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14일 새벽예배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히 5:3-4).
하나님 앞에 죄인들을 위해서 대신 제사를 드려준다. 그런 면에서는 그가 비록 대제사장이지만은 그러나 그 백성들 가운데서 취한바 된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깐 그 사람에 실제를 놓고 보면 존귀할 것도 없고 영광스러울 것도 없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한 사람 이였을 뿐이죠. 그렇지만 그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져다주는 효과를 생각한다면 그는 결코 작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죠. 그가 제사를 드림으로써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 죄를 용서받게 하고 그리고 또 자신에 그 제사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와 만나주시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가능하게 만들었던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 효과는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 직분은 온갖 연약함에 둘러 쌓여있는 인간이 입은 직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아주 존귀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제사장들 중에 대제사장 이였던 것처럼 그는 모든 구별된 제사장들 중에서 가장 성결한 자로 그렇게 하나님 앞에 인정받아야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대제사장에 직분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서도 그것을 존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존귀는 아무에게나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특별히 택한 아론에 자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였습니다. 거기에서 대제사장이 나오고 그래서 거기에서 대제사장이 나오고 그 대제사장이 바로 이러한 존귀한 직분을 행할 수 있었다는 거죠. 왜 다른데서는 안 나오고 알원에게서만 알원에 집안에서만 나왔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그들을 택하셨기 때문이죠. 아론에 자손이 특별한 특징이 있다거나 자연적인 특질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한게 아니라 하나님이 레위지파를 구별하신 것처럼 또한 알원에 집안을 구별하셔서 그들을 그들에 후손으로 대제사장 되게 하신 것. 그것 때문에 그들이 거룩해 진 것이죠. 그러니깐 대 제사장에 직분이 그렇게 하나님에 특별한 선택에 의해서 구별되어 졌던 것처럼 구별되어 졌던 것처럼 그렇게 구별되어 졌던 것처럼 예수님에 우리를 위한 그 대제사장에 직분도 하나님이 아무에게나 주실 수 있는 직분이 아니였다 하는 거죠. 심지어는 예수님 자신도 그것을 스스로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였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택해 주셨기 때문에 당신이 그 우리에 죄를 위해서 당신 자신을 제물로 영원히 단번에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는 새롭고 산 길을 열어 주실 수 있는 그 일을 하게 되셨다 하는 것이죠. 하나님에 선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선택에 의해서 하나님에 선택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우리 주에 취한바 되셨으나 근본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 이셨죠. 그렇기 때문에 앞에 있었던 알원에 후예인 대제사장들은 계속 계속 바뀌어서 새로운 대제사장이 꼬리를 물고 세워 졌어도 일시적인 하나님과의 교통밖에 가져다 줄 수 없었는데 그런 예수님 그런 분이셨기 때문에 영원히 단번에 자신에 몸을 제물로 드려서 우리를 하나님과 영원히 화목하게 만들어 주실 수가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깐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게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자기를 드려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주신 그 놀라운 속죄에 효과 때문에 오늘 우리들이 자유를 누리며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그 죄에 용서를 받고 하나님을 우리에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라 이거죠. 그 효과가 우리 한분 예수님이 죽으셨으니깐 한 사람에게만 미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미친것이죠. 왜?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속죄에 제사를 드릴 때 백성들은 수 없이 많아도 대제사장은 몇 명 이였어요? 한명 이였거든요. 또 백성들이 많이 있어도 그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속죄에 제물을 몇 개 였어요. 속죄에 제사는 몇 번 이였어요. 한번이였단 말이죠. 한번. 그러니깐 예수님이 바로 이러한 원리에 따라서 당신은 한 분이고 제물도 당신에 몸 하나였지만은 그런 독특한 대제사장에 신분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당신 한분이 한 몸으로 한번에 제사를 드렸는데도 우리 모든 사람들에 죄를 용서 받게 하실 수가 있었고 당신에 죽으심을 통해서 제물을 삼아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가지게 하실 수가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전에 있었던 대제사장들은 근본이 사람 이였기 때문에 또 제물이 이 세상에 있는 짐승들이였기 때문에 잠시만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 모든 죄를 용서받게 한다 할지라도 잠시만 그렇게 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대제사장처럼 우리에 형제 중에 한분으로서 대제사장 그 존귀한 자리에 나아가셨지만 동시에 그분은 참사람인 것과 함께 그 근본이 예전에 앞에 있었던 대제사장과는 달리 하나님 자신이였어요. 