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11일 새벽예배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약 5:6).
여기에서 갑자기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너희가 죽였도다. 그러나 그는 대항하지 아니하였도다 라고 하는 어떻게 보면 은 요 부분은 괄호 안에 집어넣으면 좋을 내용이 갑자기 나옵니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 이 믿음이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실질적으로 그에 본성은 변화되지 않고 아주 견고한 철옹성처럼 부도덕하게 살아가는 이 사람들을 보면서 분노하고 있는 야고보 선생이 그들에 죄를 이야기 하다기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에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이들에게 도전적으로 묻는 거죠. 너희들이 정말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냐? 너희가 정말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냐? 정말 너희들이 너희에 죄로 말미암아 죽으시고 너희에 죄를 대신 지고 너희에게 죽임을 당하신 그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마음이 너희들에게 있느냐? 왜냐하면 구원받은 사람들의 회피할 수 없는 결정적 영원에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너희가 정말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너희들이 그럴 수 있느냐? 그분이 너희처럼 그렇게 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그 죄 때문에 정죄되었고 그리고 고난을 당하시고 그러셨는데 의미심장한 거는 그는 대항치 아니하셨느니라. 마치 이사야서에서 나오는 것처럼 아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 같이 털 깎는 자 앞에 얌전한 어린 양 같이 그렇게 조용히 당신에 십자가를 맞이했던 것이죠. 그 분의 따라서 만약에 너희에 믿음이 정녕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라고 할꺼 같으면 그 분에 정신에 너희 안에 있지 않겠느냐? 그분은 그렇게 원효하시고 그리고 고난을 당하시면서도 광포해지시거나 자기를 변화하기 위해서 열렬해지시거나 죽음을 거부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사용하시지도 않은 그런 오묘한 분이였는데 그런 분이였는데 너희는 왜 그렇게 강팍하냐? 어떻게 그렇게 가난한 자들에 품삯이 들판에 소리치고 그것이 원한이 되도록 그렇게 가난한 자에 대한 어떠한 긍률도 없이 짓밟으면서 사는 그런 사람들이 그런 너희들이 정녕 구원으로 이르는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느냐? 그걸 이야기 하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잠깐 눈을 뜨자마자 그런 묵상을 했습니다만 착하게 살아야 돼. 그리스도인들이 물론 자기 나름대로 신앙에 확신이 있으니깐 이 세상 살아갈 때에 담대하기도 하고 또 지도자에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환경과 상황에 쉽게 십히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지도자가 될 수 없어요. 거기에는 아주 큰 힘이 있어야돼. 그래서 어저께 대학 캠퍼스 총신 대학교 신방에서 열한시 훨씬 넘어서 끝났는데 근데 이야기 해서. 나는 정말 유약하기 짝이 없는 그런 정말 나약한 사람이였는데 힘 쎈 죄인들하고 있다보니깐 나도 모르게 강한 사람이 됐다.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강해야 합니다. 환경에 의해서 쉽게 씹히고 사람들에 의해서 쉽게 씹히는 그런 심성을 가지고는 결코 지도자에 길을 걸을 수 없어요. 그러기 때문에 강인함이 필요해요. 그런데 육적 강인함이 아니라 홀리터프니스 거룩한 강인함이 필요합니다. 그건 사실이지만 착하게 살아야 해요. 정말 착하게. 가슴 아픈 일을 보면서 눈물 흘리 줄 알고 기쁜일을 보면서 어린 아이처럼 좋아 할 줄 알고 아픔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것이 자기 아픔인 것처럼 아파할 수 있는 그런 심성을 가져야해. 그게 정말 예수 만난 사람들 이예요. 정말 예수 만난 사람들 이예요. 그래서 이게 한 사람에 영적인 깊이하고도 관계가 있는 것이에요. 잘 들어보세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영적인 연합을 이루며 살 수 있는 두 관계를 주셨어요. 그게 첫 번째 관계가 뭐냐 하면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에요. 그래서 거듭나는 그 순간에 우리에 영혼에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는데 본성에 변화와 함께 우리에 영혼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강력한 연합을 갖게 되는 거예요. 신비적인 근데 그 연합을 하나님이 주시는데 그 연합이 그리스도만의 연합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에게 접붙임 받은 모든 성도들 속에 연합이 이루어 지는 거예요. 영적인 연합이. 그리고 똑같은 비슷한 종류에 연합이 인제 남편과 아내 사이에 이루어 지는 거예요. 