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 도다.
구원함에 말은 헛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 도다.
영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 사.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 시에 살게 하시는 도다.(시 33:16-19)
녹취자: 장현수
한 나라의 힘은 그 나라의 백성의 수와 그리고 군대의 크기에 달려있습니다. 옛날에 고대의 국가에서는 이것이 더더욱 정확한 사실이었죠. 그래서 백성들이 잠언에 보면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작은 것은 주권자의 수치니라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셨는데 만드신 이 세상 안에 있는 나라가 끊임없이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그렇게 해서 다른 나라를 자기 나라에 복속시키고자 하는 그 모든 시도들은 바로 이 백성들의 수를 늘리게 위함 이었어요. 이렇게 정복을 위한 전쟁을 해나가거나 혹은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을 때에 침략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그 최고의 방법은 바로 다른 것이 아닌 자기들을 지켜줄 수 있는 군인들을 양성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 강력하고 큰 군대를 가진 나라의 왕은 다른 나라를 향해서 큰소리를 칠 수 있었고, 다른 나라의 모든 공격이나 전쟁에도 거기에서 자기 자신을 아주 충분히 지킬 수가 있었죠. 그래서 오늘날에도 동북아의 질서를 보면 각 나라마다 전부 자신의 군대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돈들을 퍼 부으면서 군대의 무기 체계를 현대적으로 개선하고 그러잖아요. 북한은 그런 걸 따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왜냐하면 어마어마한 돈이거든요.. 요번에 나온 미국에서 비행기도 한대에 천오백억 부속품까지 다 살려 면은 삼천 억을 달라고 하잖아요. 어마어마한 거죠 그러니 북한에선 이런 것들 다 할 수가 없으니까 핵이라고 만들어서 협박을 하는 거죠. 그만큼 절박한 것이 국가의 안보라고 하는 거죠. 그런데 오늘 성경을 많은 군대로 구원을 얻은 왕이 없다. 무슨 뜻인가 하면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에는 나라의 흥망성쇠가 군대의 크기에 달린 것 같지만 하나님이 이 지도상에서 나라를 지워 버릴려고 마음을 먹으시면 그 모든 것들이 필요가 없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역사를 보 면은 많은 군대를 가지고 있어도 패배한 나라가 많아요. 중국이 대표적인 경우잖아요. 한번 동원하면은 몇 십만 백만 명의 군대를 동원 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나라였지만 그런 나라가 그렇게 군대를 동원해서 아주 작은 나라인 그 우리나라를 공격해서 망한 예는 많아요. 수나라도 그렇게 백만 대군으로 우리들을 공격하다가 결국은 망하지 않습니까? 뿐만이 아니죠 미국이 전쟁을 할 때에 독립전쟁을 할 때에 그때에 파병을 했던 프랑스는 그 군대를 파병하고 나서 결국은 왕정이 무너지게 되죠. 뿐만 아니죠 역사에 보 면은 이런 실례들이 아주 많이 이러나게 되죠. 이렇게 군대가 많다고 하더라도 그 군대가 왕을 구원하지 못하는 적이 많이 있단 말이죠. 이렇게 많은 군대가 있어도 왕을 구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신이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힘을 의지하거나 믿지 말아요 하는 것이죠. 더욱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더욱 그래요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더욱 그 힘 그러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군대와 능력 이런 것들을 믿으면 안 되는 것이죠. 그것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바이시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은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는 성도의 마음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그런 마음 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 그래서 내게 많은 군대가 있어도 왕조차도 그 군대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수 없으니 마땅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인 왕은 군대가 아니라 자신에게 승리를 주시고 자기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죠. 오늘 성경에 보 면은 그렇게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은 군대의 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말하면서 이어서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에 관한 이야기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래서 영혼을 하나님께서 당신을 경외하는 자의 영혼을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살리신다 라고 하는 거죠. 육신에 있어서 환란과 어려움 커다란 전쟁 이런 것에서 하나님이 구원 하시는 위대한 능력을 보면서 시인은 그런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 자신의 영혼을 고통에서도 건지실수 있을 것이라는 신앙을 가진것 이에요. 