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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 가운데 취할 세 가지 태도
“나의 환난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으며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시 77:2).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오늘 이 아침에도 어김없이 새 날을 주시고, 오늘 저희들을 주님의 집에 불러 주시니 고맙습니다. 오늘도 저희들이 이처럼 이 예배를 통해서 주님을 대면하고 은혜받기를 소원합니다. 저희와 함께 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저희들을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사랑으로 다시 한번 새롭게 변화시켜 주시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도록 성령님께서 오늘 이 시간에 저희와 함께 해 주시옵소서. 세상의 염려와 근심과 환란 속에서 마음이 굳어진 모든 지체들에게 다가오셔서 어루만지시고 저희들을 새롭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들이 아무리 급해도 큰 건물에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문을 찾게 됩니다. 그렇죠? 그래서 그 문을 찾고 그 문으로 들어가야지만 건물에 접근을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환란을 당하게 되면 많은 혼란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그 혼란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우리들이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보면 신앙 생활을 잘 한다고 해도 정말 환란을 만나고 어려움을 만날 때, 그때 자신의 믿음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수인지 한번 보십시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신앙 생활이 정말 이 신앙의 경험을 통해서 자기화되고, 그 속에서 매순간마다 하나님과 함께 하고 동행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되지 않으면 사실은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정말 도움을 주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근데 오늘 시편에 보면 이 시인도 우리와 꼭같이 환란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환란을 만났을 때에 그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그 환란을 통과하게 되었고, 그 환란 속에서 어떻게 승리하게 되었는가하는 비결을 3가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첫 번째가 결단입니다. “환란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환란이라고 하는 커다란 상황을 만나서 그는 인생의 요동치는 큰 변화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주어지는 외적인 환경의 변화를 통해 오는 환란이든지, 또 그것이 내적인 깊은 정신적인 고통을 통하여 오는 환란이든지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이 커다란 어려움이었을 것이고, 그 어려움 속에서 그는 여러 길을 택하는 대신에 오직 한 가지를 결단했으니 그것은 주를 찾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주를 찾는다는 그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 주를 찾는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 찾는다고 하는 것은 그냥 무언가 잃어버렸는데 어디 있을까? 궁금하다 그 왜 그러지? 그러고 그만두는게 아닙니다. 찾는다는 것은 그것이 없는다는 것에 대한 고통을 느끼면서 그것을 정말로 찾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희생하는 그런 종류의 찾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제가 잠깐 안식년이라기보다도 그저 7년이 넘어 10년이 거의 됐지만 어쨌든 잠깐 쉬었습니다. 그러다 유럽을 갔는데 로마에서 설교를 하고 올라가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긴 거리를 버스로 여행하는 가운데 저에게 그렇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머리에 이렇게 연구를 하고, 책을 읽고, 이러다가 이제 말씀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성경을 읽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이렇게 있는데 하나님이 뭔가 이렇게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는 경우가 있지 않겠어요? 막 떠올라요. 그게 뭔지는 내가 나중에 개봉하겠습니다만 떠올라요. 전혀 이 생각지도 않았던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라요. 그래서 흔들거리는 버스 안에서 제가 가지고 간 새 성경 얇은게 있었는데 뭐 메모할데도 없어요. 뒤집어 보니까 성경뒤에 하얀 종이가 두 바닥 나와요. 거기다 깨알같이 쓰고 기도하다 가다 또 쓰고 또 쓰다가 또 기도하고 그거를 며칠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두 바닥이 그냥 새까맣게 빽빽하게 쓰여졌어요. 그래 이 정도면 한 6개월 정도는 설교를 할 수 있겠다. 6개월 정도는 족히 설교할 수 있겠다. 그러고 가슴 뿌듯해서 야 이건 정말 내가 청교도들의 책을 읽어도 이렇게 이 주제에 대해서 자세한 걸 못 만나는데 정말 하나님께선 나에게 열어주셨다 그러고 한국에 도착을 했는데, 아 글쎄 방에 와가지고 제일 먼저 그걸 찾았는데 그 성경이 없어진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그래서 오스트리아로 전화를 하고, 호텔에다 알아보고, 그 몇 번 애를 썼는데 그냥 다 필요없고 그날 밤에 비행기 타고 가고 싶은거예요. 이게 솔직히 말해서 홍콩 정도만 됐어도 제가 다시 갔어요 가서 다시 찾았습니다. 어떻게 갈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래가지고 그렇게 가슴 아파했는데 결국은 못찾았어요.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만약에 그 호텔에 있다는 연락만 오고, 당신이 직접 오기 전에는 도저히 줄 수 없다 그러면 저 한주 주일 설교를 쉬고라도 가서 그것만 딱 찾아올 용의가 있어요. 구경안하고, 가서 그것만 딱 그것만 찾아오는. 어젯밤에도 그게 생각이 너무 나는 거예요. 그랬더니 우리 집사람이 저를 위로를 했어요. 그걸 잃어버린건 하나님의 섭리다. 왜? 더 좋은 말씀을 주시려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잃어버리게 하신거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라. 그건 당사자가 아니니까 그렇게 이야기하지. 본인은 참 눈물나는 사안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며칠 지난 다음에 이래서 안되겠다 그러고 테이블에 앉아서 다시 그것을 회상하면서 적어놓았습니다. 그게 바로 찾는다는 것입니다. 벌써 두달이 다 되가잖아요. 근데 지금도 그 생각이 간절히 나요. 정말 간절히 나요. 정말 200만원을 줘야지만 찾을 수 있다고 그러면 저는 진짜 한달 밀가루 먹는 한이 있더라도 돈을 주고 사오고 싶은 정도의 마음이예요. 그게 바로 찾는다라고 하는 결단이라는 거죠.
