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29일 새벽예배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히 11:23).
이 이야기는 이제 다시 애굽에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죠. 이제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가서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번성하게 되는 이스라엘에 자손들에 수가 정말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점점 커졌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구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제 이스라엘에 역사에 있어서 요셉이 애굽에 내려갔던 사건 그래서 특히 히브리인에 노예로서 애굽에서 국무총리가 될 수 있을까? 에 대한 답들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사실은, 야곱과 요셉으로 이어지는 아브라함의 집안사람들은 계통적으로 볼 때 셈족 계통이고 에굽에 있는 사람들은 합리투어 세미틱이라고 해서 셈족과도 관계가 있지만은 족속 자체가 틀립니다. 그리고 언어에 형태 자체도 틀려요. 그리고 창세기에 보면은 그런 암시가 나오지만, 에굽사람들이 셈족들을 아주 굉장히 천하게 여겼고, 함께 밥을 먹는 것 자체를 아주 굉장히 불결한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그렇게 멸시하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그런 족속의 사람이 어떻게 에굽에서 국무총리가 될 수 있었겠는가 에 대해서 의문들을 제기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것은 신화다 하는데 그게 아니고, 에곱에서 이제 잠깐 동안 애굽에 역사 속에서 히소스라고 하는 셈족이 애굽을 지배하는 시대가 잠깐 나타납니다. 그때에 그 사람들이 셈족 이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많은 애굽 족속돌이 있고 그 위에 셈족들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때에 셈족 중에 하나인 요셉이 뛰어난 사람으로 발탁이 되어서 그래서 국무총리로 오르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제 정서상으로 봐도 큰 문제가 없다 이거죠. 그래서 세월이 많이 흐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서 이제 출애굽기 1장을 보면 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나타났다 이렇게 돼 있거든요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누구냐 그 사람이 누구냐를 이야기하면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어쨌든 시제는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다시 히브리민족을 비롯한 이민족에 대한 압박이 시작되는 거죠. 그러는 와중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주 굉장히 왕성한 번식을 하게 됩니다. 그게 종족적으로 근대 고대사회에서는 그 숫자가 굉장히 무서운 세력 이였거든요. 그러니깐 아무리 노예지만 이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나니깐 그러니깐 두려움을 느끼게 된 거죠. 그래서 이제 산파들을 억압을 해서 그래서 이제 아이를 받게 되는데 그때에 히브리 사람들이 아이를 낳을 때 그 아이가 남자면 죽여 버려라 이렇게 아주 엄한 지시를 내리죠. 근데 그 일을 차마 못하는 거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같은거 때문에 그러는 거죠. 근데 여기에서 거론되는 것은 산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세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죠. 그래서 이 모세가 태어나서 즉시 신고하고 죽여야 했지만은 그러나 이 아이를 숨기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벌써 사내아이는 석 달 정도 시간이 흘러가면 우는소리가 여자아이와 틀리잖아요. 그러니깐 벌써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되니깐 이제 그 아이를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 강에 띄우게 되죠. 근데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뭐냐면 그런 일연에 사건들 보다는 아주 아주 지엄한 이 세상 임금에 명령이 있었다 이거죠. 그리고 이 남자아이를 신고하지 않고 계속 키우면 본인들의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는 커다란 위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를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고 그렇게 기를 수 있었던 것도 믿음 이였다 라고 말하는 것이죠. 이것은 히브리서 기자에 신약적인 해석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생각해보면은 단순히 아이에 대한 부모의 정을 끊을 수 없어서 그래서 아이를 붙들고 있었다. 구약을 보면 우리가 그렇게 해석을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신약은 아주 분명하게 그자체가 믿음 이였다.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의뢰의 마음 하나님을 소망하고 바라보는 그 의지하는 믿음이 바로 이렇게 커다란 위협이 기다리고 있는 이 일을 수행하도록 만들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이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석 달 동안이나 이 모세를 신고하지 아니하고 이 아이를 간직하고 기를 수 있었다 하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까지가 믿음 때문이고 어디까지가 부모에 대한 아이에 대한 사랑 때문이냐 우리는 그것을 획일적으로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신약 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에 사건을 그렇게 믿음으로 해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에 기록자가 그렇게 해석을 했으면 그것이 맞는 거다 왜 하나님의 영광을 따라서 이 성경을 썼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이 신약기자에 보도를 따라서 이제 모세의 부모가 모세를 낳았을 때 두려움 속에서도 그를 신고하고 죽이지 않고 간직하고 끝까지 그를 보호했던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의뢰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라고 하는 사실들을 우리들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 믿음은 모든 세상의 위협이나 협박 도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이처럼 견디기 힘든 고통스러운 상황들을 극복하며 나아가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는 거죠.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습니까? 모세를 갈대 상자에 띄워 보냈지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그 아이를 계속 살펴보게 하고 그리고 바로 공주 아들로 입양을 하게 되는 사건이 나타나잖아요. 그 정도가 아니고 유모로 들어가서 그 아이에게 히브리 사람으로서의 민족정신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상들을 교육시켰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모세의 이후 생애에서도 너무 잘 나타나는 것이죠. 이 모든 것들이 믿음으로 모세를 버리지 아니하고 지켰던 그 모세의 부모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이였다고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항상 믿음은 모든 것이 다 잘될 것 같은 상황을 미리 예측하게 하시고 보여 주시면서 그렇게 하게끔 하시는 게 믿음이 아닙니다. 정말 믿음이 필요 할 때에는 믿는 것 이외에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 뒤집어서 반대로 이야기 하면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 어리석을 것처럼 보일 그 때에, 그 때에 오히려 믿음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 밤에도 잠들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믿음이 있는 가? 우리들에게 이미 일어난 일. 그리고 지금 우리들이 경험하고 있는 일. 우리가 어떤 조직을 만들고 우리들이 어떤 대책을 세우고 할 때에 그것들이 가져 올 수 있는 예상되는 효과만을 믿는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 신앙생활이 아닐까? 하나님이 꿈같이 놀라운 일을 행할 거라는 믿음 이제까지 일어나지 않은 일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전심으로 의지하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성경에 약속된 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쓰심에 순결해 지면 하나님이 그렇게 일하실 것이라는 믿음 강력한 확신 그런 것들이 정말 우리에게 있는가. 어쩌면 우리에게 그런 믿음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그 일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우리에게 그런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가 될수록 하나님은 믿음에 사람들을 많이 찾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는 신앙 그분을 의지하는 진실한 믿음 이런 것들을 기대하고 또 갈망하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끔 되게 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기도 하겠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지켜주시고 오늘 이 아침 이른 시간에도 하나님 앞에 이처럼 나아와서 간고하고 기도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도 은혜를 내려주시고 하나님 특별히 붙들어 주시옵소서. 그래서 저희들이 이렇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좋은 믿음 속에서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힘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에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