우리들이 영혼의 어려움을 경험하고 그 영혼의 어려움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건져주신 그 놀라운 힘과 능력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은 사실은 그 영혼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거기에서 헤어나는 그것이 육체가 환란을 당했을 때 거기에서 헤어나는 것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배가 고파서 예수를 믿었습니까? 아니면 몸이 아파서 죽을병에 걸려서 예수 믿게 되었습니까? 그게 아니죠 육체적인 환란과 어려움도 참 견디기 어려운 것이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은 영혼의 고통이죠. 육체적인 어려움들은 우리가 비록 하나님이 아니지만 이 세상의 자원을 가지고 있으면 어느 정도는 우리의 육체를 구원 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영혼을 위해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육체의 주인은 영혼이고 영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을 대해서 무엇을 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께 잇대어 살아가는 삶 그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매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우리의 영혼의 주인이신 주님을 의지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거죠. 시인이 그러한 진리를 경험한 거에요. 그러니 영혼이 곤고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입니까 영혼이 곤고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얼마나 곤고하고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들인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영혼은 하나님을 향하여 살 때 까지는 어떠한 행복과 즐거움을 누릴 수가 없어요. 육체로 좋아하는 이 세상의 많은 즐거움과 쾌락들 이런 것들은 우리의 영혼의 무게가 되어서 우리의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하여 날아오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매순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필요해요. 그래서 하나님께로 오는 진리의 말씀을 먹음으로써만 이 영혼이 건강 할 수 있고 그리고 영혼다울 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육체를 위해서 우리의 배려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늘 먹여주고 씻겨주고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일생전체가 우리의 육체를 섬기는 일생이라고 말 할 수 있잖아요. 이른 아침서부터 밤늦게 까지 그렇게 땀 흘리며 애쓰면서 일하는 것이 무엇을 위하는 것입니까? 가족의 영혼을 위한 겁니까? 자신의 영혼을 위한 겁니까? 인류의 영혼을 위한 겁니까? 결국은 자신의 육신을 돌보고 공급 할 수 있는 제화들을 얻게 위해서 미래의 궁핍에 대비해서 그렇게 애쓰는 것이에요. 그렇게 우리의 육체를 위해서 배려하는 조금 더 좋은 것들을 그렇게 섭취하고 좋은 것들로 자기 육체를 계속 섬기려고 하는 이유는 자신의 육체나 이런 것들이 그렇게 좋은 것들을 공급해 줌으로써 자신의 육체가 훨씬 더 많은 건강을 유지 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러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하죠? 무엇을 합니까? 우리의 영혼을 돌보는 일에서는 아주 게으르게 하죠. 게으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앞에 영혼이 하나님을 쫓아가는 기도의 생활을 게을리 하고 또 영혼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말씀 생활을 게을리 하고 그리고는 자신의 육체만을 열심히 섬기고 그때 자신의 영혼이 깊은 고통과 곤고함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자신의 힘으로 그 육체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요 그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요. 그때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도우심을 갈망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죠. 그 복된 사람이에요. 그래서 영혼이 곤고하면 곤고할수록 영혼 자신을 돌보고 그 영혼이 하나님께 구원되도록 하나님께 호소하고 그래야 되는데 은혜가 떨어지면 그렇게 안 해요.그리고 그냥 육체에 쳐 먹이고 쳐 바르고 이렇게 하는 거에요. 진짜로 자기를 살려달라고 외치는 건 영혼인데 그렇게 영혼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고 이렇게 해야 되는 거에요, 그렇게 안 해요 그러고는 영혼의 곤고함을 육체의 잘됨으로써 계속해서 가려보려고 그렇게 하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곤고함과 어려움은 계속 밀려오는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이런 것 들이 잘못된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고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