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일 새벽예배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 6 : 12)
녹취자 : 김용재
약속이 곧 기업은 아닙니다. 약속이 시련이 될 때에 기업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아버지가 계신데 큰 아들을 두고 둘째 아들을 불러서 이 재산을 대부분 너한테 물려 줘야 되겠다. 그러니까 이 회사도 받아서 하고 땅도 많이 있는데 그것도 네가 물려받아서 사람을 사서 농사를 짓도록 하여라. 내가 그렇게 하마. 이건 약속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서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둘 째 아들이 사람이 점점 망가지고 허랑방탕해 진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약속을 했지만 그러나 약속을 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신실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들이 자기가 아버지의 기대를 따라서 살고 약속을 따라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못 물려받게 되는 것입니다. 요번에 얼마나 사시는지 모르지만 사담 후세인이 장남에게 후계권력을 물려주려고 했는데 허랑방탕하고 공식석상에서 아버지 경호원을 총으로 쏴서 죽이고 이러니까 그게 처남한테도 물려주겠다고 합니다. 보도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성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을 해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에게 약속을 해주시냐면 자기의 택한 백성에게 약속을 해주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택한 백성들이 약속을 받지만 택함을 받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모두 그 약속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약속은 받았는데 그 약속이 이루어져서 그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사람들은 단순히 혈통이 선택된 백성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선택된 백성인 동시에 살면서 그 약속을 받을만하게 믿음으로 신앙으로 그렇게 산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 하나님이 그 대표인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했을 때 모든 백성들이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현되는 것을 본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어린 세대들만 보았단 말입니다. 나머지는 불신앙으로 인해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면서 끝까지 하나님이 택하고 약속을 주신 백성답게 살지 않는 사람들이 애써서 호소하려고 했던 것이 뭐냐면 무조건적 하나님의 선택,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입니다. 그래서 경건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약속을 유업으로 받기에 충분했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분투하면서 사는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했던 사람들이고 아까 말씀드린 그런 사람들은 게으르고 나태하게 살면서 믿음을 따라 살지 않으면서 자기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해서 살지 않는 하나의 구실로서 그 은혜와 사랑을 이야기한 사람들이입니다.
그러면 그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 그것이 오늘 성경에 나타나는데 부지런함과 믿음과 오래 참음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은 그냥 주시지만 그 약속이 이루어져서 그것이 자신의 유업이 되기까지는 이렇게 신앙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에 아멘한 사람들은 모두 사람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재산과 시간과 열정과 모든 것을 허비하며 복음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거룩하게 하리라 했으면 성화를 위해서 부지런히 살아야지 주께서 약속을 하셨는데 나는 못해도 주님께서 하실 거야라는 마음으로 살면 절대로 거룩해 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약속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일방적인 은혜이지만 그 약속이 실제로 성취되어서 자신이 유업으로 누리는 것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것도 하나의 성화의 한 영역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믿음으로 반응하면서 하나님 앞에 신앙으로 잘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그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본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첫째는 부지런함입니다. 그래서 게으른 삶은 게으름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부정적인 것 밖에 없습니다. 정욕, 부패, 죄, 하나님을 향한 반역, 영적인 태만, 쾌락. 이런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부지런하게 그렇게 하나님을 향해서 주님이 주신 약속을 가지고 부지런히 사는 사람들에게 소망도 넘치고 사랑도 넘치고 믿음도 넘치는 것입니다. 믿음이 가운데 탁 들어가서 부지런함과 믿음 그리고 다시 오래 참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는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 하나님의 인격과의 단단한 결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붙어있는 것 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자신에게 주신 약속이 유업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오래 참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약속을 주시고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그것만 이루어지는 걸 기대하지 아니하시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과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들이 시련이 되어서 그것을 유업으로 받는 것 두 가지는 항상 같이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유업을 누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뭐냐면 우리가 그 유업을 누릴만한 거룩한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변화되어서 그래서 주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그런 모습들이 되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갈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보다도 당장 급한 게 내가 누리는 것이니까 내 자신의 변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 그냥 뭐 하여튼 좋은 게 있으면 얼른 주셔서 잘 자랐으면 좋겠다, 행복하고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득 차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떨 때 보면 우리의 기도생활이 돼지들 같습니다. 그래서 왜 여러분 시골에서 경험했는지 모르지만 돼지는 절대 미련하지 않습니다. 밥시간이 되어서 저기서 뜬 물통 들고 오는 소리가 들리면 돼지가 코 박고 자다가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어쩔 줄 모르면서 밥통 앞으로 잔뜩 모입니다. 소리소리 지르면서 모입니다. 돼지가 밥통을 들고 부어줄려고 이럴 때 돼지들이 꽥꽥거리면서 서로 밀고 난리는 치지 않습니까? 그 때 뭐 그 돼지들에게 아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저 주인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우리 주인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우리 돼지를 키운 보람을 느끼게 해줄 수 있을까? 우리 한번쯤 생각해보자. 이렇게 하겠습니까? 밥을 밥통에 부어주면 그것을 먼저 먹겠다고 거기에 들어가는 녀석들도 있고 누워버리는 녀석들도 있습니다. 그렇듯이 그렇게 인간들이 하나님이 자신들을 향해 가지고 계신 기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것은 탐욕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향해 기대하시는 바가 뭔가 그것을 알고 약속의 유업은 항상 실현되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이 걸려서 유업을 성취하고 어떤 사람은 못합니다. 그것이 뭐냐면 주님을 믿는 온전한 믿음 속에서 부지런히, 게으른 것은 안 됩니다. 게으른 것은 아주 혐오스러운 죄악입니다. 뭘 하든지 부지런하게 살다가 어느 날 가야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부지런히 살고 그 믿음으로 오래 참고 그럴 때 하나님께서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