그득합니다마는 엄마 아빠는 초등학생이 미술시간에 꼬부랑 꼬부랑 글씨 쓰고 빨강 크레용으로 칠한 허술해 보이는 꽃들을 가슴에 꽂고 다니는 것은 그보다 더 예쁜 꽃을 못 찾아서가 아니라, 자식의 이름으로 만든 그 꽃을 달고 갈 때에 부모의 마음에는 꽃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걸 달고 다니는 거예요.
우리도 하나님께 그렇게 감사해야 된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항상 좋은 일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나빠 보이는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일을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신자들이 때로는 고난도 받게 하시는 것이죠. 그러한 고난을 받게 하시는 이유는 고난 그 자체가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이어서가 아니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당신과의 관계를 새롭게 깨닫게 해 주시도록 만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셨을 때에는 하나님이 좋으신 분인 줄 몰랐던 사람들이 오히려 나빠 보이는 것을 주셨을 때에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신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물론 하나님은 우리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베풀어주십니다. 악인에게도 햇빛과 비를 골고루 내리시는데 하물며 하나님께 순종하며 의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더 많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시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자녀들이 당신의 사랑보다는 이 세상 사랑에 과도히 매여서 살아갈 때가 있는 줄 아시기 때문에 때로는 자신들이 너무 사랑하는 이 세상에서 배반을 당하게 하심으로 변함없으신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시고, 세상에 있는 것들의 사랑의 끝이 허무한 것을 알려주심으로 하나님 사랑의 진 맛과 참다움이 무한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잠시 사용해야 할 것과 영원히 누리며 사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구별하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미줄 같은 신앙이라도 붙들고 한 해를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아 보이는 것만 주셨을 뿐 아니라 때로는 좋아 보이지 않는 것도 주셔서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약한 믿음의 약으로 삼으사 우리를 하나님 끊임없이 바라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시는 신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받게 하시는 이유는 제일 먼저 자기의 약함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사도는 말하기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겼나이다.” 했어요. 주님이 자기의 아들을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신 분이시지만, 그 사랑으로 구원을 얻은 사도와 그 많은 지체들이 이런 고난의 땅을 지나기도 할 때에 아무 도움도 없이 버려진 것 같은 상태가 될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저희가 살던 동네에 한 15분 쯤 걸어가면 도살장이 있었습니다. 아마 굉장히 큰 도살장이었고, 그때는 기계도 없어서 소를 그냥 사람이 곡괭이로 머리를 쳐서 잡던 그런 때였습니다. 소 잡는 날이 되면 밤나무골 쪽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소를 한 마리 혹은 두 마리씩 팔러 옵니다. 그러면 이 소가 아직 도살장이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그 냄새를 맡고 안 가겠다고 버팁니다. 그리고 두 눈에 눈물이 가득 합니다. 뒷산에서는 사람들이 그 소를 끌고 소나무에 매어놓고 강제로 입을 벌리고 물을 바께쓰로 퍼 넣습니다. 어린 마음에 ‘왜 저 소가 싫다는 물을 저렇게 먹이나?’ 그랬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게 물 먹인 소예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잖아요. 주인이 모질게 채찍질을 하면 할 수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던 그 누런 소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걸 보았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애잔해요. 그렇다고 소고기가 싫은 건 아닌데.
여기에 나오는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다고 할 때도 이미 이 양은 도살되기로 정해졌고 양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도살자 앞에 놓여있는 신세가 된 것이죠. 왜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 위하여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까지 하시면서 사랑한 당신의 자녀들을 이렇게 될 때까지 버려두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한 유전인자를 죽여 버리시기 위함입니다. 타락한 이후로 우리 속에 심겨져 뽑아버릴 수 없고 파멸할 수 없는 강력한 유전자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자기의 약함을 고백하며 살려하지 않는 독립심이에요. 이것을 우리 인간 자신이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시기 때문에 내버려두고 북돋아주시면 이것까지 함께 살아서 결국은 주님이 주시는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방탕의 기회로 활용할 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바르지 못할 때 고난을 주셔서 우리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알게 해주시는 겁니다. 때로는 우리의 죄에 대해서 징계로 인하여 고난을 받음으로 우리의 약함 뿐 아니라 악함도 알게 하시지만,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의 죄와는 상관없이 고난을 당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위해 자기를 버리신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도 자신이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큰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때로는 자신이 교만을 버리고 자기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알게 하시는 이유는 이제는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게 하시기 위하여 이런 고난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 속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당치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명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많은 축복들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덜 의지하게 될 때에 입을 우리의 영혼의 손해를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그런 어려운 일을 당할만한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로 고난을 당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의지하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의지하도록 우리 영혼을 매 순간 가꾸시는 겁니다.
