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17일 새벽예배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 13:1-3).
이제 12장까지의 여러 가지 교회의 위기들을 극복하고 다시 교회가 평안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13장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이제 이렇게 13장으로 넘어와서 맨 처음에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장면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이렇게 사람들이 흩어진 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또 핍박을 받으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헌신적인 삶으로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13장부터는 조직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전략을 가지고 선교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13장은 매우 의미가 깊은 장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이제 선지자와 교사들이 있으니 하고 이제 바나바부터 시작해서 사울까지 쭉 나오니까 바나바야 이미 사도행전 4장에서부터 예루살렘교회의 저명인사였으니까 이해가 되지만 이 사울이 마지막에 이 사람의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예루살렘교회에서 이 사람이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 자리매김했다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선지자와 교사라고 그랬는데 선지자는 원래 구약시대에 속하는 사람이었는데 신약시대에도 상당기간동안 이 선지자라고 하는 직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를 합니다. 원래 구약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해석해서 그래서 그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그것이 선지자의 가장 중요한 직무였습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중요한 역할은 모세의 율법을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에 잘 적용하게 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선지자의 임무였습니다. 우리들이 흔히 선지자 하면 미래의 될 일을 예언해주는 사람이다. 물론 그런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그것은 선지자에게 중요한 기능은 아니었습니다. 선지자의 사명은 모세오경을 잘 풀어서 그래서 그 시대에 모세 때와는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판단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이런 것이라고 하는 것을 외치고 전달하는 그런 역할을 사람이었습니다. 아직 이때에는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전이니까 잠정적으로 신약성경이 완성되어서 교회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한시적으로 하나님의 섭리가운데서 신약시대에도 선지자의 역할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선지자가 나오는 것이 구요. 교사는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이런 교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목사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교회를 다스리고 치리하는 입장에서 보면 감독이고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면 교사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나 또 이제 에베소서에 보면 목사라는 말도 나오고 교사라는 말도 나오거든요. 어쨌든 오늘날로 말하자면 목사에 가까운 그런 교직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문적으로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하면 되요. 그런 사람들의 이름이 쭉 나오는데 이런 사람들의 이름이 쭉 나오는 이유는 그중에서 맨 위에 나오는 바나바와 맨 마지막에 이름이 거명되고 있는 사울 두 사람이 선교를 위해서 특별히 파송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선발을 해서 교회에서 이들에게 부여한 임무는 무엇이냐 하면 흩어져 있는 교회들을 든든히 서가고 있는지를 잘 돌아보는 것 이것이 이들에게 부여될 임무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받게 되는 것이죠. 이런 놀라운 지혜, 이미 세워진 교회들을 돌아보고 격려하는 그러한 선교적인 사명을 언제 깨닫게 되었느냐 하면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 선교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사명이 언제 파악이 되고 깨달아졌냐하면 이제 이 사람들이 주를 섬겨서 금식할 때에 그런 사명들이 깨달아졌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이 그러하듯이 선교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선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는 주님의 마음을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펼치는 것 그것이 선교에요. 그리고 그렇게 주님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주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들이 있어야해요. 그래서 주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들이 있을 때에 그들이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섬기면서 주님의 마음이 함께 그들에게 알려지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은 누구에게 이런 당신의 마음을 나누어 받을 수 있도록 허락을 하시느냐 그것은 바로 당신을 전심으로 찾는 사람들 특별히 사도행전에 보면 기도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마음을 나누어 갖게 됩니다. 여러분은 사도행전 10장에서 이방에 처음 복음이 전파되던 고넬료집안의 회심의 역사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때에도 역시 동일하게 기도하는 베드로와 기도하는 고넬료가 교통하게 하심으로서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잖아요. 그 위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데 어떻게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남기신 부탁,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을 너희에게 부어주실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라는 명령을 따라서 그들이 모여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거기에 성령님이 강림하셨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이런 모습은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주셨죠. 그래서 예수님이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사도들을 세울 때에도 이미 예수님이 온밤을 세우는 기도의 헌신 끝에 사도들을 세우셨잖아요. 