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 26일 새벽예배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이태를 지내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행 24:24-27)
녹취자: 김은영
이제 한바탕 소동이 있고 바울을 고소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대답과 심문이 있고 난 후에 일입니다. 이 베스도라는 사람이 아주 수시로 바울을 불러서 바울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보면 베스도라는 사람이 아내와 함께 사도바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당한 고민과 구원에 대해 굉장히 가까이 다가감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번 지위는 높지만 사도바울로부터 전도를 받게 되었고 또한 사도바울이 유능하게 하나님의 의와 절제와 장차오는 심판에 대해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참된 신앙을 가져야 하는 이유와 왜 그러한 신앙을 가질 때에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게 되니깐 하나님의 의, 불의, 절제, 그것을 이야기하면서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는 방종한 삶과 심판,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것을 쭉 설교하면서 벨릭스의 마음이 크게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새 두려워했다고 성경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고 두려워하게 되면서 이 사람이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깨닫고 깊이 그분을 믿었으면 됬을텐데 믿지 않으려고 한 것이 문제입니다. 마음을 열고 신앙을 받아들었으면 되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자신에게 올바른 것을 가르쳐주려는 바울을 보내면서 지금은 가고 나중에 적당한 때가 되면 부르겠다며 자신이 회심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피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도리에 대해 흥미는 느끼고 그것이 진실이라는 두려움도 느꼈지만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잃어버리게 될 많은 것들 때문에 신앙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가로 막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 안에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참된 신앙을 가질 기회가 주어졌는데 재물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가복음의 젊은 부자관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분명 영생을 얻고 싶었지만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에 그러했다고 이야기했지만 예수님이 너의 재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거라 하셨을 때 이 젊은 부자가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갖고 싶지만 자신의 물질을 다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나라 하나에 목숨을 거는 것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슬픈 기색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다양한 것들, 물질에 대한 사랑, 가족으로의 끊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인간적인 이념에 대한 집착 등 많은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만 사랑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가로 막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하는 것은 절대의존의 감정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절대의존의 감정, ‘하나님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존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런 많은 잘못된 것들에 대한 집착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람으로 하여금 영생을 얻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재물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참으로 믿게 하는 신앙의 길을 가르쳐주는 사도바울이 있는데 이 사람을 자주 만나는 이유는 이 사람으로부터 뇌물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이유로 자주 만나는 것입니다. 보아하니 로마인이고 지체도 어느 정도 있고 더욱이 무엇인가 옳지 않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우두머리처럼 느껴짐으로 틀림없이 그 정도의 여유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사도바울을 수시로 불러서 호의를 보이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렇게 되면 신앙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신앙은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들어갈 수 없습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 혼자서 이 세상에 살 수 없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생겨나는 것이고 그것이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인데 이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고 한편으로는 바울을 불러서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생기는 하나님에 대한 의지하는 마음, 믿음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두려움 이런 것들에 대해선 회피하고 한편으로는 자기에게 복음을 전해주는 바울을 통해 뇌물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돈에 대한 사랑을 갖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영혼에 참된 변화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무엇을 하든지 간에 인간의 외형을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은 그 사람의 중심을 깊이 꿰뚫어보시고 그래서 그의 마음이 어떠한지 중심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지 알고 계십니다.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아시기 때문에 그를 깊이 들여다보시면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와 은혜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를 받고 싶어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렇게 두마음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찾아가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 세상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지 이 벨릭스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도와주시고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인생에 대해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에 대해선 조금도 그 필요에 대해선 부정하지 않지만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싶어하진 않고 하나님을 믿게 될 때 잃어버릴 것에 대해 두려워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가 된 우리들은 얼마나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주의하고 깊이 깨달아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