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염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1).
시인이 범죄 중에 하나님 앞에 드리는 또 다른 기도에요. 그 기도가 무엇이냐 하면 두 가지로 오늘 요약이 되는데,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라고 되어있지만 히브리어 성경에 보면 ‘주님의 면전에서’ 이렇게 나옵니다. ‘주님의 얼굴 앞에서’ 이렇게 나오죠. 신자의 삶에 가장 커다란 행복은 하나님 면전에서 사는 것이에요. 시인은 일생을 살면서 하나님을 대면하며 살았던 사람이죠.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서 아주 탁월한 친밀함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면전에서 그렇게 주님과 끊임없이 교통하면서 살았던 그러한 영적인 생활이 죄와 함께 급격히 단절되는 것을 경험했던 것이에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가 잘 되고 말씀을 들으면서 깨달음이 계속 오고 그것이 얼마나 기쁘고 소중한 것인지, 잃어버리기 전에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막상 예배가 예배답게 드려질 수 없고, 기도가 기도답게 올려질 수 없고, 이렇게 될 때에 비로소 그 모든 것들이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하는 것을 아주 절실하게 하나님 앞에 깨닫게 되는 것이죠. 시인은 범죄하기 전에 아마 구약에서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어요. 하나님과의 교제의 깊이에 있어서. 죄와 함께 이것들이 확 사라져 버린 것을 경험한 것이죠. 그래서 지난 주일 설교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잖아요.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을 때 우리가 죄를 지으면 이렇게 죄가 들어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허물어뜨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죄에 의해 소멸되는 것처럼 생각하잖아요? 물론 성경에서도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이야기가 나오죠.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모두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하나의 묘사이지 실제가 아니에요. 그렇게 되면 어떠한 결과가 오는가 하면, 논리적으로 죄가 은혜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결과가 오는 것이에요. 그런데 실제로 보면 우리들이 사람이 은혜를 받고 깊이 변화되면 그 사람을 통해 나타나는 선한 인격과 진실하고 올바른 이 모든 삶은 죄를 이기는 은혜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가 하면, 죄 자체 안에 은혜를 허물고 파괴하는 아주 위대한 능력이 있다고 보기 보다는, 신자가 죄를 마음으로 선택하고 행위로 불순종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그 신자 안에 있었던 은혜를 거두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단번에 거두시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불순종과 범죄의 정도, 크기 이러한 것들에 따라서 하나님이 은혜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거두어들이시는 것이에요. 그렇게 해석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을 때에만 우리가 받는 이 모든 은혜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 우리의 영적 생활의 생명이 달려있다는 이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라, 범죄하는 속에서도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우리 안에 있는 이 영적 생명의 은혜를 완전히는 아니지만 그 활기와 생명력을 거두셔서 그래서 당신 자신에게로 돌리심으로써 신자는 자신 안에 있는 좋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모든 처분의 주권이 그 분 안에 있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그것을 거두시는 것이에요. 여기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필요한데, 그 중에 하나는 인간의 모든 죄는 성경에 객관적으로 명시가 되지만, 그러나 그 죄에 대한 경중과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은 객관적으로도 제시되어 있지만 주관적으로도 하나님은 각각 다르게 보시는 것이죠.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끊임없이 죄를 죽이는 삶을 사는데도 죄가 우세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러한 충성을 안 하는데도 죄를 덜 짓는 사람이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 무게와 중량 이러한 것들은 사람으로써는 판단이 안되지만, 하나님으로써는 그것을 정확히 달아보는 것이죠.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때에 죄에 대한 유리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고, 불리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유리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이 올바르게 살아도 하나님 앞에 많이 올바르게 산 것이 아닐 수 있고, 불리한 점을 가지고 분투하는 사람은 조금 의롭게 살아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많이 노력하는 사람으로 비췰 수 있는 것이죠. 어렸을 때에 모든 학교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학교에 다닐 때에, 중학교 때인가, 담임선생님이 기말고사가 끝나면 항상 칭찬을 하고 상을 주는데 1등한 사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가장 등수가 많이 점프한 사람, 그러니까 2등한 아이가 1등한 것보다는 35등한 아이가 23등 한 것이 훨씬 노력을 많이 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죠. 비유를 하자면 그런 것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들이 은혜를 받고 은혜에서 물러날 때에 그 때에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피해를 입은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거두어들이신 것이죠. 그러니까 오늘 이 시인이 주님 앞에서 살았거든요? 주님 앞에서 살면서 주님 앞에서 말할 수 없는 행복과 주님과의 교통, 하나님 면전에서 사는 그러한 혜택들을 누렸는데, 어느 한 순간에 이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리고 캄캄한 어두움이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드리우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게 바로 시인이 범죄 후에 경험했던 자신의 영적인 형편이었어요. 그 속에서 깊은 고통을 겪었던 것이에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만 있으면, 우리가 하나님을 구하여 그 분을 만날 수만 있으면, 그리고 우리가 어떠한 어려움 속에 있을 때 그 분께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러면 극복하고 이길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영혼이 어두움 속에 있다는 것이 문제에요. 신자의 가장 커다란 행복은 하나님 면전에서 사는 것이에요. 그 분의 눈 앞에서 사는 것이죠. 그래서 그 분의 은혜의 면전에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인생의 진정한 행복이고, 모든 불행은 이 행복보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함으로써 얻는 그 행복이 클 수 있다고 잘못 판단하는 데에서 모든 신자의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에요. 두 번째는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했거든요. 이러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이 진정한 영적인 친밀함, 이것의 기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주님의 성신이시다, 성령이시다 이런 이야기죠. 다윗은 하나님 앞에 기름부음을 받았던 사람이었죠. 하나님이 쓰시려는 사람에게 당시에는 우리처럼 내주하여 늘 계시는 성령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분이신데, 그러한 성령을 하나님께서 내게 부어주시는데 그 부어주신 강력한 성령은 이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적인 능력도 아주 현저하게 증대하게 만들어주시는 것이죠. 그래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 같은 것이 그것이잖아요. 하나님을 공경하는 지혜만 주신 것이 아니라 재판을 하고 백성들을 다스리고 통치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는데, 이것은 자연적인 것이 거든요. 그것에도 아주 탁월한 증진을 주셔서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이죠. 그리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적인 은혜도 부어주셔서 이 부어주신 성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자신이 탁월한 교제 속에서 주님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셨던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매 순간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신자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누리고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사는 그것으로 신자의 삶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해야지, 그것이 아닌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베풀어주신 이 많은 은혜들을 하나님의 주권으로 거두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주님의 큰 주권과 놀라운 통치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에게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언약관계라는 사실을 보여주셔서 우리로 하나님 앞에 그 언약 관계 속에서 충실하게 살도록 우리를 이끄시고 돌보시는 것이에요. 이것이 바로 오늘 성경 본문이 의미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