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고한 자가 찬송을 들을 때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시 34:1-2)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낯을 피해서 도망을 갔을 때에, 가드라고 하는 곳으로 도망을 가는데 거기에 이제 그 나라의 왕이 아비멜렉이었습니다. 거기까지 이 수소문이 와서 이제 다윗을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아비멜렉이 이제 이 다윗을 아주 중요한 인물로 알고 찾아내려고 하는데, 이제 다윗이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서 지혜를 발휘하여 미친 척합니다. 수염에 침을 바르고, 미친 척 하니까 아비멜렉이 ‘뭐 대단한 인물을 찾는 줄 알았는데 미친 녀석을 찾는구나’ 그리고 다윗을 풀어주죠. 거기에서 도망 나왔을 때에 지은 시가 바로 이제 이 시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는데도 그의 고백은 ‘내가 여호와를 송축함이요, 나의 입술이 여호와를 송축하는 것을 계속할 것이라’ 우리들은 흔히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분을 찬송하지 못하는 이유를 우리의 인생의 어려움과 환란, 궁핍, 시련 이런 것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형통해도 결코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제목을 못 찾아 낼 수도 있고, 큰 어려움을 당하면서 인생을 살아도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제목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뜻을 어느 방향으로 세우느냐는 것입니다. 마음의 뜻을 어느 방향으로 세우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밖에 있는 많은 사물에 대한 생각이, 인상이 찍히는 곳이에요. 그래서 이 마음은 엄밀하게 말하면 육체와 영혼 그 사이에 있는 막과 같은 것이에요. 그래서 육체를 통해서 지각된 눈으로 본 영상, 코로 맡은 냄새, 입으로 알게 된 맛, 귀로 듣게 된 소리, 피부로 접촉하게 된 감각, 이런 것들이 육체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에 전해지게 되는 거예요. 그때 이 마음은 그렇게 전해지는 것들을 통해서 ‘이게 뭐구나’ 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또 그런 것들이 전해질 때 좋아지고 싫어하는 경향들을 이 마음 안에 갖게 되요.
그런데 그것이 마음의 방향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그것들이 모두 해석 되어지는 것들이 한 방향으로 가게 되는 거예요. 마치 책상을 비스듬히 놓고 여러 가지 그릇을 올려놓으면 어느 그릇을 올려놓든지 간에 비스듬하게 되어 있는 쪽으로 그릇들이 쏠리듯이 우리의 마음도 그런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기분이 나쁘면 평소에 괜찮아 보이는 남의 행동도 아주 기분이 나빠 보이는 거예요. 마음이 즐겁고 행복하면 옛날 같으면 못 참았을 행동인데 이상하게 기쁘고 행복하게 되면 그것도 다 고와보이는 거죠. 이게 마음의 경향이에요. 마음의 경향이 비뚤어진 사람은 인생 살기가 참 힘들죠.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겐 넉넉히 이해되는 것들이 이 사람에겐 비뚤게 인식되기 때문이에요.
근데 이렇게 마음의 성향들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우리들이 마음을 먹는 것에 따라서 그것들이 일시적으로 정해지기도 해요. 힘들고 어려운 일이 계속 닥치는데 ‘아이고, 그래도 감사한 게 너무나 많잖아, 감사해야지’ 그러고 마음을 먹으면 마음을 먹기 전까지 힘들어 보이고 그러던 것들이 괜찮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한단 말이죠. 그게 바로 신자의 의무예요.
인생의 가장 어려운 때에 다윗은 이렇게 뜻을 세운 거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노래하고 찬송했던 것이에요. 그랬더니 노래하고 찬송하였던 거예요. 그랬더니 이것이 다윗의 마음속에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었던 거죠. 그래서 인생의 가장 곤고하고 어려운 때에 나는 하나님께 찬송할 것이며, 내 입술은 찬송을 쉬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노래하는 거죠. 하나님이 나를 대적의 손에서 건져주셨다고 하는 찬송이죠. 어떻게 보면 가장 고통스럽고 어려운 상황이었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목숨까지도 적들의 수중에 떨어질 위기에 있었지만, 그 큰 위기와 어려움을 통해서 이 시인은 하나님 앞에 송축하게 되었던 거예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 같지만 그러나 이쪽에서 보면 하나님이 목숨을 건져주셨잖아요. 그러면 사실은 모든 것을 건져주신 거죠. 왜냐하면 살아있지 않다면 소유가 무슨 의미가 있겠고, 지위가 높아지는 영광이 무슨 뜻이 있겠어요. 제일 썰렁해 보이는 게 죽은 사람한테 승진시켜 주는 것, 계급 올려주는 것. 그게 그것이 가족들에게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런 거예요. 다윗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희망이 없이 빼앗긴 것 같겠지만 그러나 다시 한 번 보니까 이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찬송을 하나님께 올리고 있는 거죠. 그것이 바로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노래하고 있는 장면이에요.
그래서 우리도 항상 무엇인가 많은 고난을 당하는 것 같을 때에 저쪽에서 보니까 그렇지만 반대쪽에 넘어와서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 참 많아 그렇게 생각을 바꾸면 찬송이 나오는 거예요. 먹이고, 입히고, 기르시고, 나에게 은혜를 주시고, 그리고 나 같은 인간을 구원하시고도 후회하지 않으시고 그렇게 매 순간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 찬송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그게 바로 신앙이에요.
2절에서 이제 다윗은 곤고한 자가 내 찬송을 듣고 기뻐할 것이다. 왜 곤고한 사람이 다윗의 찬송을 듣고 기뻐할까요? 다윗 같은 인물이 그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크신 도움을 얻었으니까 그 찬송을 듣던 곤고한 자도 “아, 그렇구나. 나는 할 수 없다. 이젠 희망이 없다. 버림받았다. 이제 나는 절망이다 ” 이러던 사람들도 다윗을 보면서 내가 아무리 환란이 많고, 고난이 많아도 이 사람 같을까? 이 사람도 하나님이 그 큰 시련과 어려움에서 구원해 주셨다면 나도 희망이 있다. 그래서 결국은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또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요. 그게 구원의 여망이에요.
키에르케고르라고 하는 철학자는 절망이 인간으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라고 했어요. 절망은 모든 희망이 끊어진 상태예요. 그리고 하나님이 부인된 상태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한 거기에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이 절망의 감정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한 감정일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을 버린 감정이에요.
신자가 어느 상황에 있던지 간에 놓지 말아야 할 두 가지 확신이 있어요.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사실과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으로 나를 인도하신다는 사실, 그래서 환란과 어려움이 올수록 세상의 사람들은 상황과 씨름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진리를 알고 싶어 하는 거예요. 그때에 오히려 큰 환란과 어려움 속에서 그 진리를 붙들면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게 되는 것이에요. 그렇게 하면서 신앙으로 주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신앙으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