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를 돕는 자를 복주심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저를 건지시리로다”(시 40:1).
여기서는 분위기가 달라지죠.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들 중에 어떤 사람들을 환란 날에 붙드시고 그리고 고통 받는 날에 건져주시는 데, 그게 그 사람이 이웃에 대해서 어떻게 행했느냐 라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이 사상은 시편 뿐만 아니라 구약 전체에서 매우 주의 깊은 관찰을 요구하는 사상이에요.
오늘 여기에 보면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 이렇게 나오거든요. 여기서 '빈약하다'라고 하는 것은 가난하고 힘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거죠. 그래서 이 세상에는 혼자의 힘으로 스스로 자기를 지탱하며 사는 사람이 있고 또 자기를 지탱할 그 이상으로 잘 물질을 모으고 육체의 건강에 있어서나 물질에 있어서나 명예에 있어서나 그 이상의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또 반대로 자기 하나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약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섞여 있는데, 이 구약의 사상은 하나님을 믿는 언약의 공동체, 하나님을 믿는 약속의 공동체 곧 이스라엘이죠. 이 사람들 속에서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들을 함께 나누고 누리면서 사는 공동체이기를 하나님은 바라셨던 거죠. 그리고 이런 그 삶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이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동체 안에 공급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또 경험하게 하시려고 하신 것이죠.
그래서 이러한 사상은 신약의 교회로 이어지는 거에요. 그래서 신약의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이 언약의 공동체, 구약은 옛 언약의 공동체가 된다면,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이 신약의 영적 이스라엘의 교회는 새 언약의 공동체가 되는 거죠. 이 새 언약의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은 교회의 지체들이 넘치도록 가지고 있는 것을 그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함께 나누고 교통하면서 자신들의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공급해주신다는 것들을 경험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교회에 속한 모든 지체들이 함께 하나님을 의뢰하면서 사는 그러한 공동체가 되도록 하나님이 부르신 거에요.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을 물질로 돕는 것, 그리고 영적으로 약한 사람을 신앙적으로 붙들어 주는 것, 그리고 지혜가 부족해서 미련하게 사는 사람들을 진리의 말씀을 나누어 그를 올바른 길로 걸어가도록 이끄는 것, 그 다음에 그 자신이 모자라서 허물이 많아서 그래서 잘못된 일을 하고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를 사랑으로 바른 삶을 살도록 이끌어주는 이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인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 이거에요. 그걸 안하는 사람은 곧 누구냐 하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올바로 살지 않는 사람이라 이거에요.
오늘 여기에 보면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이 말이 좀 어려운 말이에요. 잘 하라고 이렇게 권면하는 그걸 가리킨다고 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전혀 그 뜻이 아니고 이 말은 히브리 말로 '파카드'라는 말인데 이 말은 방문하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권고하시는 날에 너희를 심판하시니라" 하나님이 방문하신 거죠. 찾아오시는 거에요. 그럼 생각해 보십시오. 가난하고 병들고 돈 없으면 누가 찾아옵니까? 옛날에 그런 말이 있잖아요? 정승 집 개가 죽으면 사람이 가득 모여도, 막상 정승이 죽으면 오는 사람이 없다고. 왜 그래요? 정승 집 개가 죽으면 가서 정승한테 눈도장을 찍지만 정권이 바뀌었는데 그 옛날 정승 지내던 사람이 죽었다고 거기서 얼굴 내밀면 새로 바뀐 주인한테 찍혀가지고 자기 자신의 인생 길이 막히는데 왜 가냐 이거에요. 그게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이에요.
그러나 언약 공동체 안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그래서는 안 되었던 거죠. 그래서 "이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 가난하고 힘이 없고 자기의 힘으로 설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복이 있다. 이게 복된 사람이다"라고 하는 거에요. 그러면 이 구약에서 이야기 하는 이렇게 언약 공동체 안에 있으나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사람을 찾아가는 이러한 모습, 이것은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을 찾아오시는 것을 자기가 대신해 주는 거에요.
그러면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사람들을 주님이 찾아오실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찾아오시겠어요? 우리는 부자가 되어 본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부자들은 그런다면서요? "가난하게 사는 것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게 마련이야" 그런다면서요?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은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데요. 그래서 우린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가난하게 사는 모양이에요. 근데 요즘 이해는 되요. 뭐 그렇게 부자가 되는 비결에 대해서 열렬하게 탐구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그런데 어쨌든 그런 마음으로 사람들을 찾아가는 그런 마음이 아니겠죠. 하나님의 마음은. 당신의 자식을 찾아오는 그런 마음으로 찾아오는 거죠. 그렇죠? 만약에 여러 분들이 애들 시집장가 다 보냈는데,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누가 굼니 먹니 그런 소리가 들려 봐요. 그때의 부모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거에요. 그거를 사람이 대신 해주는 거에요.
왜 그걸 대신해 주겠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그걸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 일을 하는 거죠. 그런 사람들은 복이 있다 이거에요. 복 받은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재앙의 날에 하나님께서 저를 건지실 것이다. 왜요?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도 말하죠.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다." 하나님께 돈을 빌려주는 거라 이거죠. 그거는 뭘 보여 주냐면, 하나님이 하나의 언약 공동체 안에서 얼마나 우리들이 유무상통하면서 살기 원하시는 가를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그를 구제하는 것은 당신 자신에게 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갚으시는 거에요. 그런 빈약한 자를 아무도 돌아본 적이 없을 때에 그를 찾아가고 그를 돕고 그를 구제하고 하는 이 모든 일들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깊은 의존의 마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푸신 그 은혜의 과거를 기억하면서 거기 충실하게 살려고 하는 헌신된 마음, 거기에서 나오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것은 어떤 행동 하나를 보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신다는 것이라기보다는 마음 자체가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환란을 만나요. 어려움을 만나요. 하나님이 그들을 보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저희를 건져주시는 거죠.
그래서 여기에서 어떤 공로, 내가 이러 이러한 일을 하면 이것이 공로가 되어서 하나님이 나에게 신세지신 것처럼 생각을 하고 나를 갚아주실 그런 사상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에요. 아우구스티누스가 자기의 책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죠. 당신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바로 거기에 하나님 말고 누가 계시겠습니까? 당신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거기 형제들 말고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때문에 사랑해야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이 함께 생겨나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일치를 이루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