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22일 새벽예배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7-19).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은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였죠. 왜냐하면 두 가지 점에서 그랬는데 우선 첫째는 성경 어디를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을 드리는 제사를 기뻐하신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는 이야기는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고 두 번째는 또 뭐냐면은 독자 이삭을 주신분이 하나님이신데 그리고 그 아이로 말미암아서 아브라함에 자손이 하늘에 별과 같이 바다에 모래와 같이 많아질 것이라고 그렇게 약속을 하셨는데 그 약속을 가진 원천을 하나님이 데려가 버리시면 생명을 취해버리시면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고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명령을 순종하게 됩니다. 근데 이제 그러면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보면 왜 그렇게 했을까? 거기에 대한 대답이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아직까지 이런 하나님에 어떤 계시 같은 게 풍부하지 않았으니까 우리처럼 정교하게 교리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들었을 꺼예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아브라함에게 당신이 독자 이삭을 원하신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그 자체를 도저히 부정할 수 없었던 거예요. 그러니깐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깐 아멘하고 순종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비록 하나님께서 사람을 드리는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런 추측을 할 수 있고 또 하나 이건 추측보다도 더 확실한 건데 하나님이 이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손을 하늘에 별과 같이 바다에 모래와 같이 많아지게 할 것이다. 그리 약속을 하셨는데 그렇다면은 그렇게 약속하신 것과 이 이삭을 죽이는 것이 어떻게 조화가 되느냐? 사실 그 조화 점을 찾을 수가 없잖아요. 그랬는데도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이유가 뭐였냐면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사실 그게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강력하게 밀려왔던 거죠. 믿음은 모든 것을 해명할 수 없어요. 모든 것을 해명할 수 없어요. 그 해명할 수 없는 것을 건너뛰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는 그 모든 것들을 해명할 수 없지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럴 것이고 또 그렇게 될 것이다 라고 믿는 그 신앙이 그게 바로 성경 안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믿음이 에요. 그러한 말씀이죠. 천지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라는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겠어요. 누가 봤어요?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이 무슨 지금도 하나님이 새로운 인간과 동물과 벌레들을 창조하고 계시다면은 또 몰라요. 근데 이제 창조는 끝났어요. 근데 그것을 어떻게 믿느냐고요. 어떻게 그 연결을 우리들이 찾아 낼 수 있느냐 에요. 그래도 하나님이 내가 이 천지를 창조했다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아멘하고 믿는 것 이게 믿음이에요. 그래서 이런 믿음은 결코 저절로 생겨날 수 없는 거예요. 그게 결국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지 아니하시면 믿어지지 않는 거죠. 저는 신앙의 초기에 저를 괴롭혔던 궁금증이 바로 그런거 였어요. 이게 이렇게 성경이 완성돼서 이렇게 노였는데 이게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일까? 근데 성령께서 하시는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가 뭐냐면은 성경이 하나님에 말씀이라는 사실을 우리의 마음에 믿어지게 하시는 거예요. 이거는 도저히 인간의 지성과 생각으로는 이룰수 없는 일인데 성령님께서 역사 하셔서 그래서 이것을 믿어지게 하는 것 그러니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이 말씀에 대한 체험을 통해서 아멘으로 믿어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 성경이 하나님에 말씀이라는 사실이 믿을 수가 없는 거죠. 그리되는 것이죠. 그럼 이제 아브라함 입장으로 돌아가면은 그러면 아브라함은 그래도 아무리 믿음으로 한다 해도 그래도 아브라함의 마음에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을 때에 그러면은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시는 것과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아지라라는 약속간의 간격을 어떻게 매울 수 있었을까 이때에 아브라함이 가졌던 신앙이 뭐냐면은 부활 신앙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 아이를 죽여서 하나님에 명령대로 아이를 바친다고 하더라도 이 아이는 다시 살 것이다. 