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융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시 46:1-3).
이 시를 다윗의 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표제에 보면 고라자손의 시라고 되어 있는데 그 사람들은 고라자손이 썼다기 보다는 아마 보관을 하고 있었던 시일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가지로 시의 문체나 표현 이런 것들이 다윗의 흔적을 많이 닮고 있기 때문에 아마 그렇게 본다 이렇게 생각됩니다. 우리는 이거를 뭐라고 판단할 만한 입장에 있지는 않지만은 그러나 일리는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 성경 읽은 마지막에 보면 '셀라'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것은 음악적인 부호입니다. 아마도 악보로 말하자면 조바꿈, 조를 바꾸는 것도 장조에서 단조로 내려간다기 보다는 조 올림하는 그런 표시라고 여겨져요. 그래서 셀라라고 하는 단어인데 아마도 제 생각에는 이 단어의 뜻이 너무나 세월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명백하게 어떤 의미를 갖었는지는 잘 몰라요. 아마도 제 생각에는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 사다리를 봅니다.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사다리를 보는데 그 단어가 '술람'이라는 단어예요. 그래서 히브리어 자음 알파벳으로 세 글자로 되어 있는데 앞에 있는 두 자가 일치해요. 그것이 구약성경에서 딱 한번 나오는데 여러가지 다른 동족어들과 비교해 볼때 사다라리기 보다는 하늘을 향해 쭉 뻣어 있는 그런 도로를 가리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단어와 그래서 뒤에 나오는 한 글자씩 틀리는 거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거는 같은 단어에서 나온, 같은 어근에서 나온 단어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 '셀라'라고 하는 단어는 '높여서 부르라' 그런 정도의 의미예요.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에는 이거를 안 읽는 것이 통례입니다. 그래서 빼놓고 읽는 거죠. 표제에 보면 고라 자손의 시 그리고 '영장으로 알라못에 맞춘 노래' 그러고 나와요. ‘영장’이라고 하는 것은 당시로 말하자면 성가대 지휘자 정도로 되는 사람이예요. '알라못'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은 이게 뭔지 잘 몰라요. 그런데 그 당시에 사람들 속에서 널리 불리던 하나의 곡조예요. 그래서 우리로 말하자면 옛날 찬송가에 그렇게 되어 있잖아요. 가사가 쭉 써 있고,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에 맞추어서 부를 것.' 그러면은 가사를 가지고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에' 맞추어서 부르고 그렇게 기도원에서 쓰고 그러잖아요. 이게 바로 그런 거에요. 알라못이라고 하는 당시에 사람들이 다 잘아는 곡조가 있었는데 그 곡조에 맞추어서 이 노래를 부르라 그런 뜻이거든요. 어쨎든 그렇게 하면서 시인은 하나님이 피난처이시며 환난중에 만날 도움이시라는 것을 노래해요. 이거는 하나의 전쟁의 문맥에서 쓰인 것이거든요. 여기 '도움'이라는 말 자체가 전쟁에서 지고 있을 때에 지평선에 모래 바람을 날리면 달려오는 응원군을 의미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굳이 인생에 있어서 특별한 고난을 당하는 때가 아닐지라도 인생은 끊임없는 시련이고 싸움이예요. 그래서 그 싸움이 때로는 우리의 힘으로 충분할 때가 있지만 대부분의 많은 시기에 우리 자신만의 힘으로는 이 싸움과 같은 인생의 전쟁터에서 능히 이기며 살아갈 때가 많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의지하여야 하지만 그러나 그 의지할수 있는 대상을 올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운명에 굴복하고 혹은 그 운명의 힘에 믿어보려고 하고 이렇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예요. 하나님의 자녀의 가장 큰 행복은 이렇게 피난처이시고 힘이 되시는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고 그 하나님이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시련과 이 많은 환난보다 훨씬 더 큰 그런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다라고 하는 것을 믿고 의지하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행복이예요. 시련과 환난이 아주 크고 고난이 많지만 그러나 내가 의지하는 그 하나님이 내가 당하고 있는 환난과 시련보다도 훨씬 더 큰 능력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라는 사실을 믿고 의지하면서 살아하는 것이예요. 그것이 신앙이예요. 