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4일 새벽예배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셀라)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시 4:4-8)
녹취자 : 김세나
그러니까 그 모든 환란과 시련, 고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 4절서부터 8절까지는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면서 사는 삶이 어떤 삶인가를 이야기 하고 있어요.
첫째가 뭐냐 하면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뜨려 지는 것은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깨뜨려지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뜨려지는 것은 우리의 범죄로 인해서 깨뜨려 지는 것이거든요. 사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절실하게 매달리지 않고 그런 기도의 제목 없이 살아갈 때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된 것이 우리의 인생의 결정적인 문제가 되는 줄은 잘 모르죠. 잘 모르죠. 그러다가 이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되요. 혹은 큰 어려움을 환경적으로 만나지 않아도 영적으로 깊은 고통 속으로 들어가게 되요. 세상에서의 물질이나 잘 나가는 내 생활, 이런 것들이 별로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렇게 하면서 어려움이 찾아오게 될 때에 그 때에 하나님 앞에 간구하게 되죠. 환경의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도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느끼게 되면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되고 또 환경의 그런 것들이 아니고 영혼이 너무 곤고해도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되는데 어느 경우에든지 간에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안되거든요. 그 때에 하나님 앞에 자기가 매달려도 주님이 자신의 기도를 잘 듣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요. 그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되고 자기가 범죄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죠. 그래서 시인이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늘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 이어라. 늘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이 되거라. 그래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면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이 되거라. 그래야지만 된다. 시인이 그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서 살아야 된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들이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어떻게 더 뜨겁게 사랑하고 그 하나님께 순종할 것이냐는 문제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을 잘 지켜서 그래서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이거든요.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의 삶 전체를 실어서 마음과 뜻을 바쳐서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지가 되는 거예요. 자기 기도제목 없고 문제 없다고 내팽개쳐 두고 그리고 자기 좋은 대로 살다가 살아가게 되면 금방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뜨려지게 되요. 정말.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인생을 살다가 어려운 일 만나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할 때 한 번씩 찾아와서 비는 그러한 종교가 아니라 삶 전체에서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분께 마음을 드리고 그 분께 영광을 돌리고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하시는 것이거든요.
두 번째로 보면 하나님께 대한 의뢰에요. 하나님께 대한 의뢰.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삶은 온전한 삶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할 때 그러한 삶을 살 마음이 생겨나는 거예요. 하나님을 의뢰할 때.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살아갈 때에 삶이 더 온전해지기를 사모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데서는 그렇게 생겨나지 않는 것이지요. 이치가 이런 것이거든요.
우리가 부모님께 효도한다고 그럴 때에도 그 종류가 참 많아요. 그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그 부모를 뒷방에다가 모셔 놓고 그리고 부모의 뜻, 부모의 생각, 부모의 요구 이런 것들을 아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삼시 세끼 밥 드리고 그리고 필요한 것 주고 그래서 의사가 상호 교통이 안돼요. 아버지가 필요한게 뭔가, 어머니가 뭘 필요하시나 이런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식으로써 내 할 일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자기가 뭔가 부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 하는 거죠. 그것은 마치 좀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엄밀하게 이야기 하면 그것은 효도가 아니고 적선이죠. 이렇게 이야기 하면 더 비난조이지만, 마치 애완동물 가둬 놓고 말 못하는 짐승에게 자기 기분에 따라서 먹을 것도 주고 뭐 마실 물도 주고, 뭐 갖고 놀 뼈다귀도 하나 주고 그런 것 비슷하잖아요. 나이가 들어서 부모님들이 나이가 들어서 집안에서 경제권이 없어지고 힘이 없어질수록 외로운 사람들이거든요. 가까이 다가가서 그분이 필요로 하는게 뭔가. 그분이 필요로 하는 것이 꼭 먹고 입고 마시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정신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도 있을 수 있잖아요. 어느 때에 외로우신가. 그리고 무엇 바라는게 뭘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하는 이것이 진정적 공경적 효도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것이 효도거든요.
그럼 똑같죠. 하나님을 공겸함에 있어서도 제일 그 공경하는 도의 첫 번은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들이 아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주님의 마음을 전수 받고 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들을 우리들이 잘 받아들이면서 그 말씀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거죠. 그러는 가운데 중심점 자체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되어야 해요. 그래서 오히려 자기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경하게 되면 오히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 저한테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떤 것이 하나님께서 기쁨이 되겠습니까. 저에게 너무 마음 쓰지 마시고 어떻게 우리가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겠고, 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는 것이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겠습니까. 내가 그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시오. 하나님 앞에 그렇게 기도할 마음이 생겨나는 거거든요. 그게. 이게 진정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성도의 모습이거든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 이런 것들은 아랑곳도 없이 자기 요구만 이루면 된다는 식으로 하나님 앞에 가서 매달리는 이런 것들은 믿음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인격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내 아픔을 좀 알아달라고 내 서러움을 알아 달라고 매달리잖아요. 어느 한순간이라도 한번 하나님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오늘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 내 가정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실까. 요즘의 나의 게으르고 나태한 삶을 보면서 주님이 얼마나 아프실까. 그것을 생각하면서 그 하나님 죄송합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것이 바로 회개거든요. 회개가 바로 기도의 문을 여는 거예요. 회개가 기도의 문을 열어요. 여러분 신앙의 지난 날들을 돌아봐요. 정말 열렬하게 기도가 잘 될 때가 있었어요. 문제가 많아서 잘 된게 아니라 회개를 했기 때문에 잘 된 거예요. 기도의 문이 열리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면서 하나님 앞에서 새로워 졌던 것 아니에요.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앞에서 변화의 인생 살게된 것 아니에요. 그 때에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죄가 있으면 의지가 안돼요. 의지가. 왜 그럴까. 인간에게 죄가 있으면, 죄가 없을 수는 없지만 인간이 신자가 자꾸 죄에 심각하게 빠지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지 않는 이유가 뭔가. 죄 자체의 성분이 독립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죄 자체가. 죄 자체가 하나님과의 의존을 떠나서 자기가 온 우주의 중심처럼 생각해서 독립하려는 속성을 죄 안에서 가지고 있는 거예요. 독립하려는 속성을 죄 안에서 가지고 있는 거예요. 독립하려는 속성을 죄 안에서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할 때가 언제냐 하면 깊이 깨뜨려 질 때, 자기가 깨뜨려 질 때에 그 때에 독립하려는 의지도 파괴가 되는 거죠.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회개 속에서 자기가 깊이 깨뜨려질 때, 회개 속에서 자기가 깊이 깨뜨려질 때 그 때에 회개속에서 자기가 깊이 깨뜨려 질 때, 그 때에 아주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거죠. 하나님 없이 살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 없이 살 수가 없는 거예요.