왜 그러니깐 두 믿음이 충돌을 일으키는거 아니에요. 내가 이 아이로 내 씨가 되게 하고 그래서 이 아이로 너의 자손이 되게 해서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있게 해주겠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라는 거예요. 그러니깐 그걸 믿어야 되잖아요. 그죠? 그리고 지금 하나님이 이 이삭을 바치라고 하는 것도 믿어야 되잖아요. 그러니깐 두 사이가 충돌을 일으키잖아요. 둘 다 믿으려니깐 해결의 길이 뭐냐니깐 이 아이가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믿는 것 이외에는 아브라함의 머리로서는 더 이상의 연결점을 찾을 수 없었던 거죠. 그러니깐 그것을 저는 그것을 유추한 믿음이라고 저는 부르거든요. 그러니깐 계시된 믿음 그 다음 유추한 믿음 계시된 믿음은 뭐냐면은 계시를 통한 믿음과 유추를 통한 믿음 뭐냐면은 니 자식을 통해서 이삭을 통해서 하늘에 별과 같은 바닷가에 모래와 같이 니 후손을 많게 해주겠다 하나님이 계시를 해주신 거예요. 그러니깐 아멘 하고 믿은거에요. 그게 계시를 통한 믿음이에요. 그 계시와 그 다음에 이삭을 바쳐라 두 계시를 믿어라 두 계시를 통한 믿음인데 그걸 두 개다 믿으려고 하니깐 두 계시가 모순을 일으키잖아요. 그러니깐 무슨 마음으로 하나님께 이삭을 드렸냐 하면은 이 아이를 따라서 따라서 이 아이를 드려도 죽어도 이 아이는 다시 살 것이다. 이거는 이 둘 사이에서 아브라함이 유추한 결론이에요. 그걸 굳게 믿는 거예요. 그것도 하나님의 신앙이라고 보는 거예요. 신앙이라고 보죠. 신앙이라고 보시는거죠. 그래서 이 두 종류에 믿음이 우리가 모두 필요해요. 모두 필요해요. 모두 필요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성경으로 우리에게 말씀을 제시하실 때 우리에게 이렇게 살아라 이런 사람이 되어라는 수많은 계시를 주셨어요. 근데 그것을 굳게 믿어요. 그것을 실천을 하려고 하다 보면은 반드시 거기에는 또 유추를 통한 믿음이 필요해요. 예를 들자면 예수님께서 배드로에게 걸어오라 물 위를 배드로가 걸어가잖아요. 걸어와라 그거는 예수님께서 배드로에게 말씀하시니깐 아멘 그거는 예수님이 걸어오시라니깐 걸어가야 한다 아멘 이건 계시된 믿음이에요. 근데 문제는 뭐에요? 현실이에요 현실. 바단데 그걸 걸로 올라가면 빠지는거지 당연히 그러잖아요. 바다에 바다에 물위에 섯는데 빠지는게 너무 당연하잖아요. 그러니깐 그때는 뭐가 필요해요? 비록 여기가 물이고 바다고 그리고 이 바다위에 서면 내가 빠지겠지만 그러나 주님이 오라고 하시니깐 안빠질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게 유추한 믿음이에요. 하나에 계시를 통한 믿음은 수많은 유추를 통한 믿음을 낳고 그걸 통해서 우리에 삶 전체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되는 것이죠. 그런 그죠? 반드시 주님이 오라고 그러시니깐 반드시 여기는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고 걸어 갈때는 걸어갔는데 그때 어느 한순간에 내가 이 물위에 서 있으면서 어떻게 안빠질 수가 있을까 아무리 주님이 오시라고 그러시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에 물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니깐 계시를 통한 믿음과 유추를 통한 이 믿음이 함께 계속적으로 역사 할때 우리에 삶이 믿음에 삶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는 계시를 통해서 믿음을 갖게 되었고 그리고 그 계시를 통해서 이 아이가 죽는 다고 할 지라도 다시 살 것이라는 유추를 통한 믿음을 갖게 된 것이죠. 두 가지를 모두 믿었어요. 우리에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죽이려는 순간에 이르러서 “아 됐다.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마라.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줄 알았노라.” 이게 말이 안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모든걸 아시는 분인데 근데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에만 있지 않고 그것이 바깥으로 이게 흘러 나오기를 하나님께서 원하고 계시는.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생각이고 하나님의 뜻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주님께서 지켜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이 한 주간을 시작하며 저희들이 이 새벽을 드립니다. 오 주님 오늘도 저희들과 함께 해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에게 주님에 크신 사랑과 은혜를 보여주시고 그래서 저희들이 매 순간 하나님에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저희를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쫒아서 믿음으로 순조하며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큰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에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