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하게 하시는 하나님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로 기꺼이 부르고 즐겁게 하시며 그 종의 형통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하는 말을 저희로 항상 하게 하소서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35:27-28)
녹취자: 박은희
모든 사람이 시인을 대적했던 것은 아니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시인을 대적했는데 또 어떤 사람들은 시인의 형통을 기뻐하고 그리고 시인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하는 철학자는 인간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세 가지 동기가 있다 이렇게 보았습니다. 첫째가 무엇이냐 하면 쾌락입니다. 저 사람을 사귀는 것이 나에게 쾌락을 주기 때문에 관계를 맺고 그리고 저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가 유용애 라는 것입니다. 뭐냐 하면 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나에게 득이 되기 때문에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 그 것을 유용애 라고 불렀습니다. 마지막은 동덕애 라고 해서 둘이 생각이 같고 같은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 이것이 말하자면 진정한 사랑이다 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도 합니다. 그때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도 하고 사랑을 받기도 하는 그 사랑이 정말 온전한 사랑이기 위해서는 그게 동덕의 사랑이여야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데 상대방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원인이 두 사람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아닌 저 바깥에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 사람이 함께 사랑하면서 걸어가는데 한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배반하지 않는 한 그 사랑이 계속되는 것, 이것을 가리켜서 이런 사랑을 가르켜서 참된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인이 고난을 많이 겪고 시인을 모함하는 사람들만 있었던 것 같아도 사실 그렇지 않고 주변에는 이 시인을 깊이 사랑하고, 이 시인에게 형통함을 주시는 하나님, 원수들의 압제와 그 많은 고난으로부터 건져서 그래서 구원해주시고 도와주시는 그런 하나님을 이 시인이 많이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인을 그렇게 붙들어주시는 하나님을 많은 사람들이 찬송한다면 그 찬송이 계속되게 해주시고 또 그들이 나를 형통하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즐겁게 노래하게 해주십시오 라고 하는 대목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믿으면서 살아갈 때에 고난도 있고 시련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옵니다. 그래도 그런 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와도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함께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안에서 위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자신에게 쾌락을 주거나 혹은 자신에게 뭔가 유용해야지만 사랑해주는데, 여기서는 그런 것과 상관이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자신에게 쾌락을 주지 않아도 또 우리를 사귀는 것이 그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유용함을 주지 않아도 우리를 사랑해주는 유일한 관계가 교회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며 삽니다. 이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본 뜨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 가치가 없는 죄인들을 하나님이 그들 때문에 쾌락을 얻거나 덕을 보시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성향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런 사랑으로 만물들을,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또한 우리는 그런 사랑을 하나님께 받았기 때문에 그런 사랑의 덕을 힘입어서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생활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랑에 있어서 우선적인 것은 믿는 믿음의 식구들이 먼저 그렇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되 특별히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생활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그러한 생활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의지면서 살아가는 생활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생활 이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제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나님께서 해주실 때 그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송하게 됩니다. 그래서 뭐라고 하냐하면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즉 이렇게 원수들에게 고통을 받고, 시련과 압제를 당하고, 고통을 경험하고 하는 쓰라리고 아픈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많은 고통을 겪었는데 결국은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시고 또 그를 대적하는 무리들 뿐만 아니라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경험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성도들의 교제를 통해서 받는 그 사랑과 유익이 없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의 절반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도 안에서 느끼는 그 아름다움과 온유함, 그리고 그 사랑, 그 위로, 그 교제의 힘, 그리고 그 교제 안에서 만나게 되는 하나님,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을 소중하게 다루시며, 그 들 하나하나를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그 크고 놀라운 사랑, 이런 것들을 경험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절반만 믿음 생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이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과정을 통해서 결국 시인이 마지막 결심하는 일은 뭐냐 하면 그 하나님을 노래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는 주의 도를 만방에 전하겠나이다. 그래서 이렇게 원수들에게 압제를 당하고 고통을 받는 과정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많은 것들을 통해서 결국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더 잘 알게 되고 그 분을 찬송하게 되고 이러한 하나님을 아는 놀라운 은혜와 그 믿음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그래서 그 분의 성품과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게 하는 바로 그 일을 위해서 모든 인생의 과정과 역경 그리고 고난 이것들이 결국은 그것을 위해서 사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인의 인생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고난과 시련, 원수들로 인한 압제와 박해, 이런 모든 것들이 결국은 사용이 되어서 마지막에는 그로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을 갖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해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하나님 앞에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