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에 빠졌을 때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시 30:6-7).
이 시인은 그 앞부분에서 침체에 깊이 빠졌다가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면서 ‘주의 노여움은 잠간이고 은총은 평생이다 저녁에는 울음이 계속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침체에 빠지게 되었을 때에 가까운 원인은 자신이 죄를 짓고 잘못했기 때문이지만, 더 먼 원인은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말하기를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형통한다고 하는 것은 모든 일들이 막힘이 없이 잘 풀린다는 뜻인데 이것이 자신의 육신에 돈 벌고, 안 먹고. 활동하고 하는 그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는 오히려 여기에서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과 좋은 관계에 놓이면서 건강한 상태에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무슨 뜻이냐면 영적인 침체에 빠지게 되면 내면의 세계에서 제일 먼저 어지럽고, 혼란스럽고, 질서들이 깨뜨려지고 하는 이런 혼란들이 오게 됩니다. 그런 혼란들과 어려움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은 내적으로 보면 형통한 것이 되지 않습니다. 형통하다고 하는 것은 히브리말로 도로를 가는데 장애물이나 어떤 막힘이 없이 한 번 쭉 뚫려서 가는 그런 것이 거침과 방해물이 없이 목표를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내면의 세계는 영혼과 정신의 질서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영혼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고, 말씀에 잘 비췸을 얻고, 그로 인해서 쭉 올바른 삶의 질서들을 갖게 될 때 그것이 내적으로 형통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이 깨뜨려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적으로 형통하게 되고 그것이 삶으로 나타날 때 하나님 앞에 올바른 내면의 질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삶으로 투영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 예전에 나의 이런 상태들이 영적으로 아주 건강하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에는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설마 내가 범죄하랴, 내가 침체에 빠지랴, 내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어지랴,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든지 간에 마음이 미끄러지고 범죄하고 해서 영혼의 깊은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 제일 먼저 영혼과 정신, 마음 이 모든 것 사이에 균형들, 질서들이 깨뜨려지면서 내면의 세계 속에 안에서 이미 장애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은혜로 충만할 때에는 우리가 눈으로 보고 본 그것을 통해서 신령한 쪽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 마음으로 들어오면서 같은 것을 보아도 그것들을 신령하게 해석을 하면서 내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순종하고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다시 우리의 마음에 평화를 주고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님을 향해 올리는 간절한 기도가 가능해지고, 진리의 말씀에 대한 묵상이 가능해지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게 되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침체에 빠지고 죄에 들어가게 되니까 이런 것들이 깨뜨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육욕을 불러일으키게 되면서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한 욕망을 갖게 만듭니다. 무엇인가 옳지 않은 것을 보았을 때 이것이 우리의 정신에 강한 흔적을 남겨서 우리로 하여금 마땅히 우리의 생각이 집중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해이해 지고 집중하지 말아야 될 것에 대해서는 집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혼란들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면의 질서에 있어서는 형통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잘못된 내면의 질서들은 우리의 삶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의 삶에 형통한 질서들도 깨뜨려집니다. 왜냐하면 악인이 마음을 품고 하려고 하는 일의 대부분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막으시고 형통함이 깨뜨려집니다. 커다란 것을 도전하면 도전할수록 더 많은 하나님의 간섭이 있고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것은 성공하지만 깨뜨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속에서 형통함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들이 물 흐르는 것처럼 잘 될 때에 ‘아 뭐 영원하겠지, 내가 미끄러질 리가 있나?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데 안 되는 일이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미끄러지고 나니까 깊은 어두움 속에 들어가게 되면서 울음이 계속하는 영혼의 밤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깐이지만 하나님이 자기를 향해 노여워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시인이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7절에서 시인이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라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하나님과 화목하고 그래서 내 영혼의 질서들이 올바르고 형통하게 되어 진 것,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서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셨던 이 모든 것들이 아, 여호와께서 산을 세우신 것처럼 굳게 세우셨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었구나, 아, 나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나를 붙들어주셨기 때문에 나의 믿음이 든든할 수 있었고, 나의 내면의 질서가 견고할 수 있었고, 주님을 따르는 나의 순종의 삶이 확보될 수 있었구나’ 이렇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아, 그것이 주님의 은혜 였습니다’ 라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하다가 영적인 침체 속에 들어서 영혼이 매우 곤고해지면 누구나 예외 없이 떠오르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영혼의 호황기’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하나님과의 평화를 잃어버린 때가 아니라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며 살던 때, 지금처럼 곤고하던 때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하던 때, 지금처럼 혼란스러웠던 때가 아니라 주님 앞에 은혜에 힘입어 올바른 사랑의 질서를 가지고 살던 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깊이 뉘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예전에 누렸던 그 영적인 호황의 때, 하나님이 정말 함께 해주시고 자기에게 은혜를 주셨던 그 때가 자기를 하나님 앞에 든든히 서게 만드셨던 그 때이고, 그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이 하나님께 순종한 것도 있지만 그러나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은혜로 산을 굳게 세우셨습니다’ ‘아, 내가 형통할 것이라, 나의 형통함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 영적인 호황일 때 ‘그것은 하나님이 은혜로 굳게 세우신 것이었구나, 그 은혜를 끊임없이 힘입어 살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영혼의 깊은 갈수기를 맞았구나’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주께서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게 되었나이다’ ‘그 모든 형통함, 그리고 그 모든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그 견고함,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구나’ 라는 것을 이 시인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주께서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게 되었나이다’ 그 견고함과 형통함,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주님이 당신 자신의 임재의 얼굴빛을 시인의 영혼에 비추셨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원래 이 종교라고 하는 말이 라틴어로 ‘릴리가래’라는 단어인데 묶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종교라고 하는 것은 한 번 알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진리를 알고 자기를 그 진리 안에 계속 붙들어 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종교가 되고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확하고 올바른 지식에 거기에서 끊임없이 이탈하려고 하는 자신의 정신과 마음을 끊임없이 묶고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거기에 붙들어 매는 것이 종교이며 신앙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나는 이미 이루었습니다. 나는 이미 성취했습니다. 나는 드디어 신앙생활의 궤도에 올랐습니다’ 라고 할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매 순간 주님을 의지하며 아버지 앞에서 매일매일 살아가며 그런 생활을 우리들이 해 나갈 뿐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이고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우리에게는 매 순간 오늘이라는 날이 우리가 쓸 수 있는 마지막 날입니다. ‘내일은 내가 신앙을 위해서 노력할 기회가 주어지겠지’ 그러며 오늘을 여유 있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흐트러진 내 마음을 주님께 묶는 마지막 날이다,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마지막 날이다, 나를 부인하고 날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마지막 날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