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28일 새벽예배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시 17:4-7).
누구든지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도움을 받고 싶어 합니다. 아무리 큰일을 만나도 자기 자신에게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자원과 힘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사실 큰 환란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그런 시련과 환란을 만나서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하고 해쳐나갈 수 있는 아무런 힘이 없을 때 그 때 우리는 밖으로부터 오는 도움을 원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께 도움을 못 구하지만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구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힘과 자원으로서 우리들의 인생의 곤고하고 어려운 날들을 극복하게 되면 믿음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공식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이러한 공식을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어려울 때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하고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적은 수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때문인가? 오늘 4~7절에 나오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한 답을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인이 바로 꼭 그런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며 이런 환란과 시련의 날에 주님이 나의 복이라는 그 고백을 시인이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첫 번째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살았습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자신이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애를 썼고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환란과 시련의 날에 아주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 하나님만이 자신의 도움이시며 자신을 역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 간절히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련과 고난이 오는 환란의 날에 하나님을 간절히 부르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자원과 힘을 공급하셔서 이기게 해주신다는 사실을 잘 아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평안한 그 날에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에 합치시키면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환란과 고난의 날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내가 실족치 아니하였나이다’라는 말입니다. 앞에 나오는 말이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를 합치시키면서 사는 것을 가리킨다면 뒤에 나오는 이 ‘실족치 아니하였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아갈 때에 소극적인 면에서 미끄러질 수 있는 위험이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잇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 데 있어서 실패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적극적으로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순종하려고 자꾸 뜻을 세우고 하나님께 저항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려고 스스로 애를 쓰고 노력하고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실족치 아니하였나이다’ 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잘 지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시편 73편에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어떤 시인이 신앙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것이 나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 사는 것을 보면서 회의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족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열심히 믿었는데 하나님은 맨날 나에게 야단만 치시고 내가 얻은 것이 뭐가 있나 이런 것들은 마음속에서 나오는 적극적인 불순종의 의지는 아닙니다. 그것은 미끄러지는 것입니다. 이런 미끄러지는 것도 결국은 자기 자신이 생각을 잘 지키고 마음을 잘 지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를 쓰고 할 때에 이것이 지켜지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이 미끄러집니다. 이것을 하지 않기 위해서 시인이 얼마나 분투하고 노력하는 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앞에 있는 것이 불순종이라면 뒤에 있는 것들은 회의를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로부터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 주님을 계속 붙들면서 살려고 애를 쓴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고 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마지막 7절에서 어떤 유익을 얻게 되었는가 하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자기에게 베풀어주시도록 원하고 바라는 간절한 기도가 가능해졌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살아있는 기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간절한 기도자의 기도, 이런 것들은 모두 누구에게나 가능할 수 있지만, 돌이키든지, 아니면 돌이킨 길에서 순종하며 살아가든지,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응답을 받고,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자신에게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시편에서 인자함에 대한 하나님의 인자를 탄원하는 간구가 나오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자를 간절히 구하며 그 인자를 달라고 호소하는 장면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라고 하는 것은 그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뜻에 맞고 거기에 합치될 때 그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우리들이 매일매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련과 고난의 날에 한 사람이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자체가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며 또 우리가 이런 하나님 앞에서 간절하고 진실한 간구 그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면서 사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것인가 하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안한 날에 주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환란이 닥쳤을 때에도 평소에 하던 대로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매달릴 때에 주님께 응답을 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