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과 영적교제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 (행 28:7~10)
녹취자: 전인현
이제 그 섬에 묵게 되었는데 이것이 보통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서 바울이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간에 이 폭풍우 사건을 계기로 해서 어쨌든 그들 가운데 지도자가 되었고 그리고 그렇게 탈출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니까 이 사람들의 먹고 자는 문제 여러 가지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으니까 한동안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 봅니다.
그런데 바울이 거기에서 독사의 물려도 죽지 않은 것을 보고 이게 보블리오라는 사람이 크게 감동을 받은 것 같습니다. 여기에 자기의 토지도 있고 하니까 이 사람들을 불러서 아마 유숙하게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나온 대로 병자를 고치니까 그 보블리오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유숙하다가 그 집 식구 한 사람을 고치게 됩니다. 이렇게 병 고침이 있게 되니까 더 많이 후하게 환대를 받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고침을 받기 위해 나아왔을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병을 고칠 수 있는 놀라운 은사를 바울에게 주셔서 그러더니 온 섬이 그들을 환대했습니다.
이런 것이 이제 배경이 있습니다. 무엇이냐면 의학이 발달하지 않던 그런 시대였으니까 어쨌든 과학적으로 병을 고친다기 보다도 사람들이 이런 미신들에 많이 호소해서 병을 고쳤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던지 낫기만 하면 그것이 신의 효용이다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신을 전하는 자였고 그 바울이 병을 고쳐서 낫게 했으니까 다른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병이 나았을 때 드리는 그 예우를 바울과 바울의 일행에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있어서 종교가 어떻게 보면 생활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중해 쪽에 있는 이 사람들이 신들에 에워서 쌓여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예전에 보면 병이 나면 굿부터 했습니다. 그러고 나으면 무당이 섬기는 신이 자기를 고쳤다 생각하고 예물도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이런 신유의 역사가 일어났을 때 그들이 굉장히 빠르게 반응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의료혜택도 문제가 되었겠지만 사람들에게 그런 표적을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는 그런 종교성이 가득 찬 시대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강력한 이런 은사들로 사람들을 다스리지 않았으면 그들의 마음속에 신앙이 들어가기 힘들었다 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어쨌든 병을 고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배가 다 파선이 되고 석 달이나 걸려서 정상적으로 운행하는 또 다른 배를 타고 떠나게 되었었는데 가는 길이 아주 머니까 쓸 물건들이 많이 필요했을 거 아닙니까? 그것들을 이 섬에 있는 사람들이 잘 거두어서 그래서 이 사람들에게 공급을 해주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 사도바울이 정말 명실공이 지도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죄수의 몸이었는데 이 섬에서는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을 먹이고 그들을 살리고 마지막에는 그들에게 쓰고 필요한 것들을 그 섬에 사람들로부터 공급함을 받는 그런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사도바울이 이 죄수의 몸이었지만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되었으니 사람들이 어찌 바울을 깊이 존중하고 지도자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보십시오. 이런 일들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그 사도바울이 겪었던 그 큰 풍랑을 인해서 사도바울이 이렇게 존귀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환란과 시련 그런 것들을 그렇게 너무 비관적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이 바꾸십니다.
바꾸셔서 우리에게 매우 수치스러운 그리고 불리한 환경과 여건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아주 좋은 것으로 바꾸시고 우리가 견디기 힘든 고통과 고난을 하나님이 바꾸셔서 오히려 우리를 높이는 기회로 하나님이 사용해주신 것입니다. 풍랑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사도바울은 계속 죄수로서 구박을 받으며 로마로 호송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풍랑을 만나게 되니까 그 풍랑의 과정을 통해서 오히려 죄수인 바울이 그들의 으뜸이 되어서 그들을 지도하고 인도하고 안심시키고 하는 역할들을 감당해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점에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은 만나기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피할 수 없이 이미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그러면 그것을 바꾸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올바른 믿음의 태도를 가지게 되면 이 환란의 풍파와 비바람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이 나를 바꾸실 것이다. 그래서 나를 오히려 훌륭한 위치에 두시고 고치고 바꾸셔서 하나님이 정말 놀랍게 사용해주실 것이다. 이런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이 된다면 하나님이 이 환란과 시련을 통해서 그런 사람들을 정말 훌륭하게 지금 당장 악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선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하나님 앞에 그런 고통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비천해질 사람들을 그 풍랑을 인하여서 존귀하게 하시고 아름답게 하시고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고쳐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