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노래를 부를 때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40:3-4).
찬양이라고 하는 것이 그냥 불러서 부르는 찬송이 있고, 마음으로부터 억제할 수 없는 정에 의해서 쏟아져 나오는 찬송이 있습니다. 기도하고 비슷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기도하면 기도하죠. 그러나 내 마음 속에서 성령님이 기도하게끔 하시면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큰 임재 속으로 들어가기를 갈망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찬송도 내가 불러야 하기 때문에 부르는 찬송이 있고, 성령께서 내 마음 속에서 찬송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확 쏟아놓게 하시는 그런 찬양이 있습니다. 그 찬양이 바로 오늘 시인이 "새 노래로 여호와께 부를 찬송을 하나님이 내 입에 두셨다"는 표현을 한 그런 찬송이에요.
이제 새 노래라고 하는 것은, 예전에 부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찬송을 의미할 수도 있고 또 하나는 예전에 부르던 것과는 전혀 다른 감동 속에서 부르는 찬송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나면 우리들이 언어의 부족을 느끼게 됩니다. 감동은 큰데 그 큰 감동을 언어로 표현할 때 그 표현이 매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게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이에요.
이 시인이 새 노래가 그 마음속에 가득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었습니까? 열심히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새 노래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자기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 올리시고 자기의 발을 반석위에 두셔서 견고하게 하신 그 은혜 때문에 그 가슴 속에는 하나님께 올릴 새 노래로 가득 찼던 거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자기를 영혼의 깊은 침체와 수렁 같은 어둠 가운데서 건져주시니까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감화가 생겨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을 깊이 알았던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살 깊이 경험했던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침체 가운데서 회복되는 가운데에 경험했다는 것이에요. 정확하게 말하면 용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했다라는 얘기죠. 그게 바로 이제 시인을 비롯한 우리 모든 사람들의 경험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인 것이죠.
그러면서 이제 이 시인이 무엇을 이야기 하냐 하면, "많은 사람이 보고 여호와를 의지할 것이다" 왜? 이 시인이 그런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 빠졌을 때 아무 희망이 없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여겼지만 하나님이 기적과 같은 은혜를 베푸셔서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빠져 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에서, 웅덩이에서 건져주시고, 끝없이 빠져 들어가는 수렁에서 끌어 올려주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셨기 때문이죠. 우리가 그냥 현실에 만족하고 사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죄 가운데로 미끄러져 들어가지만 그러나 거기에서 극복해 나온다고 할 것 같으면, 그러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커다란 환경의 어려움, 영혼의 침체,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큰 은혜, 위대한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 이런 것들을 드러내는 중요한 한 계기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 밤하늘이 있기 때문인 것처럼 그리고 달이 아름다운 것도 어두운 하늘 때문인 것처럼 그렇게 우리의 침체와 환경의 어려움을 하나님의 찬란한 별빛 같은 은총을 드러내는 배경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중요한 것은, 영혼의 깊은 침체와 환경의 깊음 속에 있는 것, 거기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거기서 벗어나오고, 벗어나오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과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건지시는 그 크고 놀라운 사랑과 은혜에 대해서 깨닫게 되느냐 하는 것이에요. 그게 바로 신앙생활이에요.
그러면서 시인이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반성을 하는 거에요. 그게 뭐냐면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기서 '돌아본다'라고 하는 말은 그들과 의논하고, 그들과 같은 생각을 나누고, 그들의 삶의 길을 따라가는 삶을 가르치는 거에요. 그러니까 교만하고 거짓에 치우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모두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교만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없이 여기거나 무시함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사람을 향한 자만심을 가리키는 것이에요. 그리고 거짓에 치우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기준인 율법을 따라서 살지 않고 자기 사랑에 빠져서 그 말씀에 도를 벗어난 모든 생활을 가리키는 거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난 생활은 결국은 자기가 좋아서 한쪽으로 치우치는 생활이거든요. 그렇게 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과 함께 지혜를 나누고, 그들과 함께 삶을 공유하고, 그들과 함께 연합을 이루며 살아가는 이러한 삶을 살지 않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복이 있도다."라고 오늘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게 신앙생활이에요.
그러면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시인은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서 하나님의 건져주시는 과정을 통해서 결국은 하나님 앞에 무엇을 배운 것입니까? 하나님이 언약의 충실하셔서 자기를 건져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 그리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향해 순전하고 정직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결국은 은혜를 베풀기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한 번의 과오와 죄 가운데서도 건져내심으로 당신의 사랑을 그들에게 보여주신다고 하는 것을 시인이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좋은 것은 쓰러지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올곧게 한길을 걸어가는 것이죠. 그러나 그렇게 못할 때가 있죠. 그때에는 회개하고 주님을 꼭 붙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간에 주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깊은 웅덩이와 수렁 같은 침체에서 벗어나는 것 이외에 다른 행복한 길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주님을 깊이 의지하고 거기에서 벗어나 이기는 그런 주님의 사람들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