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1-3).
지혜 이야기를 하던 야고보 선생이 이제 얻는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사람들 속에 있는 욕망은 자꾸 무엇인가를 갖고 싶어 하고 또 취하고 싶어 하는데 이제 성결한 지혜는 자기 속의 욕망이 일어나면 그 욕망을 절제하기도 하고 처음 솟아날 때부터 성결한 지혜 속에 사는 사람은 성결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구하지만 설령 육적인 것들이, 잘못 갖고 싶은 것들이 잘못 생각이 난다 하더라도 그것을 절제하고 그리고 그것을 마음에 지워버려서 그래서 자기를 이기면서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있는데 그런 성결한 지혜 속에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 안에서 그런 것들을 이기고 살지 못하니까 강한 욕망 같은 것들이 억제가 안 되면서 그러면서 탐욕하는 모습들이 나타나는거죠. 그래서 그런 것들은 결국은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면 반드시 다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미움, 원망, 그런 것들이 일어나게 되는 거죠. 그래서 그 욕망에 종노릇하며 살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 자신을 절제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렇게 욕망들이 일어나서 충돌을 일으키니까 그게 이제 다툼이 되는 거죠. 그렇게 되다보니까 성결한 지혜가 아니라 아주 육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지혜들이 발동되서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고 그 속에서 자신이 더 많이 소유하게 되고 이런 일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죠. 뒤편에 보면 나오지만, 예수 믿고 신앙 생활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품꾼들을 쓰고 돈을 잘 안 주는 거에요. 그것은 결국 뭐냐 하면 자기 욕망 때문에 임금을 주지 않으니까 그것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거죠. 이런 것들은 성결한 지혜에서 비롯되는 행동이 아니라 육신적인 정욕에서 비롯되는 행동들이죠. 그런데 그것을 야고보 선생이 이야기하면서 아울러 이야기하는 것이 뭐냐 하면 “그렇게 우리가 무엇인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런 식으로 욕망을 따라 살고 사람들끼리 다툼을 만들고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이 나뉘고 이렇게 되는 그런 삶이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에게 기대하는 삶이 아니다. 그 따위 삶을 살아가면서 무슨 자신이 믿음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믿음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니다. 행위가 함께 동반된 믿음이 정말 믿음이지, 너희들의 삶을 봐라. 성결한 지혜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아니다. 육욕적인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그런 것이 어떤 의미에서든지 정말 올바른 것이라 볼 수 없다. 그러면서 신자가 무엇인가 필요한 것을 얻으면서 살아가는 그 삶은 무엇이냐 하면 그렇게 욕망에 종노릇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필요하면 하나님께 구하고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 필요를 정직하게 하나님께 구해서 그래서 그것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필요인지 주님 앞에 정직하게 구하여서 그렇게 구하는 가운데 자기 욕망도 조정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면 그때 그것을 얻는 것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진실한 신자의 삶이다.”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리적으로 육욕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것을 달라고 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자신의 양심이 내가 이것을 구하는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양심의 호소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정직하게 하나님을 대면하여서 이것을 달라고 못하는 겁니다. 그런 것들이 문제죠. 결국은 그리스도의 삶이라는 것이 깊이 들어가보면 자기가 능히 할 수 있는 어떤 부분에 대해서 순종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 삶이, 자신의 모든 부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되고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진실한 의지가 없이는 성화에 진전이 없어요. 성화의 가장 근본 조건이 자신의 모든 삶의 방면에서 하나님 앞에 살려고 하는 그런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해서... 그런데 덧붙이기를 그렇게 하나님께 구해도 못 얻는 것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아무리 마음을 쏟아서 하나님께 기도한다 할지라도 그래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이 순수하고 진실한 동기에서 구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덧붙이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결국은 무슨 이야기냐 하면, 성결한 지혜는 지혜 자체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그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살아가기에 적합한 그러한 지혜인데 정욕으로 쓰려고 한다는 것은 뭐냐 하면 모양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경건하게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께 이것을 달라고 기도하지만 그 사람 자신 속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가 구하는 기도의 행위는 있지만 그 기도하는 마음과 내용은 정말 변화되지 않는 거에요. 그래서 예전에 자기가 정욕으로 쓰려고 자기 스스로의 필요를 자기 스스로 충족하고 사람들과 다툼을 이루면서 살던, 그런 삶의 양식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지 그 속에 있는 욕망의 노예가 살던 그것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거에요. 매우 잘못된 거에요. 그래서 결국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우리 자신이 변화되고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화되고 새로워져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런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