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 20일 새벽예배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대제사장 이야기를 쭉 하다가 갑자기 그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죠.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에 소원을 올렸고 예수님이 기도 생활을 갑자기 여기에서 거론 합니다. 일생에 계속되었던 예수님에 기도 생활 전체를 의미하는 가리키는 것이기도 했지만 여기서는 특별히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잡히시던 날 밤에 갯세만에 동산에서 그 땀이 피가 되도록 하나님께 매달렸던 그 광경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렇게 해석들을 합니다. 어쨌든 지간에 갑자기 예수님에 기도 생활에 대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에 이야기를 하다가 이 예수님에 기도가 나오니깐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에 소원을 올렸고 라고 하는 예수님에 기도에 제목이 무엇인가 우리들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흔히 갯세만에 동산에서 올린 기도는 이 잔을 할 수만 있으면 피할 수 있게 도와주시 옵소서. 하는 십자가를 놓고 그것을 피하게 해 달라는 기도가 갯세만에 동산에서 드려진 기도로 우리들이 알고 있습니다만 은 그러나 그것은 갯세만에 동산에서 드린 가운데 아주 적은 일부분 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십자가에 죽음과 고난에 커다란 아픔 앞에서 거기에서 무엇인가 커다란 고통을 미리 느끼셨고 인류에 죄를 지고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께 징벌을 받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알게 되셨기 때문에 비겁해서가 아니라 그 죄에 짐과 하나님에 형벌이 너무 컸기 때문에 인간에 육체를 가진 예수님으로서 하나님께 그 잔을 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고 그리고 그것을 당신이 피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확인 하셨기 때문에 담담히 그 십자가를 받아 들여 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갯세만에 동산에 올라서 기도하시던 처음에 일어난 일이에요. 그리고 그 후에 긴 시간을 뒤로 하실 때 그 기도는 오히려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대제사장에 기도가 거기서 행해졌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 심한 통곡과 눈물로 올린 간고와 소원은 우리를 위한 아주 애절하고 간절한 중보 기도라는 사실을 우리들이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대제사장에 직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모든 죄를 들고 나가서 하나님 앞에 고하고 사죄 받게 제사를 드리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 대표로서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듣고 그리고 백성들에게 전해주는 것 이였습니다. 똑같이 예수님께서 자기에 백성들에 모든 죄를 지고 아버지 앞에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 그는 하나님에 구원하고자 하는 백성들에 그 많은 죄를 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을 묵상하시면서 기도하셨고 그리고 그렇게 기도할 때에 지존하신 하나님에 엄격하심과 그리고 그 죄를 용서받아야만 인생에 참 소망이 있는 하나님에 자녀들 백성들에 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당신을 믿지 아니하는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고초를 경험하시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간절히 매달리는 몸부림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견딜 수 없는 그 고통을 경험하셨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중보기도를 받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있는 죄악들을 경험하셨고 죄악들을 알게 되셨고 그리고 그것들 때문에 아파하시는 하나님에 마음을 느꼈기 때문에 깊이 통곡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실 수 있었던 거죠. 그래서 중보 기도는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그런것을 가져온 거죠.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도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다가 보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기만 하면 저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비참한지 모르는데 내가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다 보면 그 가 얼마나 비참한 상황에 놓여 있고 그가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지를 철저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고 기도하게 되죠. 그렇게 매달려 기도하고 간고하는 가운데 이제 알게 됩니다. 뭐 알게 되냐면 그를 향해 가지고 계신 하나님에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거죠. 예수님이 마지막 게세만에 동산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할 때에 그런거를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깊이 우리를 위해서 간고하실 때 죄를 지고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백성들이 비참함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자신이 대신 하나님 앞에 진노를 받고 저주를 받아야 한다라고 하는 그 말할 수 없이 크고 무거운 막중한 부담감 그리고 그렇게 됨으로써 하나님과 화해 할수 밖에 없는 인간들에 아무도 도울 길이 없는 그 무조력한 상태 이런 것들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릴 때 예수님께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기도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신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정말 참 구원을 얻고 하나님에 은혜를 얻고 나면 우리가 이 세상을 향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그리고 이 세상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예수님께서 생생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주님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은 모두 또한 그 주님과 화해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 많은 죄인들 그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위해서 대신 간고하고 기도해줘야 한다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아주 놀랍게 모범으로써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참 신자들은 누구든지 가슴속에 자기 말고 다름 사람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을 위해서 대신 돌아가신 예수님이 받으신 그 고난이 바로 그들을 위한 것이였다 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누군가의 이름을 끌어 안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할 때 그때에 죄를 향해 가졌던 주님에 마음 죄인을 향해 가지셨던 예수님에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깨닫게 되고 그렇게 될 때에 예수님과 훨씬 가까워지고 하나되는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은 다른 사람을 위한 간절한 중보에 기도가 복음에 의미에 대해서 눈뜨게 만들고 그래서 오늘 주님에 사랑을 받으면서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에서 살아가는 내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인가 하는 것을 아울러 깨닫게 하는 거죠. 그래서 한편으로는 나와 화목하게 해주시고 화해에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 때문에 감사하고 그리고 기뻐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죽으셨는데도 아직까지도 화목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그 많은 하나님을 등진 영혼들 때문에 아파하면서 기도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정말 하나님에 은혜안에 있는 신자에 양면성인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