(찬양) 주 없이 살 수가 없네 내 주는 아신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많은 부를 누리고 그리고 높은 지위를 갖고 그리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도 다 공허해요. 주님 없이는 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 마음이 자기가 깨뜨려지고 죄로부터 멀어질 때 이 속에서 생겨나는 거예요. 그런 거예요. 그런데 사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활은 무엇이냐 하면 늘 그런 거. 늘 그런 거. 늘 그런 거. 그래서 언젠가 제가 묵상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누가 그래요. 목사님 목회가 무엇입니까. 그 때 내가 한참 동안 똑같은 대답을 했었어요. 목회란 마음의 눈물이 그렁그렁 한 것. 그것이 목회다. 그런데 목회만 그렇겠어요. 누군가 나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이 무엇일까요. 혹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생활이 무엇일까요. 마음의 눈물이 그렁그렁 한 것, 그것이 성화의 삶이에요. 그 때에 자기에게 물질이 있고 먹고 살 돈이 있고 모든 행복한 조건이 있어도 다 의지하지 않고 그 거짓된 표상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거죠. 우리가 진리를 찾아서 날마다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처럼 그렇게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가로막는 것이 있는데 두 가지에요. 정욕에 굴복하는 삶, 거짓된 영상에 현혹된 생활. 하나는 애정에 관계 된 거고, 하는 지성의 인식에 관계된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언제 파괴되느냐 하면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할 때.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할 때. 그 때에 자기는 그런 것들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찬양)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그의 자비는 무궁하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깊이 거기에 매달리게 되는 거예요. 깊이 거기에 매달리게 되요.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의의 제사를 드려야 되는 거예요. 의의 제사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에 대한 반응으로서 어떻게 하든지 자신의 삶과 존재를 그 분의 뜻에 합치시키려고 하는 그 삶의 제사에요.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하게 돼요. 분투하며 살 때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지, 방만하고 게으르게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경우는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은 거룩한 삶의 친구이지, 죄악된 삶의 벗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마지막에 이 시인이 이야기 하는 거예요. 이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도 자신의 마음에 두신 기쁨은 곡식과 포도주보다 더 큽니다. 그것들이 주는 기쁨보다 큽니다. 우리 문맥에서는 이해가 안 되죠. 그 까지껏 먹는 것 때문에 그러나. 그 당시에는 먹는 것 자체가 너무 불안하니까,
(예화) 저희 어렸을 때도 생각이 나요. 할머니랑 같이 살 때 보면, 할머니가 이웃집에 마실에 갔다 오셔서 늘 부러워 하셔요. 야, 아무개네 집에 갔더니 쌀을 가마로 붙여 놓고 먹더라. 옛날에 짚으로 짠 가마 있잖아요. 그것을 부엌이나 이런 데도 못 놓고 방에다가 놓아요. 쌀이 워낙 귀하니까. 그런데도 쌀가마에서 밥 할 쌀을 떠 가요. 그런 곳은 가장 잘 사는 곳이에요. 그 다음에 한 말, 두 말, 말 쌀 사다 먹는 집, 더 가난한 집은 봉지 쌀을 사다 먹는 집. 저녁에 퇴근 할 때면 장사 같은 것 퇴근하는 사람이 왼손에는 연탄 하나 들고 오른손에는 쌀 한 봉지 들고 들어오는 광경을 동네 어귀에서 늘 볼 수 있었어요. 그렇게 가난하던 시절, 그것 그 다음에 겨울에 연탄을 한 3백장 쌓아서 뒤 뜰에 잔뜩 싸놓고 겨울을 나는 사람은 동네의 부러움을 사는 사람이었어요. 그것을 이야기 하는 거죠.
좋은 포도주가 가득 있고 곡식이 잔뜩 있어서 겨울이 오는 것이 두렵지 않을 때 사람들의 마음은 기쁘죠. 그런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획득되는 그 기쁨은 그것보다 훨씬 크다는 거죠. 그것보다 훨씬 크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실 솔직히 이야기해서 우리의 인생에 살아온 과거를 돌아보면서 거두절미 하면 가장 행복한 때에는 하나님 때문에 행복했고, 가장 불행했던 때는 나의 죄 때문에 불행했어요. 환경적인 것이라고 하는 그것은 다음이에요. 결국은 그래서 시인이 그렇게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간직하며 살려고 애썼던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