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신자의 표지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 5:14).
그렇게 어제 말씀드린바와 같이 말씀 안에서 자라가야 할 필요성은 아주 절박한 겁니다. 절박한 겁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에 말씀 안에서 자라가지 않는 것 그게 세월이 흘러도 단단한 식물을 먹으면서 말씀해서 자라지 않는 것은 원인이 뭐냐? 원인이 뭐냐? 물론 죄와 은혜에 지배에 교리를 말씀 드리는 가운데 구조적으로 도저히 단단히 식물을 먹고 성장 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을 겁니다. 교회가 바르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던지 하면은 굉장히 힘들겠죠. 그렇지만 그걸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자신에 자라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고민하지 않는 것 그거는 말씀에 의해 변하지 않고 자라지 아니하는 자기 자신에 신앙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자기가 동의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결국 그것도 부주의한 건데 그것도 자기가 선택한 겁니다. 선택을 한 겁니다. 그러니깐 구조적으로 정말 성장할 수없는 그런 상황 속에 잇는데도 진짜 하나님 앞에 바른 신앙을 갖길 원하는 사람들은 그 속에서도 고민을 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 만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많이 보잖아요. 그러니깐 최소한 거기까지는 할 수 있잖아요. 그러면은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말씀에 갈렵해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간에 그 말씀을 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세요. 이게 하나님에 선하심입니다. 절대로 그렇습니다. 그러니깐 세월이 많이 흘러도 세월이 많이 흘러도 이렇게 성장하지 않는 그런 신앙 말씀을 먹고 잘 자라지 않는 믿음 이런 것들은 반드시 그런 거를 보여주는 겁니다. 거기에는 성장이 없죠. 세월이 흘러가도 항상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근데 단단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하면은 우선 선악을 분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야기 하는 그 선악을 분별 한다는 게 그럼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나? 분별하죠. 그러면 아직까지 말씀에 있어서 어리고 미숙한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그럼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나? 분별하죠. 분별하는데 그 정도 다 다르단 말이죠. 세상 사람들이 분별하는 선악에 정도는 자기에 양심과 도덕적 판단에 따라서 선악을 겨우 분별하죠. 그런데 그것을 어느 정도 믿을 수 있을까? 예를 들자면 세상 사람들이 악한 것이 아니라고 받아들이면서 뭐 어때 하고 살아가는 많은 것들을 성경이 정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그죠? 그러니깐 그거 보면은 우리들이 내리는 선악에 대한 판단과 세상이 내리는 선악에 판단이 정확하다면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보면서 그렇게 괴로워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필요가 없어요. 같은데 판단만 같아도 일단 전체적인 흐름이 같이 갈 수 있잖아요. 그죠? 근데 달르다 이거죠. 뭐 어때 그건 괜찬은거야 좋은거야. 그리고 이건 올바른거야. 그리고 사는데 그런 것들이 성경에 의하면은 모두 옳지 않은 것들이에요. 뿐만 아니죠. 신앙이 미숙한 사람들이 내리는 판단도 그런거죠. 그죠? 무지한 사람들에 판단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너무 답답하고 그리고 너무 어리석죠. 신앙이 어렸을 때 우리가 무지 했을 때 우리들이 내렸던 판단이 얼마나 미숙했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이 신앙이 어린 사람들은 그렇게 밖에 판단을 못하고 또 선과 악으로 앞으로 발전해서 나타나게 될 것들에 대해서도 분명한 인식을 못 갖는 것이 젖을 먹기만 하고 자라는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들 단단한 식물을 먹고 많이 장성한 사람들은 말하고 판단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고 어른과 같아서 정확하고 분명하고 선과 악을 가려냅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것을 행할 때에 악처럼 보이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왜 이것이 악한 것이 되고 지금은 악한 것처럼 보여도 왜 그건 사실 선한 것인가 하는 판단을 이 장성한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거예요. 이것들이 계속 자라나는 거죠. 지난 주에 터키에 갔었거든요. 말씀에 은혜를 주셔서 밤에도 일어나서 연구하고 싶고 낮에도 연구하고 싶고 그냥 그래요. 밤 한숨 안자고 비행기를 타고 날라갔는데 자다가 눈 확 떳는데 호텔에서 3시 반이에요. 다시 일어나서 책상에 딱 앉아서 말씀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 이제 아침시간이 됐는데 정신 못 차리고 토할 것 같을 텐데도 이상하게 피곤하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영적인 거예요. 