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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11일 새벽설교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 11:7).
그러면서 이제 또 한 사람 믿음의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노아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이 노아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제 홍수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때에 이제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자기 가족들을 구원하고 그렇게 해서 다시 그 노아의 씨가 퍼트려져서, 그래서 이제 이 세상의 인류가 되는 것이죠. 근데 이제 믿음을 거론을 했는데 이 노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 믿음은 무엇일까라는 거죠.
우선 여기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나타나셔서 홍수로 온 땅을 멸하실 것을 말씀하셨을때 그것을 굳게 믿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방주를 짓는 그 일을 끝까지 해서 그가 구원받은 인류의 새로운 조상이 된 그것을 염두에 두고 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 노아가 믿음의 사람으로 거론될 때에 이것은 제가 보기에는 두 가지 측면에서 같이 거론이 되어져야 된다고 봅니다.
우선 첫째는 뭐냐하면, 노아 자신이 그 하나님의 이러한 경고의 말씀이 있기 전에도 이 사람이 믿음으로 산 사람이었다라고 하는 이야기이죠. 하나님이 아무에게나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무스서에 보면 나의 사랑하는 종, 선지자를 나의 사랑하는 종이라고 부르면서 그에게 나의 할 일을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말한다 말씀하시죠.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미래에 이루어질 일을 말씀하시는 사람들을 모두 신령한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이었고, 하나님과 특별히 교통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더욱이 미래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이 말씀하셨을때 단순히 불특정 다수를 향해서 경고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특별히 이 사람, 노아를 사랑하시는 그런 견지에서 말씀하신거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볼때 이것은 결코 노아가 하나님이 명령하셨을 때 그것을 믿었다라고 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 사람이 믿음으로 산 사람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예요. 몇 시간에 걸쳐서 계속 말씀을 드렸죠. 그 믿음의 본질적인 것이 뭐죠? 자기의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것, 이게 믿음의 본질이예요. 절대적인 의존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노아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아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기에 앞서서 창세기 6장에 제일 먼저 사람들의 패괴하고 부패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정하신 이야기가 나오고, 그 다음에 노아가 방주를 짓는 이야기 , 7장에 넘어가서 홍수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바로 그 사이에 노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성경의 소개가 나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물론 그거는 절대적인 의미에서 죄가 없는 완전함을 가르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쨋든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이렇게 묘사한 것을 보면 그 자체가 이미 노아가 믿음으로 산 사람이었다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그에게 말씀해 주시는 거죠. 제가 왜 이렇게 어제 그제서부터 이 말씀을 강조하냐하면 이런 것들을 우리들이 경계하기 위함이예요. 정말 비참하게 죄 가운데 있다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주실 것을 온전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도덕적인 상태와는 상관없이 우리가 구원을 얻게되고 그렇게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죄로부터 용서함을 받고 영혼의 변화가 일어나는 이런 모든 것들을 우리들이 충분히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그 믿음이 단순히 어느 한 순간에 자신의 삶과는 상관이 없이 그냥 내가 믿습니다. 심리적으로 나는 믿습니다, 나는 믿어야 한다, 나는 믿는다고 말해야 한다라는 이런 것이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삶 전체와 관계가 있다라고 하는 거죠.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죄 가운데 있던 세리와 창녀,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게된 그것도 사실 알고보면 그들이 계속 죄를 행하면서 예수님을 믿었다기보다는 어느 한 순간에 짧은 순간이긴 하지만 자신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며 살아왔던 그 모든 인생의 날들에 대한 후회와 회개 이런 것들이 있고,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 그런 것들이 거기에서 생겨나게 되는 것이예요.
이런 것들로 볼때에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의뢰, 의뢰의 믿음 이런 것들이 결코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의 경고를 받기전에도 이 사람이 믿음으로 산 사람이었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들이 언급해야 되고, 또 하나가 뭐냐하면 이게 보다 더 핵심적인건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데 이거는 노아가 늘 경험하거나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한 일이 아니란는 거죠. 뭐냐면 비가 내려서 온땅을 물로 뒤덮여서 이 지상의 숨쉬는 모든 것들을 다 멸절되게 해 버리겠다, 그거는 노아로서는 경험해 본 일이 아니예요. 경험해 본 일이 아닌데 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다,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라고 하는 이 믿음,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에 대해서 정말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 온전한 믿음 그것이 모세에게 있었던 것이예요. 그 믿음이 어떤 종류의 믿음이냐면 삶 전체를 얹어서 실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믿음이었어요.
무슨 뜻인지 이해 갑니까? 이런 이야기예요. 이 하나님의 경고, 내가 곧 하늘을 열고 비를 내려서 이 사람들 뿐만 아니라 무릇 땅의 숨쉬는 모든 것들을 징벌하여서 멸절하리라, 그러니까 너는 방주를 만들어라, 아멘, 그러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의 명령이, 약속이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살았을 노아의 삶과는 완전한 다른 삶이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전혀 새로운 삶이 전개되어 버려요. 그러니까 어떻게 되었어요? 미치광이가 소리를 들으면서 산에다가 배를 만든 사람이 되어 버린거예요. 그게 바로 믿음이예요.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할 테니까 너는 방주를 만들어라 내가 너로 새로운 인류의 조상으로 삼겠다 이렇게 말씀하실 때 계속 그 부담을 가진채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을 때에 살아가던 삶을 사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진정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거기에 삶을 얹을 수 있을 때, 그것이 바로 성경이 이야기하는 진정한 믿음이예요.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께서 이 노아를 아주 기쁘게 생각하신거예요. 그래서 이 노아를 하나님께서 아주 기뻐하시고, 그리고 이 노아를 통해서 새로운 인류의 씨앗들을 퍼트리신거예요. 그리고 그에게 다시는 홍수로 이 세상을 멸하지 아니 할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거예요. 그리고 그의 제사를 받으셨죠. 하나님이 얼마나 이 사람을 기뻐하셨는가를 보여주는 거예요. 뭐하는 사람이었습니까? 신기하게 성경은 에녹이나 므두셀라나 이 노아나 이런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나 이런 것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냥 사람 이름이 나오고 죽고 낳고 죽고 낳고 죽고 그러면서, 우리는 어때? 죽으면 사람 이름 앞에 제일 먼저 벼슬이 나오죠 그리고 사람이 나오죠, 하나님께서는 관심이 없어요. 노아의 사회적인 지위나 재산의 유무 이런 것과는 상관이 없고, 하나님이 간절히 바라시는 기뻐하셨던 이유는 노아가 오직 믿음으로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지켜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아버지 앞에 나아와 간구하고 기도하게 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사실을 오늘 깨달았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의지할 수 있도록 주께서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