사도바울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에게 없는 것이 무엇이 있었습니까? 한 번 설교하면 수많은 사람이 회심하고 귀신을 내어쫒고 병든 자를 고칠 뿐 아니라 죽은 자도 그의 기도를 받고 살아날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지성으로는 기독교 교리의 기초를 놓은 사람이고, 온 땅과 하늘위에 높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신학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를 자랑할 만한 사도로 하여금 7장에서 자기도 어찌 할 수 없는 죄가 자기를 역사하고 있는 것을 깨닫게 하심으로 자기를 의지하는 대신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게 하셨고, 그렇게 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핍박과 고난을 당하고 투옥을 당하고 살 소망까지 끊어져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게 하기까지 하나님이 고난 받게 하심으로써 자기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그 모든 점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의뢰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불러주시고 지금도 불러주시는 예수님만을 의지하도록 만들어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영혼에 주시는 유익은 우리에게 주시는 물질의 유혹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값지고 소중한 것입니다.
10월에 총신대학교에서 저를 발령을 내주어서 거기에 강의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방도 하나 마련해주어서 밤 시간이면 가끔 올라가서 기도도 하고 조용히 성경도 읽습니다. 올라갈 때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겠지만, 학교 문만 들어가면 예외 없이 마음에 눈물이 가득해집니다. 여러분들은 모르는 나만의 사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22년 전에 저는 그 학교 대학원 졸업반 학생이었습니다. 정말 목회를 빼놓고는 제 인생에서 그런 시련이 없었습니다. 나의 사랑하던 할머니는 사형 언도를 받으시고 임종을 기다리고 계시는 암의 상태에 있었고 천신만고 끝에 전세를 얻어 갔는데, 집주인이 사기를 치는 바람에 우리는 길거리로 나앉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수시로 새로운 집주인이란 사람이 나타나서 길거리라도 빨리 나가지 않으면 내쫒아 버리겠다고 협박을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민주화 투쟁인가 뭔가 하면서 최루탄이 그 동네에 수없이 떨어졌고, 7년 만에 낳은 우리 아들이 그 최루탄 가스를 먹고 기관지염과 폐렴으로 발전해서 매일 병원에 업고 다니다가 급기야 병원에 입원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수입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그저 일주일에 한번 신학교 나가서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15만원, 방학 때는 주지도 않는 그것이 수입의 전부였습니다. 아이가 매일 병원에 가는데 의료보험도 없어서 매일 만 오천 원인데, 그 병원비를 도저히 댈 수가 없으니까 의사가 딱해보였는지 이 약, 이 약은 매우 비싼 약인데 우리 병원에서 지어주면 매우 비싸니까 도매상 약국에 가서 지으래요.
