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31일 새벽설교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 10:30-31).
그러니까 여기서 사도는 그 배교한 자들이 하나님 앞에 돌이킬 수 없다라고 하는 그 사실을 하나님의 심판의 맥락에서 보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의 비췸을 받고, 그리고 놀라운 은혜도 깨달았고, 그리고 또 하늘의 은사도 맛보고, 그리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래도 그 주님을 받아들이고 완전한, 영혼의 완전한 변화를 경험하고 신자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죠. 그렇게 받아들이고 온전한 신자가 되지 아니하였을때 그것은 배교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런 것들을 충분히 받아들이고도 신앙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핍박을 받는다든지 자기의 목전의 이익을 위해서 신앙을 버리게 될 때, 그때에 그 사람이 배교하게 되는데, 그럴 경우의 배교는 무서운 심판이 뒤따른다. 그 심판이 무엇이냐면 다시 돌이킬 수 없게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다. 그러면 그가 현저히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밟고,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모욕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 대해서 심판하시게 됩니다. 그래서 그 심판의 마지막 결과가 뭐냐면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없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사랑하시고, 또 자기의 백성들을 한없이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지만, 그러나 한없이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분이시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이 하나님이시란 사실을 그 모든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는 것을 방해받지는 않으신다하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랑한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이 발목이 잡히셔서 그래서 당신이 당신 되심을 자기의 백성들에게 보여주시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 하는 것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범죄를 통해서 보여주시기에 실패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라는 거죠.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마치 그 하나님께서 사랑의 교리라고 하는 그런 창살에 갖혀서 눈물만 흘리고 계시고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그릇되게 행하고, 하나님 앞에 옳지 않는 길을 걸어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이라는 교리의 창살에 갖혔기 때문에 눈물만 흘리면서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대적하고 지멋대로 살아도 사랑이라는 교리의 창살에 갖혀서 하나님도 어찌하실 수가 없어서 눈물만 흘리며 돌아오라고 애원하는 분으로 묘사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스스로 제한 받지 아니하시는 독립적인 분이예요. 홀로 한분이시고, 홀로 당신 원하시는대로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 하나님의 마음은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는데 있는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어서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래도록 참으시면서 기다리신다는 것이죠. 그것뿐이지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사랑이라는 성품때문에 창살에 갖히신 것같이 그렇게 인간을 향해 어찌하실 수 없는 분이란게 아니란 거죠. 사랑하시고,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고, 긍휼을 베푸시며,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이고, 사유하기를 즐겨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언제나 그것때문에 당신의 정직한 공의를 행하심에 있어서 방해받으시는 분이 아니다 이거죠.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성경에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시편에 나오는 이야기이구요.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하나님의 심판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거기에서 원수 갚는 것, 대게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아닌 그 악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간섭을 보여주는 것이고, 자기 백성들에 대한 심판은 그야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심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믿지 아니하는 모든 사람들까지 다 하나님의 심판의 수중에 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아보시며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범좌 아래에 있는 것이예요. 그래서 그 범좌 아래에 있기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결코 실수하지 않으시고 그리고 얼마든지 당신의 백성들과 이방의 백성들을 심판하심으로서 당신 자신의 영광과 이런 것들을 충분히 드러내시는 분이시다이거죠.
그래서 이처럼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훼방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그리고 또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을 하나님께서 사유하시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판단하시고 적절히 그 죄를 다루심으로서 당신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사실은 성경에서 너무나 많이 언급되어 있는 것이죠. 그래서 신앙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의 그 엄위하심, 내가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열심히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러나 내가 하나님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 미끄러지고 주님을 떠나면 이러한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 두려움이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사랑과 함께 공존해야 하는 것이예요.
그래서 마음 속에서 엄위하신 하나님에 대한 인식, 만약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미끄러져서 배교자로 나타나고,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현저히 욕보이고 하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을거 같으면 사도가 무엇 때문에 이 무서운 경고를 이미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냐 이거죠. 너희들은 절대로 안전하다라고 이야기하면 충분하지 않아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아요. 모든 것들을 경고로 삼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서 준엄하고 두려운 그러한 하나님의 경고와 그리고 심판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 오히려 그런 두려움을 느낌으로 말미암아 더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고, 그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가야겠다라고 하는 마음의 결단이 새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끔찍한 배교의 가능성에 대해서 경고해 주시는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굳어진 마음, 그리고 정말 그 어두워진 마음으로 비영적인 틀에 갖혀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 정말 옳지 않는 것이예요.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면서 그렇게 매일매일 살아가는 진실한 그런 성도가 되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주님께서 사랑해 주시고, 오늘 이 아침 시간에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고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도와 주시옵소서.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그래서 저희들이 매순간 하나님 의지하고, 아버지 앞에서 정말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와 그리고 긍휼을 더욱 허락해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굳게 붙들고 의지하며 주님의 그 사랑을 온전히 바랄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도와주시고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교만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며 아버지 앞에 살아갈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