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의 합치는 자기를 포기하는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네 손이 네 모든 원수를 발견함이여 네 오른손이 너를 미워하는 자를 발견하리로다 네가 노할 때에 저희로 풀무 같게 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진노로 저희를 삼키시리니 불이 저희를 소멸하리로다”(시 21:8-9).
시인은 이제 자신이 겪은 승리의 경험들을 언약 백성 일반에게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언약백성들을 해치려는 원수들과 열방들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그 상황을 분노하고 있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시인과 함께 진노하시면서 그 백성들을 보호하셔서 그들이 발견한 대적들을 파멸시킨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과장된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믿는 자녀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 수 없겠지요. 내가 분노할 때에 하나님도 진노하시고, 내가 어떤 사람을 향해 안타까워할 때에 하나님도 안타까워하신다면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원수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면 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이것이 무엇으로부터 오는 현상일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시인의 뜻이 일치를 이룬, 목표의 합치에서 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오셔서 도와주시는 것 같을 때가 많습니다. 소원을 품은 것은 나인데 하나님이 우리 편에 서서 도와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이 그런 방식으로 다루시지는 않습니다. 과연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리 대하실까요? 목표가 하나님께 합치된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이 세상을 사는 목적과 하나님이 자신을 이 세상에 살게 하시는 목적이 나누어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부어진 마음입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 만나게 되는 난관들은 하나님 보시기에도 넘어야 할 난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려움들을 넘는 것, 품은 소원들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편애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정도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자입니다. 이런 자의 삶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인생의 궁극적인 방향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이 아름답게 보시는 삶이 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이 새벽에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린다 하더라도 삶의 목적이 하나님께 합치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개별적인 한두 가지가 아니라 삶 전체가 하나님을 향해 돌이켜 서는 일이 하나님 앞에 더 시급한 일이 됩니다. 그래야지만 하나님과 합치된 목표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표의 합치는 자신을 포기한 사랑에서부터 비롯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의 목표를 꺾고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 그것이 곧 회심이며, 그러한 상태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이 회심의 보존입니다. 이는 성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의 목표에 나 자신을 합치시키지 아니하면 주님과 평화가 없는 가운데 끝없이 인생의 그 길을 걷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평화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인생의 어떠한 상황을 만난다 하더라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뜻을 합치시키고 못하는 자는 늘 고통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