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하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약 4:5).
I. 강력한 죄, 간음
왜 야고보 사도는 간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신다는 이야기를 합니까? 그것은 간단합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는 것만큼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기하기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또한 우리는 세상이 시기하기까지,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A. 간음은 세상과 짝하는 것임
그런 논리를 가지고 이 대목을 보게 되면,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시기하기까지 사랑하시니까 세상이 시기하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니까 간음하는 것은 세상과 짝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도 진지하게 경고하시는 것이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죄들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이 간음의 죄는 안에서 바깥으로 나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안에서 바깥으로 나온다는 것은 마음 안에서 성전을 더럽히고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존 오웬도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만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욕망이 하나님의 법을 거절하려고 하지만 이러한 성적인 욕망만큼 강력한 욕망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세상 사랑의 극치에요. 그리고 여기에서 한 번 더 진전하면 그 다음에 하나님을 향한 고착된 반항이에요. 그것이 말하자면 우상숭배로 나타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이 두 가지 죄가 짝을 이루면서 계속 경고되고 있는 것이죠.
B. 행함이 없는 믿음을 핑계치 말아야 함
그렇기 때문에 그런 세상 사랑의 극치, 그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믿음이 있다라고 말하고 그러면서 행위를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말하면서 그 믿음을 잘못 이해하면서 자신의 생활을 정당화합니다. 후에 이런 식의 태도들이 교회사속에서 어떻게 발전하냐 하면 믿기만 하면 삶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있어서 믿기만 하면 삶은 어떻든지 아무 상관이 없다라고 하는 율법폐기론쪽으로 가는 것이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구원이라고 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그 구원을 누리면서 살지 못하면 그 신앙이 우리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참 신기하죠. 교회는 그리스도께 구속받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모이는 거룩한 성도들의 연합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모인 그곳에 세상의 모든 것, 세상의 그 모든 죄들이 다 들어오는거에요. 모두 발견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것은 잘못된 거라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이 잘못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일어나는거에요. 고린도전서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안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즉각적으로 주님 앞에 얻는 구원 이외에 날마다 자기를 죽이며 이루어가야할 성화의 구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런 의미의 구원을 이루어가지 않으면 사실 구원받은 것이 우리의 인생에서 그 구원을 누리며 살아가지 못하면 우리의 삶에 조금도 변화가 없습니다. 그것을 우리들이 기억해야 합니다.
II. 시기하기까지 사랑하심
A. 독점적인 사랑
그래서 여기에서 이야기합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여자들이 간음한다 이 이야기죠. 그리고 정욕이 불붙듯해서 죄가운데 살아가면서 믿음과 행위를 이야기하면서 믿기만 하면 그 이상은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한다 이거죠. 그런데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은 싫어하신다, 왜 싫어하시냐, 하나님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의 사랑을 독점하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사랑이 독점적인 사랑이길 원하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이외에 아무 것도 사랑하지 않기를 원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세상에 어떤 것들을 사랑해야 할 필요가 있고 그것이 정당하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것들이 되기를 원한다,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법을 성취하는 것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하나님의 사랑이 어느 정도라고 하냐면 시기하기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뭡니까? 시기하기까지 사랑한다는 것이 무슨 이야기냐 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것으로는 만족이 안 되고 누구도 자기와 똑같이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고 그리고 자기와 비슷하게라도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고 쉽게 이야기하면 자기만 사랑하는 독점적인 사랑이 되기를 원하고 그 사람과의 관계를 독점하기를 원하는 것이, 그것이 시기하기까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만 사랑하지 않으면 고통을 느끼는 거에요. 자기만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의 기쁨을 느낄 수 없는 거에요.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가세요?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는데 나만 사랑해주지 않으면 나를 많이 사랑해주는데도 그 사랑에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거에요. 그것이 시기하기까지 사랑하는 거에요.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그런 마음이에요. 우리가 하나님도 사랑하는 것으로는 하나님이 만족하실 수가 없어요. 우리가 그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그 하나님이 다른 것을 사랑하는 것을 발견하시면 아까 말씀드린 우리로부터 받는 그 사랑이 그분의 마음에 전혀 기쁨이 되지 않는 거에요. 그런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주 치열하게 싫어하십니다. 그러면서 오직 하나님이 당신만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B. 순결한 사랑
그러니까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에요.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신자의 불결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과 관련해서 생각하면 그것이거든요. 하나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존재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불결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도 사랑하고 또 세상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럴 경우에는 얼만큼 세상을 사랑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럴 경우에 그 신앙이 정결치 않을 뿐만 아니라 모두 불결한 거에요. 순결이라고 하는 것 그 자체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우리 자신의 내면의 세계가 가득 채워지는 거에요. 순결한 사람은 항상 냉담하면서 순결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요. 순결한 사람은 신적인 정서의 사람이에요. 순결한 사람은 항상 가슴 속에 타오르는 불이 있어요. 무슨 불? 사랑의 불. 그리고 그 사랑의 불은 성결해요. 대개 사람들이 사랑하면 어리석어지는데 이 신앙에서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지혜로워요. 위로부터 나는 지혜는 성결해요. 그래서 그런 성결의 불이 자기 속에서 타오르는 것이에요. 그렇게 타오르면서 성결의 사랑의 불이 그 사랑의 정신과 부합하지 않는 것을 태워버려요. 그러면서 점점 더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우는 거에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거에요.
