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범죄를 피하는 길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범죄에서 벗어나겠나이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13-14).
그러면서 시인이 하나님 앞에 또 한 가지 간절히 비는 기도의 제목이 있었습니다. 그게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해 주십시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범죄란 무엇인가 하면, 고의로 짓는 죄입니다. 그러니까 똑바로 살고 싶은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연약해서 짓게 되는 그런 종류의 죄가 아니라, 계획을 세우고 의도를 가지고 짓게 되는 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짓게 되는 죄의 많은 부분이 이러한 고범죄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짓지 말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들이 살면서 잘 하려고 하는데 잘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사실 고범죄는 아니지요. 이런 것들은 의도를 가지고 짓는 계획적인 죄예요. 죄를 짓기 전에도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고, 짓는 그 순간에도 죄라는 것을 알고, 짓고 난 그 후에도 그것이 죄라는 것임을 아는, 그런 종류의 죄를 가리켜요. 그것을 짓지 말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뒤에 나오는데,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런 죄를 짓게 되면 죄가 자기를 주장하게 되는 거예요. 그 죄가 자기를 지배하고 주관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그 죄를 계속 짓게 되고, 그게 바로 죄의 종이 되어 가는 모습이에요. 그렇게 되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비는 것이에요. 이때가 주 전 3000년 전인데, 주 전 10세기이니까, 이 때 죄와 은혜의 지배라는 그런 교리들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우리들이 우리의 양심을 거스르는 뚜렷한 죄,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있어서 더 무서운 죄가 되는 거죠.
그러면서 시인이 하나님께 간절히 비는 것은 내 입술의 모든 말과 내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빕니다라고 하는 것은 이제 단순한 행동으로 짓는 죄를 경계하는 것을 넘어서 나의 모든 것이 흔들리지 않도록, 변하지 않도록 그렇게 붙들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비는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러한 고범죄가 행동으로 짓는 죄일 수도 있고 마음으로 짓는 죄일 수도 있어요. 예를 들자면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미워할 때, 그것이 고범죄가 되는 것이죠. 그렇게 될 때 그 죄가 자기를 주장하게 되고, 그러면서 같은 죄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에요. 이런 식으로 되니까 죄에 의해서 주관되니까 그 다음에는 아주 적은 힘의 유혹에 의해서도 죄에 아주 쉽게 흔들리고 빨리 움직이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에 고착되거나 행동으로 죄가 흘러나오기 전에 우리의 입술의 모든 말, 우리 마음의 묵상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열납되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하나님이 교회에서 섬길 때만 나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 누워있을 때도 받으실 수 있도록. 그게 하나님 앞에서 사랑..??
그런 사람들은 고범죄를 짓지 않죠. 짓는다고 하더라도 그런 것은 드물게 일어나는 것일 것이에요. 그러니까 죄를 짓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으로는 죄를 짓는 것을 넘어설 수 없어요. 그러면 그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건설적으로, ‘죄를 짓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모든 묵상이 주님이 받으실만한 것이 되었으면’ 하고 하나님 앞에 되어야....?? 그게 죄를 이기고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지속적인 은혜 안에서 사는 길이라는 것이죠. 이 시인이 바로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렇게 하면 죄입니까, 하고 묻는 그런 정도로는 안 된다는 것이죠. 부족하죠. 부족하니까 매 순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해요. 쓰레기 같은 인간을 붙들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그런 은혜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