더 위로 올라가면 그렇게 해서 계속 올라가보면 처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부터 벌써 기도하는 사람 마리아와 요셉 신령해서 현몽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오실 것을 보여주신 것부터 시작해서 계속해서 구속의 역사 전체가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어 갖게 하시고 그들이 복음을 전하고 선교를 하게 되는 이런 놀라운 역사를 하나님이 만들어 가십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이들이 기도를 하였을 때에 그때에 비로소 이제 이미 세워진 교회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 선교적인 측면에서 그들을 향해 자신들이 해야 할 참다운 의무와 본분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거에요.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고 그래서 주님과 함께 교통할 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오늘 성경에 보면 ‘주를 섬겨 기도할 때에’ 그랬거든요. 이것은 무엇을 가르치나 하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 자체가 주님을 향한 섬김이었다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섬김이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우리들이 흔히 기도는 섬김을 위한 준비이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오늘 성경에 보면 기도자체가 섬김이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것은 하나의 새로운 해석이죠. 그러면 우리들이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이렇게 먼 곳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위해서 여러모로 희생을 하고 주의 일을 행한 많은 것들만이 주님을 섬긴 것으로 기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 바쳐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고 기도한 이 모든 것들도 주님께는 하나님을 섬긴 것으로 기록이 되는 것이에요. 누가복음 2장에도 보면 시몬과 안나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중에 안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똑같은 사실을 전해줍니다. 기도하며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긴 여자로 기록이 되지 않습니까? 기도자체가 섬김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거든요. 이렇게 기도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선교의 사명이 주어졌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보면 어떤 말씀이 나오나 하면 “성령께서 음성을 들려주시고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하는 분부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선교는 성령께서 주도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원래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일을 생각나게 하셔서 그들로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그 일을 하시는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그 성령님이 그 선교의 주체가 되십니다. 예수의 사랑에 감화 받은 사람들이 선교를 위해서 헌신하지만 그 사람들을 감화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어디를 선교하게하고 무엇으로서 봉사하게해서 그들로 예수의 복음을 전하게 할 것인가 하는 이 일들에 있어서 주체는 성령님이 되신다는 것이죠. 물론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그곳에 성부하나님과 성자예수께서 안 계신 것은 아니지만 선교에 있어서 이런 주도권을 성령님이 가지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많이 받고 주님을 알게 되면 그러면 반드시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성령님께서 감화를 주셔서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다급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각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 표징이고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놀라운 은혜이며 사명이에요.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 해주시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경험했으면서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해서 아무 사명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그에게 역사한 것이 아니거나 혹은 주님이 은혜를 주셨어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아집으로 성령님께서 시키시는 일들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에요. 우리들이 은혜를 받아도 우리 안에 있는 완악 함들이 완전히 뿌리 뽑히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무지와 편견, 아집 같은 것들이 우리 안에 가득 차 있을 때 그런 것들이 가득 차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주님의 성령의 부르심에 민감하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이 사람들은 그런 성령의 부르심에 민감했고 민감한 성령의 부르심을 받은 이 사람들이 선교를 주관하시는 성령님의 위대한 역사들을 보게 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네 번째 우리들이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은 바나바와 사울을 세웠습니다. 이 사람은 안디옥교회에서도 가장 훌륭하게 사역을 하는 말하자면 안디옥교회의 많은 사역자들 가운데 최고였습니다. 그 사람들을 뽑아서 그래서 선교의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들을 파송하시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교회가 선교를 위해서 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것을 다하고 남는 사람으로 선교 보내는 것도 아니고 또 우리가 모든 것을 다하고 남는 물질이나 남는 시간, 남는 자원을 가지고 선교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사람을 뽑아서 선교지를 돌아보게 하시고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께서 선교를 위해서 하시는 일입니다. 선교적 삶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거,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하는 그 일을 위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 중에 가장 좋은 것을 사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선교의 진정한 정신이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울과 바나바, 이 교회의 가장 기둥 같은 두 사람을 선교를 위해서 헌신하게 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섬김 위에 축복해주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게 하실 뿐 아니라 또 이들을 보낸 교회를 축복해주셔서 든든히 서게끔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섬김의 자세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