하나님 앞에서 환란을 당했을 때에 제일 먼저 시인이 내린 결단은 이 나의 환란은 내가 그냥 풀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찾아야 할 문제다 그리고 결단을 하고 하나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참 올바른 방법을 택한 것이죠. 그렇게 환란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자신의 인생의 환란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빨리 그 참다운 해결의 방안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문제가 있는 그 옆에다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도 함께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환란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의지하고 인간을 찾으니까 거기에서 모든 문제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시인이 한 것은 인내였습니다. “밤에 두 손을 들고 그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도다”. 이 손을 드는 것은 구약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며 기도하는 기도의 모습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인이 하나님을 찾기로 결단을 한 다음에 쉽게 꺾이지 않는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을 찾기로 결단을 하고 우리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오늘 밤에 하나님께서 모든 환란의 문제에서 나를 건져주시기를 기대하는 것이죠. 그것은 믿음이라기보다는 자기의 욕심인 경우가 많습니다. 환란을 만나게되기까지 그의 마음이 얼마나 많이 변했겠습니까? 예전에는 주님만 사랑하고 하나님을 향한 소망으로 넘쳤던 마음이 그렇게 환란을 만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변화된 삶을 경험하면서 마음의 틀도 무너지고, 마음속에 있는 은혜도 많이 사라지고, 그리고 순결했던 마음에는 때가 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환란을 통해서 깨끗이 씻어내고 주님 앞에 순결한 신부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주님의 마음이십니다. 우리는 당장의 삶에만 관심이 있지만, 당장의 고통에만 관심이 있지만, 당장의 성공에만 마음을 쓰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우리를 그 모든 불의와 환란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던 더러움으로부터 우리를 씻어서 다시 순결한 주의 자녀로 하나님만 사랑하면 살아가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에게 금방 응답해 주실 때도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장시간동안 하나님 앞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주시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이 시인이 결단을 하고 손을 들고 밤에도 그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다고 하니까 그는 하나님 앞에 그 환란에서 구출을 받고 도움을 입어야되겠다라고 하는 갈망 때문에 잠도 이루지 못하는 형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즉각적으로 구원의 은혜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뒤편에 가보면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도 불안하여 근심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총이 다했는가, 이제 하나님은 나를 더 이상 돌아보지 아니하시는가? 그런 많은 회유와 의심의 유혹 속에서도 이 시인은 한번 그 환란 속에서 하나님을 찾기로 한 결단을 꺾지 않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로 한 그 인내를 버리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자신을 향하여 가지고 있는 진실한 사랑과 변함이 없는 충성을 하나님께서는 그의 인내를 통해서 보십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도 욥의 인내를 배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련과 환란을 만난 사람들에게 온전히 인내를 이루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이죠. 그 인내 속에서 이 시인이 한 일은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들고 거두지 않는 지속적인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환란 가운데 있을 때에 결단을 하는 일은 쉽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도와 달라고 어느 한 순간에 단발적으로 외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나를 다시 용서하시기까지, 주께서 나를 향해서 얼굴 빛을 다시 비추시기까지, 주께서 나를 환란과 시련에서 다시 건져주시기까지, 주께서 나를 다시 순결한 주님의 사람으로 회복시켜주시기까지 내가 절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이것을 멈추지 않겠습니다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소수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반드시 그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 세상의 누구도 환란 가운데 처했을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고 그 환란에서 환란을 이길 하늘의 신령한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환란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매우 약해지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우리가 주님의 손에 붙들려 있을 때만 비로소 주님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 이런 것들을 깊이 깨달으면서 깨달을수록 주님을 의지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이 새롭게 하시는 거죠.