결혼과 함께 결혼과 함께 그들에 영혼이 신비하게 연합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물론 여기에서 의문이 나오죠. 결혼 안한 남편이 결혼 안했다고 하면 말이 안 돼지 남편이 거듭나지 않은 사람일 수 있잖아요. 그럴 경우에는 약간 종류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하여튼 모종에 연합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잠정적인 연합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부부가 예수 안 믿는 사람인 경우에는 이게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 걸고 빨리 예수 믿게 해야 되요. 내년 후년 뭐 내후년 그렇게 할 성질에 것이 아니에요. 근데 어쨌든 그렇게 되는데 신자들 속에 연합이 이루어지는 거라. 그렇기 때문에 잘 들어보세요. 교회에서 어떤 안 좋은 일이 있고 그리고 그 교회에 어떤 올바르지 않은 일들이 있어서 만약에 그것을 바로 잡아야 하겠다 라는 마음을 가지면 그러면은 항상 이것이 모두 전체에 몸이 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다뤄야 해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집안에 더러운 것이 오물이 만약게 묻었다고 하면 닦아지지 않으면 칼로 확 잘라내서라도 버리겠지만 이 만약에 여러분에 관절에 가서 문제가 생겼다면 은 어느 날 관절이 왜 서금서금하냐 그리고 가서 부엌칼 들고 그 다리를 걷지는 않을 꺼에요. 이건 내 몸도 아닌데 필요도 없는데 이거 쑤셔서 바깥으로 끄집어 내야 되겠다 그렇게는 안한다는 거죠.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관절에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에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누가 잘못한다던지 무슨 문제가 있으면은 이것을 전체가 몸이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자기 자신도 그 몸속에 속해 있다라고 생각하고 이 문제를 다뤄요. 그것이 고린도서 12장 정신이고 한 걸을 더 나아가서 애배소서에 정신이에요. 근데 그런 연합이 주어지는데 그 교회에 멤버들 가운데도 연합이 주어지는데 그 멤버들 가운데 연합이 주어지는 가운데 그 멤버들 속에서 이 연합이 이루어 지면서 그 속에서 무엇인가 고통을 느끼고 아픔을 느끼는 것들이 영적인 연합을 통해서 각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영적으로 깊이가 있고 하나님에 은혜 속에 들어가서 이 영적으로 예민해진 사람들은 그런 지체들에 고통과 아픔 같은 것들을 예리하게 느낄 수 있는 민감성을 갖게 되는 것이에요. 그것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강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는 거죠. 그러나 일단 한 사람이 참 된 은혜의 생활에서 멀어지거나 혹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주님이 주셨지만 실제적인 연합은 성화에 의해서 누리는 거거든요. 성화가 성화에 있어서 진전이 미약하거나 혹은 영적인 깊이가 매우 낮아서 이런 연합들을 자기가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을 때에는 이런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는 거에요. 지체들이 막 고통해도 아무 상관이 없어요. 사람이 죽어도 올 일도 없고. 옆에서 고난을 당하고 피 흘리고 쓰러져도 그것은 니 일이고 내 일은 내 일이다. 그러니깐 이 야고보 선생이 본 것이 바로 그런 현상 극단적인 현상을 본 거거든요. 그러니깐 아주 분노하면서 확신한 거예요. 그게 뭐냐면 저 인간들은 절대로 믿음을 이야기 하지만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에 복음을 통해서 그 본성을 변화시킨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이거에요. 그들은 구원받은 사람일 수가 없다. 그리되는 거에요. 그래서 여기서 야고보 사도가 그리스도에 고난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에 고난 어떤 상관이 있습니까? 그리고 정말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은 그 고난이 여러분들에 삶에 정진이 되고 있습니다. 지체들 하나하나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에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고 고난을 당하시므로 사신 사람들이에요.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 병마에 고통 받는 사람 영적인 끝없는 권고함 때문에 고통하는 사람 심지어는 죄에 빠진 부도덕한 사람들 까지도 말이죠. 그러면서 이 야고보 선생이 이제 그리스도 예수를 말함으로 너희들 그 부자와 그렇게 품삯을 주지 않아서 소리치는 이런 사람들. 심지어 이런 사람들은 교회안에 있는 사람들. 그러면서 다음에 보겠습니다만 은 뒤편에 보면 은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면서 원망하지 말라 기다리라 얘기 나옵니다. 이제 부자한테 할 얘기 하고 그 다음에 교회 안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한테 하는 이야기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