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 23일 새벽예배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 하시되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히 10:15-16).
그날 후로는 이라고 하는 건 뭐 특별히 어떤 날짜를 지정하는 것은 아니죠. 그날 후 라고 하는 것은 어 구약에 나오는 그 표현으로는 그 말셉니다 말세. 그래서 뒤에 있는 날 들 그런 의미거든요. 그래서 관용적으로 쓰이는 표현 이예요. 그래서 이거는 어떤 특정한 어떤 날 문자적인 날들을 의미 한다기보다는 뒤에 있는 때, 그러니까 나중에 후에 말세에 그런 정도의 의미예요. 그래서 어 그런 의미거든요. 그래서 인제 뒤에 있는 날, 후 이런 의미예요. 그래서 그날 이후에 어 그렇게 기록이 그런 표현을 쓴 거죠. 그래서 어 구약에 옛 언약을 따라서 짐승의 제사를 드리는 모든 그런 때가 지나고 새 언약이 주어지는 때가 있는데 어 그 날에 그날 이후에 그런 모든 옛 언약을 따라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러한 방식의 율법이 경륜하는 그날 이후에 그런 날 이 후에 그 하나님께서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 이라 하시고 내 복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율법에 대한 새 언약 새 언약을 주는 것에 대한 아주 풍부한 계시를 담고 있는 구약의 책이 예레미야예요 예레미야. 그래서 예레미야에 보면은 그 이 새 언약에 대하여 많은 계시를 담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 여기에 인용된 이 구절도 예레미야에서 인용이 된 겁니다. 옛 언약 하에서 율법이 있었는데 그 율법은 그 하나님이 사람의 몸 밖에 세운 것이었거든요. 그래 사람의 몸 밖에 돌비에 새겨진 거 아니예요. 그렇죠? 돌비에 새겨진 거죠. 근데 인간이 그걸 범했어요. 그리고 하나님 보실 때에 인간을 자주 반복해서 제사를 통하여 그 죄를 용서해 준다고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타락으로 말미암아 무능해진 그 인간 속에는 그 몸 밖에 있는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겐 없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율법을 하나님이 사람의 어 마음에 새기고 두고 그런 것 이예요. 그게 결국은 뭐냐면 은혜예요 은혜. 그래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을 다스리시는 방법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율법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예요. 그래서 불신자들을 하나님이 율법으로 다스리시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통치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 율법은 지금도 그 기능이 살아있어요. 그래서 믿는 자들은 더 이상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그 율법이 역사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그 율법을 따라서 그 사람들이 심판을 받고 율법을 따라서 그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판단을 받고 심판을 받게 되는 것 이예요.
그래서 신자 안에는 어 그 율법을 하나님이 그 마음에 두셨다라고 표현하는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그 율법을 마음에 두셨다라고 하는 것은 구약의 율법을 가슴에 새기셨다 그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스리는 새로운 법을 인간의 마음속에 주신 거예요. 그래서 그 마음에 두신 그 법을 통해서 인간을 다스리시는데 그래서 새 율법, 뭐 새 언약을 따라서 주어진 그런 새로운 원리를 우리 안에 주시는 거죠. 그래서 여기서 율법이라고 표현 되었지만은 그건 하나의 은혜 예요. 그래서 예를 들면 어 구약에서는 그 율법의 준엄함을 보며 인간들이 그것을 지키지 않을 수가 없었고 또 어기고 나면 하나님 앞에 용서해 달라고 빌면서 회개하고 그러면서 율법을 따라서 살아서 그것이 그들의 삶에 절대적인 표준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그 신자를 거듭나게 하셔서 그래서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생명과 성령의 법을 심으시는 거죠. 그래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생명과 성령의 법이 그 사람의 그 주도적인 그 선을 향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살게 하는 주도적인 성향을 창조하심으로서 그 사람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하시는 거죠. 강력하게. 그 자체를 여기에서 마음에 둔 율법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전에는 죄와 심판이 무서워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그 율법이 기능을 했는데 이번에는 내 안에 두신 생명과 성령의 은혜의 은혜가 또 하나의 주도적인 경향성, 새로운 주도적인 경향성이 되어서 그래서 믿음의 원리를 따라서 살게 되면은 어 이 자기 안에 새롭게 창조하신 새 본성이 그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하나님이 그를 인도하시고 역사하시는 거죠. 그래서 죄를 죽이고 죄를 죽이는 삶을 살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믿음의 원리를 따라서 살려고 하면은 그 죄의 경향성보다 더 훨씬 더 강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게 살려고 하는 선의 경향성들이 내 안에서 역사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그 역사하는 그 힘이 마치 몸밖에 새겨진 율법을 보며 두려워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율법을 중심으로 하는 삶이 되었듯이 그것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힘이 되어서 그를 그 하나님의 그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신다라고 하는 거죠. 근데 이건 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죠. 그래서 우리 안에 그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주시고 새 생명을 주시고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그리고 또 순종하며 그렇게 살아가려고 할 때에 또 이미 생명과 성령의 법을 우리에게 주셨지만 또 끊임없이 성령의 은혜를 주셔서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지난 주일에 말씀 드렸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재창조하시고 그래서 우리 안에 이 성령의 놀라운 역사로 우리 안에 재창조 하시고 그렇게 다시 창조된 우리 안에 있는 본성을 통해서 바깥으로 그 우리 안에 있는 새롭게 창조된 것과 똑같은 그 질의 그 새로운 삶, 그리고 인격들이 여기서 이렇게 흘러나오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죠.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두신 그 영혼의 창조의 창조하신 신성의 영광의 충만한 것을 우리를 통해 나타내고 싶어 하시는 거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에게 옛 언약을 폐하고 새 언약을 새우시고 또 우리에게 그 하나님의 그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의 법을 우리 안에 두시고 우리를 그 성화의 원리를 따라 살아갈 때에 그런 은혜를 우리 안에 두신 모든 이유가 결국 마지막에 돌아와 보면은 무엇 때문이냐 하면 다시 다시창조의 원래의 목적으로 우리를 돌아가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의 만들어진 이 피조세계를 통해서 영광을 받고자 하시는 그 하나님의 그 간절한 열망이 우리의 구원 속에 ( ) 거예요. 그래서 순종하면서 살아야 돼요. 그래서 자신을 이 온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순간순간 하나님을 버리면서 그 악을 선택하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이 만족을 하고 하는 이런 행동들은 이 미친 짓이라 이거죠. 그렇게 해서는 인간이 도저히 행복해 질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