이 시인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그 환란을 이겼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하실 수 없는 것이 없고, 하나님께서는 시편 103편에 기록된 바과 같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체질을 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얼마까지 견딜 수 있고, 얼마나 연약하고, 얼마나 고통하는지를, 모두 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이 오래 참으며 주님의 이름을 부를때 반드시 다시 찾아오셔서 그들을 그 환란에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성경에 보면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이것은 집중입니다. 환란을 당했을 때에 누구나 그 환란 속에서 고통하고, 고통했을 때에 하나님 앞에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부르짖는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 환란 속에서 회복하고 싶은 주님과의 관계, 환란 속에서 회복하고 싶은 하나님과의 그 관계를 정말 집중하고 끝까지 매달리는 사람은 얼마나 적은지 모릅니다. 그 이유가 뭐냐면 영혼이 쉽게 실증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한 순간에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자기를 건져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영혼이 어느 한 순간에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다시 깨어났고, 그래서 그 영혼이 헐떡이면서 예전에 받았던 주님의 사랑을 다시 받고 싶어하고, 예전에 경험했던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다시 한번 경험하고 싶어하는 거죠. 그런 열렬함과 간절함이 이 사람의 마음 속에 생겨나게 되는데, 근데 그게 오래 가지를 않는다는 말이죠. 그래서 어느 한 순간 지나고 나면 영혼의 실증이 생기고 이제까지도 환란 속에서 그냥 살았는데 하나님 앞에 나아가 바야 한 두 번 기도해도 주님의 응답도 없고, 그러면서 영혼은 구원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실망하고 낙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게 되니 그의 영혼의 비참함이라고 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영혼의 실증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는 비결이 있어요. 그 비결이 뭐냐면 하나님 앞에 밤이 맞도록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고 하는 부지런한 기도의 모습으로만은 결코 밀려오는 이 영혼의 피곤함과 영혼의 실증을 이길 수가 없어요. 그 영혼의 실증을 이기는 중요한 비결이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뭐냐하면 하나님 앞에 수시로 자신의 마음을 쏟아놓는 것이예요. 그렇게 마음을 쏟아 놓기 위해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도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쏟아놓을 때에 쏟아지는 그 마음 속에 실증들이 묻어서 같이 쏟아져내리고 나면 하나님을 향해 처음에 품었던 열렬함을 계속해서 간직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모하는 은혜를 가지고 간절히 매달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그 환란가운데서 왜 돌아보시기 않겠습니까? 자기의 자녀가 매맞고, 시련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피끓는 그 아픔을 경험하는 그것이 정말 자기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일 수가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있는 어느 부모가 자기의 자녀가 우는 것을 보고 달려가지 않겠으며, 자기의 자녀가 깊은 웅덩이에 빠져서 고통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를 건져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이 세상의 인간의 아버지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자비하시고, 또 우리를 그렇게 당신의 자녀로 온전한 자녀를 삼으시기 위해서 에수 그리스도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과거에 우리를 행하신 것을 보면 앞으로 우리를 향해 행하실 일들을 알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오늘 우리가 환란 속에서 하나님을 대하는 이 태도가 정말 올바른 태도인가 하는 것을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인은 위로받기를 거절했습니다. 환란을 당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그 면전에서 추방된채 고통하고 아파하는 이 시인을 무엇이 위로해 줄 수 있겠습니까? 좋은 음식이나 값진 의복이 그를 위로해 줄 수 있겠습니까?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자신이 기뻐하는 일에 종사하는 것이 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그의 이 영혼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었고, 그리고 그 하나님에게 이 시인이 바라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나 큰 물질의 축복이나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인이 바라는 것은 너무나 소박한 소망이었으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라진 얼굴 빛을 자기에게 다시 비춰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무슨 힘으로 일생을 살았습니까?
골로새서 1장에 보면 우리를 영광의 힘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그 영광의 힘으로 승리하며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말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빛을 비추셨을 때 그 하나님을 붙들고 환란도 이기고, 유혹도 이기고, 시련도 극복하고, 그리고 우리의 본성적인 태만함과 게으름도 이기고 극복하면서 오늘날까지 신앙적인 순례의 길을 걸어오지 않았습니까?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렇게 집중된 가운데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위로가 참된 위로라고 믿고 주님의 얼굴만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서 환란 속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 같이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는 정말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이 환란 속에서 주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구합니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