은혜를 쭉 받으면은 왠만하면 피곤이 물러가요. 정말입니다. 그래서 육체를 좀 쉬어 주신 해야지만은 그건 틀림없어요. 쉬어 주면선데 항상 뭘 이야기 했냐면은 영으로 육을 이렇게 이기면서 살아가는 비결들을 배워야 된단 말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막 자기 좋아하는 일 하면 그렇게 힘들게 하는데도 그냥 얼굴 반짝반짝 빛나잖아요. 애들 한 8시간 컴퓨터에 매달려서 보내는데도 피곤하다고 그럽디까? 안그러잖아요. 자기 좋아하는 일에서. 근데 이제 그리고 집회가 시작이 됐어요. 거기 다 선교사들인데 다 좋은데 안나오고 그런 사람. 이게 좀 뭐라할까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도 고민을 했어요. 뭘 하나 뭘 해야 되나. 그래서 가서 요즘에 제가 개인적으로 공부하고 있는게 ( )그걸 공부하다 이걸 해야 되겠다. 왜냐하면 거기는 선교사들이 한 700명 있고 그 다음에 크리스챤이 삼천명 정도 있는데 그 중에 이백명 선교사가 한국 사람입니다. 근데 그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들었거든요. 어떻겠냐 그랫더니. 상당수에 선교사들이 돌볼 영혼들이 없는 거예요. 그렇게 예수를 안 믿으니깐 그러니깐 그런 가운데 얼마를 기다려 할지 모르니깐 거기서 의기소침해지면서 자기 영적으로 자꾸 가라앉는다. 그런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우리에 영혼이 가라앉는 것이 진짜 상황 때문인가. 그래서 이제 ( )을 하루에 공황에서 내렸는데 바로 집회 장소로 데려가더라고요. 가서 이제 잠깐 이야기 하고 들어와서 자고 아침서부터 했는데 하루에 한 5시간 아니 5시간 한 적은 거의 없고 6시간 정도? 6시간정도 이제 강의 해가지고 도합 해가지고 15시간 정도 한 것 같아요. 다 못했죠. ()이 얼마나 양이 많은데. 근데 거기 참석한 많은 지체들이 강의를 쭉 하는데 신음소리를 내요. 신음소리. 그게 왜그래요? 하아. 저거 치명적이였는데 몰랐는데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깐 선악을 분별하는 정도가 다 사람마다 달라요. 그거는 뛰어난 양심이나 타고난 천부적인 재질을 가지고는 안되요 말씀을 먹으면서 이렇게 계속 저 그래서 뭐. 어저께 밤에도 그랬어요. 집회 끝나고 이제 새벽기도 설교하려고 어저께 밤에 왔거든요. 12시쯤에 도착을 했어요. 근데 정말 이렇게 하나님에 말씀에 무지해서 어떻게 하나 선악에 대한 분별이 말이죠. 정말 이렇게 미숙해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그런 거를 요새 매일매일 느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자기에 교인들을 위해 기도할 때 뭐냐 하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 했던게 뭐냐 하면 영적 총명이에요. 영적 총명. 그게 저기 히랍어 성경에 의하면. 영어 성경에 의하면 understanding 하고 나와요. understanding 대부분에 총명이 그러니깐 이해란 말이죠. 총명이. 영적 총명이라는 것 자체가 알 수 없는 신령한 세계나 이해하기 힘든 죄와 은혜에 세계에 대한 지적 판단이에요. 그 총명이라고 분별력이란 말이죠. 총명력 통해서 받게 된 어떤 인상은 반드시 그 사람에 지성에 새겨지는 거거든요. 그니깐 얼마나 더 많은 빛이 필요할까 여러분 제가 하나만 말씀 드리고 오늘 마칠께요. 내일도 또 하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만 더 말씀 드릴께요. 그 왜 여러분들이 말씀을 많이 배웠는데 배웠고 알았는데 그런데도 영적 생활에 대해서 도저히 동의 할 수 없는 상태를 가지고 살아가는 교인들을 여러분 보게 되죠. 볼 때 있죠 그죠? 그 문제가 뭘까 문제가 뭐까요. 열심히 기도 안하고 순종 안하고 그러겠죠. 사실이에요. 100% 사실입니다. 그러니깐 어떤 때에는 그 사람보다 훨씬 하나님에 말씀을 적게 알고 있는 사람도 살아있는 삶을 사는 거예요. 능력있는 삶을. 그런거예요. 그러니깐 뭐냐하면 단순히 많이 안다고 되는게 아니라 작은 말씀을 가지고도 그 말씀에 진리가 담겨 있으니깐 잘 순종하고 어린 아이같이 따르고 열심히 기도해서 죄가 다시는 자기 안에 깃들지 못하도록 이리 틀을 형성하며 살면 그러면 말씀을 많이 갖고 기도 안하고 태만하고 그리고 불순종하는 사람보다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거예요. 그건 충분히 동의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러면은 아까 말씀드린 말씀을 많이 알고 있는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깨어날 수 있나. 그게 바로 뭐냐 하면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 맞은 것처럼 지적인 충격이 없이는 그 사람이 거기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요. 근데 바보같은 일이 일어난다 이거죠. 뭐냐하면 자신이 하나님에 말씀을 굉장히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많이 선생되는 것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얼마나 알길래 얼마나 알길래. 정말 하찮은 거예요. 말씀을 연구하다 보면은 정말 이 지식가지고 이만큼 산 것만 해도 하나님에 은혜다 그런 생각을 해요. 얼마나 알길래. 그래서 말씀에 큰 세계 앞에 서서 자신은 정말 하찮은 존재다. 그래서 그 괴테가 마지막 죽을 때 유언이 뭐냐 하면 저 창문을 열어 더 많은 빛을 그러고 죽었어요. 우리가 그런 마음을 가져야. 죽는 그 전날까지 창문을 열어 더 많은 빛을 나로 빛 가운데 살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오셔서 여러분에게 뭔가 한가지 소원이 뭐냐고 물으시면은 다 딴거 치워버리고 딱 한가지만 구해요 오 주님 더 많은 빛을 내게 주셔서 그래서 뛰어난 지혜와 총명으로 주께서 허락한 인생을 참된 신자로 살게 해주십시오. 그럼 하나님이 참 착하다. 그리고 나머지도 주시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