III. 진실한 참회가 필요함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여러분들이 만약에 이런 잘못을 했다면 진실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될 것은 하나님은 그것이 무슨 죄이든 간에 진실하게 참회하는 사람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이것은 굉장히 커다란 죄에요. 그렇지만 죄가 작아도 진실하고 참된 회개가 없으면 하나님께 거절당해요. 그러나 죄가 커도 회개가 진실하고 참회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인데도 그 죄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하나님께 참회를 통해서 용납될 수 없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는 것이죠. 복음이 복음될 수 없다는 것이죠. 우리가 용납하시는 그리스도 예수 앞에 속죄의 은혜를 입고 용납하시는 주님 앞에서 사죄의 은총을 입지 않으면 언제 우리들이 하나님을 등지고 살면서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으리만치 순결해질 수 있겠느냐 생각해보세요. 언제 그럴 수 있겠어요. 불가능해요. 그런데 이제 이렇게 될 때 다윗이 뭐라고 고백하냐 하면 그렇게 뉘우치면서 하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이것이 죄의 특징이에요. 회개하고 참회해도 계속해서 하나님은 용서하시는데 자신이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거에요. 이것도 이제 은혜 아래 있지 않은 신자의 양심의 역기능이에요. 양심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을 때에는 우리의 갈 길을 가이드하는 아주 훌륭한 네비게이터가 됩니다. 항법장치가 된다는 거죠. 그렇지만 은혜 아래 있지 못할 때 이 양심이 어떤 문제에서든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도록 우리를 송사하고 우리를 파괴하는 그런 힘을 갖는다는 거죠.
그래서 만약에 그런 죄를 여러분이 지었다면 정직하고 진지하게 참회해요. 그리고 실질적으로 간음에까지 가지 않았지만 그런 범죄에 접근하는 행동을 했거나 하려고 구체적으로 마음과 생각에 품었던 것까지도 진심되게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부부라고 하는 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와 똑같이 결혼하는 그 순간에 우리들이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영적인 연합이 이루어진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신남편과 결혼한 사람들은 말하자면 유사한 연합의 관계가 있다가 그가 신자가 됨으로 온전한 연합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 연합을 깨뜨리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범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진실하게 참회해야 되요. 그래서 실지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은 물론이요 그런 행동에 가까이 간 것까지도 그리고 가까이 가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까지도 깊이 깊이 참회하고 뉘우쳐야 합니다. 깊이 뉘우치고 돌이켜 서서 정말 자기 안에 하나님을 향한 순결한 사랑이 없는 것을 진심으로 통회하고 그런 면에 있어서, 그것도 세상 사랑의 극치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런 면에 있어서 자기가 그 정도까지 진전을 했다고 한다면 그러면 그것은 나타나도록 드러난 것이고 다른 방면에서 이미 세상을 향한 사랑이 엄청나게 많이 그 사람 속에 밀려들어온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그런 식으로 표출되어 드러난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것은 한 문제가 아니라 자기의 영적생활과 신앙생활에 전면적인 검토를 요하는 것이에요. 이미 여러분들이 만약에 그런 구체적으로 그런 죄에 가까이 갔다고 한다면, 실행되지 않았더라도 상당히 가까이 갔다면 여러분들은 정사할 필요할 정도로, 정사, 자신을 꼼꼼히 살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미 죄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속에 만연해있는 것이에요. 그런 상태에서 여러분들이 영혼이 깊이 영적으로 죽어 있기 때문에 그런 깊은 죄들을 보지 못하는 거에요. 그런데 여러분이 은혜 안에 있다고 한다면 소스라치게 놀랄꺼에요. 은혜 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못보고 단지 그런 것들을 통해서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데 아니다 이거죠. 한 죄는 반드시 동료들이 있어요. 그리고 수많은 지지자들과 뿌리들을 가지고 표출되요. 그런 것들을 살펴보라 이거죠. 대대적인 쇄신이 필요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한 참회가 필요해요.
IV. 결론과 적용 - 뜻을 정하여 영혼을 치료하고자 함
이런 경우에 속한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뭐냐 하면 여러 이야기가 있겠지만 새벽시간이니까 어떻게 다 말씀드릴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뜻을 정하는 거에요. 그리고 영혼의 회복을 위해서 특별히 시간과 기간을 정해서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자신의 영혼을 간수해야 되는 것이에요. 보세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몸이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어요? 조금씩은 다 아파요. 그런데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다 살아요. 그런데 너무 아프면 어떻게 해요? 병원에 입원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증상이 더 깊어져서 처음에는 별 것 아닌 질병이 발전해서 치명적인 증세가 발견되요. 그런 상태에 만약에 가까이 간 적이 있는데 진실한 참회가 없어서 하나님 앞에 변화되지 않았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런 위험에 있다든지 그런 쪽으로 가고 있다든지 특별한 입원이 필요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집중적으로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치료받고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 참회하며 기도하고 자신의 마음을 다시 다스리고 고치는 작업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세상과 짝함을 결별하고 그리고 다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연합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 역할을 성령이 오셔서 해주시기 때문에 오늘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랑하신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