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하게 하시는 하나님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 23:11)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겼으니까 사도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사실 바울은 오히려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후에 자기 동족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인간존재의 아름다움이 영혼의 아름다움에 있다면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영혼에 대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변화받아서 그 사랑을 알고 새사람이 되기 전까지는 인간의 영혼이 정말 귀하다라고 하는 거 잘 모릅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주님을 믿고 깊이 변화되어서 주님 만나고 나면 그 다음에 정말 그 인간을 제대로 사랑하게 되는거죠.
그 때 예전에도 우리의 가족들을 사랑했지만 그렇게 변화를 받게 되면 가족들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지 않습니까?
가족들을 그렇게 사랑하고 가족들을 더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그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똑같은 일들이 사도 바울 안에서도 일어나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오죽했으면 (?내가 나의 고육지친 중 몇이?) 주님을 믿어 구원에 이룰 수 있다면 자기가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내가 정말 원하는 바다.
그럴 정도로 그 동료?를 깊이 사랑했는데 그 사람들로부터 이렇게 거절을 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박해를 받았을 때 그 사도바울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질 정도로 아팠겠습니까?
더군다나 죄수의 몸으로 여기에 끌려와 있는데 그렇게 마음이 적적하고 고통스러울 때 주님이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다 네가 예루삼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담대하라는 말씀은 성경에서 여러군데 나옵니다. 예수님이 담대하라고 말씀하신 사람들은 예외없이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을 보여주신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거스려 사는 죄인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당신과 친밀한 교제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가 하고 있는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그러나 많은 난관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즐겨서 하시는 말씀이... 주님이 나타나셔서 이 바울에게 대담하라고 말씀하신 사실을 보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또 그가 지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깨달을 수 있는 진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사람들은 항상 평탄한 길을 가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한다고 해서 고난이 없고 평화로운 길을 가는 것도 아니구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을 행한다고 해서 항상 고난과 시련이 가득찬 길을 걸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일시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있구요. 순종하기 때문에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고통을 당하기 때문에 괴로워할 수 있게 되는 상황도 허락을 하십니다. 단기적으로는 주님을 거스르는 때에도 형통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어쨋든 여기서도 바울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고 있는데 많은 고통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담대하라고 하시는 거죠.
우리가 무엇을 행하든지 이렇게 주님이 인정해 주시는 길을 걸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주님이 인정하시고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해주시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바로 이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편에 서 있고 내가 하는 일은 주님이 기뻐하시며 따라서 내가 난관과 시련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주님을 위해 당하는 고난이며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실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갖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하나님을 섬기면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것이 그 사람들에게는 보석과 같이 아주 중요한 조건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편에 서 있으며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그분이 하시고 싶어 하시는 일이며 그러므로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아주 중요한 주님의 약속이며 그리고 믿음입니다.
그 다음 보여주는 것은 '내가 예루살렘에서도 복음을 증거한 것과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이것은 사도 바울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메세지였습니다.
20장에서 예배서? 교회에 있는 장로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에는 '예루살렘에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예루살렘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일차적으로는 예루살렘과 관련 지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환란과 결박이 나를 기다린다고 하나 내가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하면은 내가 생명을 조금도 아까운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렇게 하면서 예루살렘 성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더 큰 계획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전한 것이 동족들의 종교의 우두머리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게 한 것이라면 로마에 가서는 황제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획은 때때로 우리의 생각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만큼 헌신할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보다도 더 뛰어나고 놀라운 기회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얘기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기회들은 누구에게 들어가냐면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가고 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고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일들을 행하고 주님께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그 이후에 이어질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시지만 순종하지 않고 불충성하고 하나님을 거스르게 되면 그 이상의 계획들이 우리들에게 들어나기가 어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지나서 또 다른 계획을×3 보여주시면서 당신의 일들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더 많이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어차피 인생에서 참된 쉼과 행복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명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만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런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 자비 이런것들에 대한 분명한 앎이 있고 그 자비와 사랑 속에서 하나님이 개별적으로 나에게 맡기신 사명이 무엇인가 이것을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헌신하고 충성하며 살아가는 그런 진실하고 성실한 삶이 없이는 주님을 섬긴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주님을 섬기며 걸어갈 때에 그 약점과 결점을 보고 지적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 사람의 부족한 것을 채우면서 자기도 고난을 받으며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길 뿐아니라 자신에게 그 맡겨주신 사명을 위해서 신명을 다 바치며 그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또다른 사명의 지평을 열어서 우리에게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목숨있는 날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당신의 계획들을 끊임없이 보이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