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그러니깐 초대 교회시대 때 천사 숭배 사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그 천사들이 어떤 면에서는 우리 인간들보다 뛰어난 면이 있었지만 그러나 또 어떤 면에서는 천사와 우리 인간들은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더더군다나 성자와 천사를 비교한다는 것은 사실 말도 되지 않는 것이거든요. 그런 배경을 뒤에 깔고 이제 이 히브리서 기자가 천사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다. 우리가 천사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은 성자는 천사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분이시다. 그러면서 성자의 위엄과 영광과 보좌의 우편에 앉으신 그 특별함에 대해서 앞에서 설명하고 그리고 그 성자가 아주 아름다운 이름을 기억으로 얻었다. 성경에서 이름이 나오면 은 사실 하나님에 이름은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름과 본질자체가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름과 본질자체가 하나이기 때문에 그래서 곧 그 이름은 그 본질을 의미한 이렇게 봐도 되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에 이름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거죠. 그래서 여기서도 아름다운 이름을 기억으로 주셨다. 그거는 결국 그 성자가 누리고 있는 하나님에 영광에 광채 그리고 구원하심의 능력과 위엄. 보좌 우편에 앉으신 이런 모든 성자에 상태 이것을 이제 기업으로 받은 이름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어떤 의미에서든지 간에 성자는 인간과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시고 그리고 천사들과는 말 할 필요도 없이 천사들과 비교할 때는 상대도 안되는 분이시다 이런 거죠. 우리들이 구체적으로 그 아들이 영원에 상태에서 그러니깐 천지가 창조되기 이전에 영원에 상태에서 어떻게 성부로부터 지엄을 받으셨는지 그 방식에 대해서 성경에 계시된 바도 없고 성경에 그것을 설명한다 할지라도 아마 우리가 이해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어떻게 성자가 성부에게서 나셨는지 우리들은 알 수 없지만 하지만 확실한 사실 하나는 천사들이 창조 된 것과는 아마 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천사들을 하나님이 내 아들이다 라고 부르시지 않았거든요. 그 천사는 순수하게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처럼 천사들을 창조하신 것이죠. 분명한 사실은 그 천사들도 도덕적인 피조물이라는 거죠. 그래서 그 도덕적인 피조물은 천사들과 인간 그리고 또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도 도덕적인 피조물이죠. 그러나 그것은 사람에 몸을 입고 오신 것은 이미 계신 성자가 사람에 몸을 입고 오셨다는 점에서 이제 또 다른 하나님에 창조 속에 들어가긴 하지만 그러나 어쨌든 지간에 도덕적 피조물은 천사와 사람에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와 그 다음에 사람들이다. 이렇게 생각하든 저렇게 생각하든 어쨌든 지간에 천사들은 순수한 하나님에 피조물이다. 인간이 순수하게 하나님에 피조물인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이다 라는 거죠. 그러나 아들은 달라요. 그래서 오늘 여기서 이야기를 내가 오늘날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또 한 구절은 이제 내가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 자체가 성자의 지위의 독특성을 의미 한다 이거에요. 성자의 지위의 독특성을 의미 한다 라는 것이죠. 그러니깐 성자가 하나님 아버지에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우리도 그 하나님에 아들이기 때문에 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 형이나 우리에 형제쯤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거죠. 그 지위에 있어서 성자는 어떤 식으로든지 우리 인간들과는 비교될 수 없는 뛰어난 분으로써 그렇게 하나님으로써 이 세상에 창조되셨고 영원전에 창조 되셨고 그리고 그분이 사람에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 오셔서 우리를 위한 구원에 길을 여신 메시아가 되신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기자는 여기서 딱 못을 박고 있는거죠. 그러니깐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 다음에 놀라운 능력과 은혜 이런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나타났다. 그래서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보면서 그 분이 성자다 라고 그렇게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사람에 몸을 입고 비참하게 이 세상에 내려오신 성자 그분을 보면서 그것이 전부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거에요.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시기 그 이전에 이미 성자셨고 그 전에 이미 하나님께 나음 받으신 아들이셨으며 그 끝도 없는 긴 영혼에 세계 속에서 그 분은 성자로써 존재하신 거죠. 그리고 그 성자와 성부로부터 성령이 나오신 것입니다. 그렇게 됐던 그런 분이 어느 특정한 시기에 인간에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사람에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이죠.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을 때에는 공간에 제약도 받으셨고 여러 가지 인간에 연약함에 스스로 복종하신 거죠. 그래서 하실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시지 않으면서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시고 사람으로 존재 하셨던 것이죠. 그것은 바로 우리를 위한 구속에 제물이 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이죠.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그 인간 예수에 그 모습 속에서 그치면 은 안되고 그 분에 그 모습을 보면서 영원전에 하나님이 낳으셔서 아들 하나님으로 삼으신 그 분을 보고 거기서 우리들이 영광에 광채와 그리고 놀라운 능력과 그리고 보좌에 앉으신 성자에 위엄을 우리는 거기서 읽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많이 당하다가 죽은 한 인간 예수가 아니라 그렇게 사람에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기 전에 그 분이 하나님이였다 라는 사실을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가 영원 전에 그분을 낳으셔서 그래서 그분이 참 하나님 이셨다 라는 거 그것을 바라보고 기뻐하고 믿을 수 있는 그런 신앙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