그때는 진짜 공부 많이 했었습니다. 새벽에 나가서 기도한 후에 아침서부터 하루에 열세시 간씩, 열다섯 시간씩 공부만 했습니다. 공부하다가 일어나는데 이상하게 바닥이 하늘로 올라가는 거예요. 빙 돌아서 몇 번을 주저앉았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게 영양실조예요. 왜 목사님은 신학교 가서 쓸데없이 밥을 사주냐고 몇 년 전에 누가 그랬다고 그러는데, 사연이 있어요. 지금도 총신에서 매일 150명의 학생들이 점심시간이면 산으로 올라가요. 왜? 밥 사 먹을 돈이 없어서. 얻어먹으면 되지 하지만 굶지 얻어먹겠습니까? 식권을 사줘봐야 소용이 없어요. 진짜 필요한 학생들은 자존심 때문에 그것을 타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일만 매를 한번 보내보고 나서 그 다음부터는 안 보내는 거예요. 그래서 앞을 보고 뒤를 보고 옆을 보고 어디를 보아도 아무 희망이 없어요. 그야말로 오늘 성경에 나오는 것같이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게 되는 거지요. 어쩜 그렇게 친하게 지내고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 중에서 10원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지 처음에는 야속했어요. 야속할 동안에는 기도가 안 나와요. 그리고 길은 오직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 밖에 없어요. 어떤 때는 밥도 안 먹고 하루 종일 공부하고, 네 시 반 쯤 되면 채플실로 올라갔어요. 5층 꼭대기로 올라갔는데, 휴교도 했겠다, 언제나 조용해요. 그럼 거기에 앉아서 기도합니다. 제가 원래 기도할 때에 요란스럽게 기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워낙 다급하고 하나님이 매달리게 하시니까 거기서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했어요. 얼마를 기도했는지 짧으면 한 시간 반, 길면 두 시간 반 이렇게 기도를 하죠. 여름이기도 했지만 기도하고 나면 런닝 셔츠, 티셔츠, 바지, 내복, 속옷 전부가 하나가 되어서 물을 몇 바가지 온 몸에 끼얹은 것처럼 온 옷이 몸에 달라붙어 있어요. 아무도 없는 채플실에서 기도를 끝내고 천천히 난간을 걸어 내려옵니다. 그때 즐겨 부르던 찬송이 있어요.
인간풍조는 나날이 갈리어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나의 놀라운 꿈 정령 내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령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매일 기도하면서 그냥 그렇게 기도에 몰입하다가 그대로 죽었으면 제일 좋겠더라구요. 끝내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이 벌레 같은 인간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또 계단에 주저앉아서 울고, 또 내려오다가 고난을 당하지만 하나님이 이렇게 가까이 계셔서 내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이렇게 하면서 매순간 그렇게 5층에서부터 내려왔습니다. 22년 전의 기억인데 학교 마당에 들어서면 그때 내가 부르던 찬송이 그 계단을 타고 흘러내려오는 것 같아요. 하나님은 그 큰 고난의 시간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일평생 말하고 싶지 않고 가슴에 혼자 간직해두고 싶은 많은 경험과 사연들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니 제 인생에 있어서 그런 고난이 어찌 주님의 선물이 아니겠으며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만 의지함으로 나의 영혼이 정결해지고 주께 더 다가가게 되었으니 지나온 세월을 볼 때 내가 자랑할 것은 내게 높은 지위와 물질과 영예를 주신 하나님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을 통해서 멀리 떠나 있던 내 영혼을 당신의 품 가까이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이 고난의 섭리가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어찌 이러한 사연이 나에게만 있겠으며, 어찌 이러한 진리가 나에게만 해당되는 진리이겠습니까? 삶의 자리는 다르고 생각하는 바는 같지 않아도 여러분 모두도 하나님의 이러한 인도를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한 해 동안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많은 좋은 것들 때문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나빠 보이고 때로는 아파 보였던 그 일들로 인하여 우리가 교정되고 빗나가지 않게 되고 또 바르게 해주셨으니 우리는 그것을 인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그러면서 사도는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끊을 수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여기에서 천사는 마귀와 그 졸개의 타락한 천사들인 귀신을 가리킵니다.)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이라.” 우리는 수시로 주님이 붙잡으신 그 팔을 놓고, 주님 없이 주님으로부터 독립하여 나를 주인삼아 살고 싶어 하지만, 그러나 우리를 붙잡으신 주님이 그 손을 놓지 않고 굳게 붙드심으로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 주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 이 둘을 하나로 묶어 주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답게 살게 주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사랑은 이렇게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서 여러분을 붙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사랑을 알 때에나 알지 아니할 때나 언제나 주님이 이렇게 사랑하셔서 여러분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여러분들을 이끌려고 하시니 여러분들은 주님이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모든 주권적인 은혜와 섭리에 대해서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한 해 동안 지내온 것, 일생 동안 살아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 때문이었고, 내가 섬기고 주님을 위해 봉사한 것은 티끌과 같은 것이라고 고백하며 주님이 더 많이 주실수록 주님을 더 많이 의지하는 아름다운 영혼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