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손이 나를 누를 때
“여호와여 주의 노로 나를 책하지 마시고 분노로 나를 징계치 마소서 주의 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시 38:1-3).
언제 이 시를 썼는지는 사실 아무도 단언할 수는 없지죠. 그런데 이것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자기가 겪고 있는 죄로 말미암은 깊은 고통, 이것을 내면의 세계 속에서 표현하고 있는 그 시입니다. 사실 이 다윗의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강한 끌림이라고 할까요? 이것은 두 가지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구약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이 모든 창조의 세계 속에서 절실하게 느꼈던 인물 가운데 탁월한 사람이 이 다윗이에요.
그래서 그의 시편을 보면 하늘의 달과 별은 물론이고 이 땅에서 일어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이 세상에서의 모든 인간들의 권력의 부칭과 나라의 흥망,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가 되었어요. 그만큼 탁월한 신앙과 그리고 지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여겨지는 것이죠. 이것은 자기 바깥에 무한한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느꼈던 사람이죠. 또 하나 다윗의 시가 우리에게 주는 강력한 끌림은 뭐냐 하면 이 내면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이 상세한 묘사예요. 그래서 저는 이 다윗의 시편을 구약의 복음서라고 부르고 싶은 그런 충동이 느껴질 정도로 그렇게 아주 탁월한 거죠.
그런 자기 바깥에 있는 무한한 세계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발견하는 그 탁월한 아름다움과 그 다음에 자기 안에 있는 무한한 세계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이 내면의 성찰, 이 두 가지를 끌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거예요. 그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 대한 깊은 사랑 그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우주와 사물들에 대한 지식이 탁월하고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탁월한 지혜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탁월한 지식이 없어도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영리하고 학식이 많은 사람들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게 아주 현저하게 부족해도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용납해 주시는 거죠.
자 아무튼 38편은 그런 다윗의 신앙과 신학의 탁월성 가운데 자기의 내면을 성찰하는 깊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에요. 1절에서 이 다윗은 38편 전체의 표제가 될 아주 중요한 진수를 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주의 노로 책하지 마시고 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라는 것이죠. 여기에서 발견하는 교리는 하나님은 진노하시며 그리고 당신의 자녀들을 징계하시는 분이시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거죠. 인간의 사랑이든 하나님의 사랑이든 그 사랑에는 반드시 계획이 있어요. 그리고 사랑의 계획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계획을 따라 살아가면 그것을 가리켜서 순종이라고 부르고 그리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런 하나님의 계획에 거슬리도록 살아가면 이걸 가리켜서 불순종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만약에 불순종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이 기계적인 사랑이라면 햇빛이 쭉 비쳐요. 근데 햇빛이 싫어서 기둥 뒤에 숨었어요. 햇빛이 휘어서 들어오지는 않아요. 햇빛을 피해서 숨으면 숨는 거예요. 햇빛이 찬란하게 비춰서 눈부신 아침이 되어서도 자신이 이불속에 들어가서 뒤집어쓰면 그 빛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기계적인 사랑이 아니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 그 사랑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이루고자 하는 계획이 있으신대 그 계획대로 우리가 살지 않으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끊임없이 인격적으로 설복하셔요. 그러나 이제 설복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거죠.
그런데 이 징계는 항상 내면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일단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인간의 영혼에는 깊은 시름이 있게 되는 거죠. 근심과 걱정, 염려, 예전에 있었던 기쁨과 생생한 은혜 이런 것들이 마음에서 사라지는 것이죠.
그러면 이 하나님의 책망, 그리고 이 하나님의 징계 이것은 오늘 시편에서 이야기하기는 주의 노, 분노 이렇게 묘사되고 있거든요.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은유적인 묘사예요.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면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고 죄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께 책망을 받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의 양심의 책망을 받게 되요. 내가 내 안에 있는 나의 양심이 하나님보다 훨씬 나를 먼저 책망하는 거예요.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이것들이 잘못될 때 하나님은 괜찮다고 오라 그러시는데 내 양심이 나를 그릇되게 책망해서 도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할 때가 있는 거죠. 그런 점에서 오늘 이 시인이 그것을 주의 노, 주의 분노라고 부르는 거죠.
원래 하나님의 이 분노는 하나님의 원수들, 멸망하기로 하나님이 정하신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폭발하는 분노를 가리키는 거죠. 그런데 어느 순간에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면 그러면 하나님께 앞에서 느껴지던 친절함, 호의, 부드러움, 은혜, 이런 것들이 모두 여기에서 사라지는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그 모든 것들이 마음속에서 사라지게 되고 그 다음에 이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걱정이 휩싸이게 되는 것이에요.
그것을 오늘 시인이 말하기를 ‘주의 살이 나를 찌르고 손이 심히 누르나이다’ 살은 화살이에요. 화살이 뾰족한 끝인데 그것으로서 나를 찌른다, 이게 그 뾰족하고 살로 우리의 무릎이나 우리의 어깨나 우리의 가슴을 찌를 때 수없이 찌르면서 피가 날거 아니에요. 그런 고통을 이제 느끼고 있는 거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이건 전쟁의 문맥이죠. 전쟁을 하거나 격투기를 할 때 상대방을 쓰러뜨려서 제압해 버릴 때에 그 손으로 누르는 그런 속에서 결국은 눌러서 마지막에 받아내고자 하는 것이 뭐예요? 항복, 혹은 죽음이죠.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갈 때 느꼈던 그 영혼의 고통이 얼마나 큰가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 이후에도 계속 상세하게 죄에 대한 묘사, 죄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증상들에 대한 묘사가 나와요. 그래서 내 뼈에 성한 곳이 없고, 그리고 내 살의 성한 곳이 없고,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그러면서 확 미치는 것을 경험하는 거죠. 그래서 이제 하나님 앞에 그 인간이 말이죠.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이렇게 불안해하고 괴로워하고 고통하고 이러는 일들을 계속 한다면 그러면 이러한 많은 고통과 괴로움들을 계속 한다면 이게 결국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그 뼈와 살에 이상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깊은 염려와 고통 이런 것에 시달리게 될 때 우리의 이 정신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육체에까지 변화가 오는 거죠. 우리들이 낮에 신경 쓸 일이 있어서 조금만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면 당장 점심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이렇게 위가 아프잖아요. 상관없어요? 잘 드시나보죠. 우리는 금방 와요. 밥을 먹다가도 뭔가 이렇게 안 좋은 소식이거나 일이 탁 들어오면 그대로 딱 얹혀요.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죠. 그대로 위가 탁, 위와 장이 딱딱해지면서 소화가 안 되는 거죠. 그게 결국은 우리의 영혼과 육체 이 모든 것들이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인간의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바깥에서 하나님을 떠나서 얻을 수 있는 그것은 정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일시적으로는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우리에게 큰 고통으로 다가오게 되는 거죠. 그래서 매일매일 꽃처럼 향기 나는 생활이 아니어도 그래서 주님 안에 거하는 삶, 이 세상에 큰 욕망이 없고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 주님을 의지하며 사는 삶,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생활이다.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죠.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아버지 앞에 간구하고 기도하게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처럼 저희들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고 하나님이 새 힘을 주셔서 주님을 의지하고 아버지 앞에 살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님이 복이 되고 또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함으로 저희의 영혼과 우리의 육체의 복이 되도록 어디 있든지 주님께 순종하며 어린 아이처럼 주님을 의지하며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우리 주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을 자랑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