뿐만 아니라 제물도 앞에 있었던 대제사장이 바쳤던 제물은 이 세상에 잇는 짐승들이였지만 그러나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 바치신 제물은 죄 없는 육체이신 당신 자신에 몸 이였습니다. 이러한 몸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인간에게 이러한 몸이 있을 수가 없고 오직 죄가 들어와서 타락하기 전에 아담이 가졌던 그 순수한 죄 없는 그것 밖에 똑같은 것이 없어요. 그래서 그렇게 죄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고 아담이 범죄했기 때문에 그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범죄하기 전에 아담과 같은 죄 없는 순결한 육체가 필요 했어요. 근데 그 아담에 타락 이후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은 이 죄를 자손들이 물려 받게 되는 거예요. 이것을 가리켜서 어려운 말로 원죄라고 부르잖아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그 죄를 신분적으로나 그 다음에는 상태적으로나 모두 물려 받게 되는 거예요. 죄인으로 태어나는 거죠. 그러니깐 죄인으로 태어나고 또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고 그래서 더 죄인이 되어가고 이 아래에서 이러한 공식에서 누구도 예외가 없는 거죠. 그러니깐 대제사장들이 아무리 간절한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죄를 용서받게 해주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주고 싶어도 당신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한번에 자기에 몸을 드리는 제사로 영원한 속죄에 효과를 가져 올 수는 없었던 것이죠. 오직 예수님이 참 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에 아들이셨기 때문에 또 에수님에 그 사람에 몸이 죄가 없으신 순결한 몸 이였기 때문에 그분이 드리신 한 번에 제사가 영원한 속죄에 효과를 가져와서 주님을 믿을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을 믿은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속죄에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단 말이죠. 그 속죄에 제사가 무엇 이였습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것 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에 그 깨끗한 역사는 이 한가지 사건을 바라보면서 달려온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던 그 직전에 뭐라고 말씀하셨죠? 다 이루었다. 근데 사실 육신적인 눈으로 보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는 그 장면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던 사람들은 거의 없단 말이죠. 예수님에 생애에 보면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였을 때에 예수님에 대한 홍보적 효과를 가져 올수 있는 대목들은 예수님에 생애 가운데에 많이 나타나잖아요. 신자나 불신자나 모두 깜짝 놀라고 예수님을 기이여기고 찬송하게 되는 그런 장면들 말이죠. 몇 장면만 예를 들자면 예를 들자면 광야에서 마귀를 이기셨을 때도 통쾌했죠. 그죠? 그 때도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지 않으셨죠. 또 백사장 광야에서 그 많은 무리들에게 떡과 고기를 먹이 실 때도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삼으려고 열광적으로 예수님을 떠받들 때에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단 말이죠. 결국 나사로우가 무덤에서 살아나는 그 순간도 그거 얼마나 영광스러운 장면이에요. 그죠? 근데 절대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생애 마지막에 예루살렘 성에 입성할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소리를 치며 그 분을 환영할 때에도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 말씀 안하셨단 말이죠. 어떻게? 멸시와 욕 가시관 쓰셨네 멸시와 욕을 당하시고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혀서 운명하시는 그 순간에 그 순간에 다 이루었다. 뭐가 구약에 모든 당신을 바라본 예언이 다 이루어 졌고 이렇게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어서 단번에 자기 몸을 드리심으로 죽어서 구원을 이루실 이 영광스러운 구원에 역사 율법에 죄인을 향한 율법에 집요한 사망에 요구 이런 것들을 모두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거예요. 그것 때문에 지난 주일에 말씀 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그 놀라운 상태와 신분에 자유 그리고 우리에 내적인 역사에 자유를 주셔서 우리를 그 모든 죄에서 해방되어 이제는 자유하게 살게 하신거에요. 그러기 때문에 신자가 죄의 지배를 받고 종로를 타는 것은 패망하고 도망가는 일본군에 바지 자락을 붙잡고 자기를 노예 삼아달라고 애원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죄와 그 모든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내셨으니 우리는 그 자유를 누리면서 그 은혜의 원리에 부합하게 살아서 그래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속죄해 주신 보람을 느낄수 있도록 만들어 드려야 해.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이제는 죄 아래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살아서 하나님을 자유롭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이 되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