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 11일 새벽예배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어제는 어떻게 우리가 그런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지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이제 그렇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그 목적이라고 그럴까요? 그런 거죠. 그게 뭐냐 하면 긍률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나간다 이거죠. 그럼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긍률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이 긍휼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 죄인에게 특별히 해당하는 건데 죄인들이 죄를 짓잖아요. 죄를 지으면 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에 명령을 거역하거나 혹은 불순종 하거나 혹은 하나님께 온전하게 순종하는 일에 있어서 모자라는 건데. 그런 죄들을 짓게 되면은 인간이 비참해 지거든요. 하나님과 관계는 파괴되고 영혼에 상처와 그로 말미암아서 인간에 모든 것들이 비참해 지거든요. 근데 그렇게 비참해 지는데 그렇게 비참해 지는데 그건 사실은 죄를 지은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비참해 진거 아니에요. 사람이 비참해 보인다 하더라도 죄를 짓고 나쁜 짓 하고 이렇게 살아온 과정을 생각하면 불쌍해요 안 불쌍해요? 안 불쌍하죠. 아이구 저거 그 짓 하더니 저렇게 됐구나 아이구 저거. 이렇게 생각 하게 되죠. 근데 이 긍률이라고 하는 것은 죄를 지어 왔던 그런 것들을 그런 것들 보다도 지금 현제에 죄로 말미암아 비참하게 된 상태에 대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거예요. 그게 긍휼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이 긍휼이라고 하는 것은 차가운 논리만을 가지고는 안돼요. 그런 거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그런 긍휼을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보여 주시는 거죠. 그게 긍휼입니다. 그게 그런 것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은혜의 보좌 앞으로 우리들이 나아간다 라는 거죠. 그 긍휼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들이에요.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살아야할 백성들이 하나님게 불순종하고 그리고 하나님 거스르고 강팍한 마음을 갖고 그래서 결국은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그런 인간에 모습 그런 인간에 대한 긍휼이라 이거죠. 그러면 여러분은 이런 생각을 하겠죠. 왜 그럼 하나님은 광야에서 그렇게 안식을 얻지도 못하고 죽어간 무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긍휼을 베풀지 않으셨을까? 긍휼을 베풀지 않으셨을까? 그거는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긍휼을 받아들이지 않은 거죠. 또 하나는 하나님은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지 만은 돌아오는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시지 죄 가운데에서 계속 살아가는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것은 아니에요. 돌아오는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거죠. 그러니깐 누구든지 자신에 힘으로 마음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순종하려고 애를 쓰고 그리고 불순종으로 인하여 자신이 이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에 말씀과 은혜를 떠나서 다시 불순종하게 되고 이런 것을 두려워 하면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려고 열심히 애를 쓰는 사람이면은 그렇게 애를 쓰면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 주시는 거죠. 그런 사람을 향한 긍휼을 이야기 하는 것이죠. 한결같이 예수님이 시험을 받은 받으신 분이였기 때문에 죄인들이 어떻게 쉽게 시험을 받고 그리고 인간에 몸을 입고 사는 이 세상에 사람들이 얼마나 그 시련과 시험에 시달리고 연약한 존재 인가 하는 것을 죄는 없으셨지만 예수님이 체험을 하신 거에요. 그리고 쓰라린 고통과 그리고 아픔과 이런 것들을 체험 하셨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인간에 마음을 인간에 연약함을 잘 아시는 분이였기 때문에 마음 중심 속에서 정말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마음이 강팍해 져서 자기 자신을 내팽겨 쳐서 주님 앞에 불순종 하면서 살려고 하지 않고 어떡하던지 마음에 강팍함을 면하고 하나님에 뜻대로 살기 위해서 애를 쓸 때 주님께서는 그 사람에 허물과 죄를 보기 보다는 그 사람에 영혼에 불쌍한 상태를 보시고 마음 아파 하신다 라는 것이죠. 이게 긍휼이에요. 이게 죄 가운데 계속 있으면서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하나님 아들 예수님 긍휼이 계속 죄를 지을 수 있는 담대함을 제공해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죄 가운데에서 돌이켜서 하나님 가운데로 돌아 오는 사람들은 그 죄가 그 긍휼이 말 할수 없는 회개의 동기가 되고 말할 수 없는 은혜의 동기가 되는 거죠. 그러기 때문에 오늘 여기에서 광야같은 세상에서 사는 우리들이 최종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렇게 광야에서 멸망 되는 사람들이 되지 않기 위해선 주님에 긍휼을 힘입어야 한다 라는 거죠. 긍휼을. 그리고 두 번째가 뭐냐 하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이걸 통하여 무얼 알 수 있냐면 은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우리들이 믿음을 지키며 살기 위해서는 정말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아. 그럼 하나님에 은혜의 무시성을 얘기하는. 하나님에 은혜의 무시성. 그게 무시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서 무시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 할 그런 필요성을 아주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거에요. 그것 없이는 어떠한 식으로도 승리 할 수 없고 어떠한 식으로도 이길 수 없는. 그니까 살아가면서 어느 한순간에 생애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서 쏟아지는 은혜를 받는거 그것만 가지고는 성화에 삶을 살수 없어요. 그러고 필요합니다. 특별히 쏟아 부어주시는 생애적인 은혜가 정말 필요합니다. 더군다나 늘 넘어지고 결심이 약해서 실패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느 한 순간에 하나님이 강력하게 그에 마음을 돌이키고 그리고 그를 만나주시는 회심이 필요합니다. 정말 필요합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보면은 지리멸렬한 사람들이 있어요. 뭐냐하면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침 구름과 같아서 정말 지리멸렬해요. 신앙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니고 지리멸렬해요. 어떻어떻해 주님을 만난 다음에 그다음에 미끄러져서 무슨 세상으로 간다든지 그런 것도 아니고 그렇게 애달프게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도 한마디로 지리멸렬해요.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지리멸렬해요. 그런 지리멸렬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필요한게 진짜 생애적인 은혜 그게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만 가지고는 안돼요. 시시때때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오늘 아침만 가지고는 안돼. 오늘 저녁에도 하나님에 그런 은혜가 필요해요. 오늘만이 아니라 매일매일 하느님에 그 은혜 하나님에 그 긍휼이 우리 마음에 부어지는 그런 하나님에 특별한 은혜 쏟아지는 주님에 사랑 그게 필요해요. 그런 것을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주님에 은혜에 보좌 앞으로 나아 갈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런 은혜가 필요하다는거에요. 그러니깐 정말 예수님은 생애 마지막에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 그랬지만 우리는 매 순간 그런 기도가 필요해요. 하나님 우리에 마음을 받아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에게 내버려 두시면 그렇게 강팍해지고 주님 원망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인데 주님께서 어루 만져 주십시오. 정말 새롭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하면서 정말 하나님 앞에 계속해서 변화시켜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도록 그렇게 기도해야 된다 이거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렇게 해주시려고 보좌 우편에 계시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깐 시시때때로 주님을 바라보면서 그 은혜를 힘 입으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기적을 보지 못했어도 이스라엘 백성들과같이 그렇게 엄청난 기적을 보지 못했어도 그것이 더 큰 기적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시시때때로 만져주시는 그런 은혜 그런 사랑 더 큰것이죠. 기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