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에게 고통받는 자의 소원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저희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시 14:4-5).
어제 보니까 악인은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고 또 행동하고 또 생각하고 이러는 사람이 악인이라는 것이죠. 성경에서 볼 때 ‘의인이다.’ 라고 하는 말은 혼자서 의롭게 살아가는 그런 사람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본성 자체가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사람, 그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이 보실 때 의인이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옳은 사람들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인간이 무슨 사상을 가지고 사느냐, 또 모든 사상들을 가지고 있을 때에 인간이 자신의 모든 생각을 어떻게 하나님과 연관 지어서 생각하며 살아가느냐 이것이 이제 그의 모든 삶과 마음에 있어서 관건이 되는 것이예요. 그러면서 이제 우리가 읽은 4절과 5절에서는 악인이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살아가는 악인의 삶에 사상적 근원이 무엇이고 그리고 또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사상과 실제 하나님의 존재하고 역사하시는 것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을 4절과 5절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보여주는 것은 그들은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악인의 특징이다 라고 하는 거죠. 그러면 이 무지는 무엇에 대한 무지일까요? 악인이라고 해서 아무 것도 사물의 이치를 알지를 못하는 그런 무지한 사람들이겠느냐 그게 아니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이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아니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이 잘 알고 있잖아요. 오히려 이 시대에는 악인들이 훨씬 지혜롭죠.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의로운 사람보다 악인들이 훨씬 지혜로워서 그래서 자기 맘대로 살고 훨씬 지혜로워서 정말 자기의 뜻대로 사는 그런 사람들이죠. 그런데도 오늘 악인이 무지하다 라고 선언한 이유는, 다른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무지한 것이예요.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육신의 눈을 가지고 우리의 육신을 보호하죠. 그래서 눈이 밝고 잘 보이면 넘어지지 않게 올바른 길을 걸어가고, 색깔과 사물의 크기를 분별하고, 먹어야 될 음식과 먹어서는 안 될 음식을 비교하고... 등등의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잖아요. 그러면 똑같이 우리의 영혼도 그런 시력을 필요로 해요. 그건 육체의 시력만을 가지고는 안 되고, 영혼에도 시력이 있어서 어떤 일들을 선택하거나 판단할 때 이것이 자신의 영혼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판단을 내리고 좋은 것과 나쁜 것들, 선한 것과 악한 것들을 구별해 낼 수 있는 시력이 필요해요. 이것을 가리켜서 영혼의 시력이라고 부르는 거죠. 영혼의 그러한 시력은 그가 가지고 있는 지혜에 의해서 판단되어 지는 거죠. 그러니까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아는 것이죠.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은 진리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많이 아는 사람들은 많은 빛을 받은 사람들이고, 많은 빛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많은 빛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모든 사물들을 더욱 명료하고 또렷하게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죠. 그렇게 모든 것을 또렷하고 분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훨씬 더 지혜롭게 판단을 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에요. 그 모든 지혜가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그 앎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예요.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그 앎으로부터 모든 지혜가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예요. 이러한 것을 우리들이 바로 알 때에 그때에 우리들이 지혜롭게 되는 것인데, 악인들에게는 그러한 지혜, 지식이 없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에 관해서 잘 모른다 그러는 것은 곧 그것이 악이예요.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데도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무지는 자신이 선택한 무지예요. 그래서 그것이 악이예요. 악과 비슷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악이에요. 여러분들이 만약에 하나님에 관해서 많이 알게 되었다 라고 한다면 물론 궁극적으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바요나 시몬아 복이 있도다. 이것을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시니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그러나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의지의 선택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알게 해주시는 것이지 여러분들이 알고자 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에 대해 알 수가 없죠. 그러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 자체가 여러분들이 알고자 했기 때문에 알았다면, 반대로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하다면 여러분이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지한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님 대해서 앎이 없는 것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변명할 수가 없는 거예요. 자기 자신에게로 그 책임이 귀책되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에 관해서 잘 모른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예요. 그래서 그 악 속에서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거예요. 그것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악이에요. 그러니까 그 악인이 어때요? 하나님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그 악인이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그러고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되요?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하나님을 찾지를 않는 거예요.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부르고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열렬히 구하며 삶의 모든 방면에 있어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라고 하는 그런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없으면 인간은 아주 매우 쓸모없는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고, 인간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탁월함은 영혼 자체 때문에 탁월한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이 불변하는 광명인 진리를 소유하기 때문에 탁월한 건데 그 진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인간은 영혼을 가지고 있어도 거의 짐승과 다름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예요. 그러니까 그 악인이 그런 하나님을 아는 앎이 없으니까 하나님을 부를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에 관해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범사에 하나님 앞에서 살고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지 않는 사람들은 그 앎이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앎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거죠. 하나님을 알게 되면 그는 반드시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고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간절히 찾게 되는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제 시인은 5절에서 말하기를 ‘저희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결국은 그렇게 무지해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인간들은 보게 된다 라고 하는 것이죠. 거기에서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의롭게 사는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아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하나님께 늘 자기의 사정을 아뢰고 부르짖으며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의인들은 하나님이 어떤 위대한 일들을 행하시고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하실 때,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하셨다고 하는 것을 그 속에서 봐요.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그것이 우연이 아니에요. 그런데 악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큰 두려움이죠. 왜냐하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는데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만 눈에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 정말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굉장히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지금 바깥에 굉장히 큰 바람이 불고 전깃줄이 떨리면서 쌩 하는 소리가 난다고 칩시다. 바람이 있다는 것, 그 바람이 분다는 것, 그 바람이 전선을 타고 지나가면 그런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런 소리가 날 때 ‘아, 바람이 많이 부는구나.’ 이렇게 생각할거에요. 그런 이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소리가 무슨 소린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두려움이 될 수 있는 거죠.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안 계신 곳 없이 계시며, 하나님이 모든 일에 당신 자신의 의지와 주권을 보이신다고 그렇게 깊이 믿고 생각하며 생활하면,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살아가면 그러면 정말 하나님이 어디에서든지 일하시고 역사하시고 행하시고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죠. 그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하면서 매 순간 살아가는 그런 삶이죠. 그것이 바로 오늘 성경이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바예요. 그러면 우리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부르지도 않고 찾지도 않는 그런 악인의 삶을 우리가 살아가야 될 것인가, 하나님을 믿는 언약 백성 속에도 이런 무지한 사람이 여전히 있다는 것이죠. 그렇게 살아가야 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참으로 알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 갈 것인가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삶을 살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