시인은 오늘 환난과 시련속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도움이 되시고 또 피난처가 되신다는 사실을 고백을 하면서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있는 특별한 친교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있는 가족관계와 같은 그러한 언약의 관계 이것을 강조해요. 즉 하나님이 환난과 시련에 처한 자신을 도우셔야 하고 자기는 그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라고 하는 신앙이 있는거죠. 처음부터 그런 신앙이 생겼을리는 없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그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조금씩 그 신앙이 자라가는 거죠. 그래서 작은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의지해서 그 은혜와 도움을 입은 사람은 더 큰 일에 있어서 그분을 의지할수 있고 또 더 큰 면에 있어서 그분을 의지할수 있고 이렇게 하면서 환난과 시련을 이기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그러한 애뜻한 신앙을 갖게 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저도 직접 보지 않고 얘기를 들었는데, 미국에서 있었던 일인데 아주 오래 전에 이쪽과 저쪽에 협곡과 같은 길이 연결된 곳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쪽과 저쪽에 다리 같은 것을 연결을 해야 하는데 지금이야 뭐 비행수단도 있고 워낙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에 그까짓거 뭐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아주 옛날에야 그런 상황에서 양쪽 사이에 적당하게 길을 건널수 없고 돌아갈수 있는 도로도 없고 다리도 없는 상황에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다리를 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겠죠. 그런데도 아주 훌륭하게 그 천길만길 되는 낭떠러지를 극복하고 다리를 놓았어요. 어떻게 했느냐 그랬더니 이제 대답이 재미있어요. 제일 처음에 옮길 수가 없으니까 사람만 간신히 건너편으로 가고 그 다음에 여러가지 험난한 길 때문에 건축 자재를 싫어 나를수 없으니까 사람들이 그리로 건너가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화살을 쏘았대요. 그래서 화살을 쏘아서 화살은 건너갈거 아니예요. 쏠때에 뒤에 가느다란 줄을 매달아서 화살을 쏘았대요. 그래서 건너편에서 땅에 떨어진 화살을 잡아 당기는 거죠. 가느다란 줄이 따라오고 그 다음에 뒤에 좀더 굻은 줄을 그 뒤에 좀더 굵은 줄을 해서 양쪽 사이에 밧줄을 놓고 그 밧줄에 다시 따라 올수 있는 작은 도구들을 밧줄에 달아서 보내고 그래서 양쪽에 그것을 도르래처럼 묶어서 이쪽에 있는 자재들을 싫어 나르고 이렇게 하면서 결국은 밧줄을 이용을 해서 물건들을 나르고 그래서 이쪽과 저쪽에서 공사를 해서 다리를 놓았다 그런 이야기예요. 맨 처음에 어느 한 순간에 큰 믿음이 생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많은 경우 하나님이 자기를 시련 가운데서 도우시는 것을 조금씩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생기게 되고 하나님이 자신을 특별히 사랑하신다는 믿음을 갖게 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깊어져가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면서 사는 그 의존의 삶 안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수 있음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의존하며 살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때로는 우리의 힘으로는 감당할수 없는 시련과 환난을 우리에게 주시기도 해요. 그런 시련과 환난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게 되고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큰 도움을 경험하게 될때 더 큰 일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거에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날마다 믿음으로 붙드시면서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게 하시는 방법이예요.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결코 이 세상에서 안일하고 평탄하게만 살아가게 내버려 두시지 않으세요. 그래서 매 순간 주님을 의지하지 않을수 없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것이죠. 그래서 마음이 올곧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굳이 시련과 환난속에서 그들을 흔들어 놓으실 필요가 현저히 적어요. 왜냐하면 바깥에 환난과 시련이 없어도 마음 안에서 끊임없이 투쟁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환난을 흔들어 놓이시는 대부분의 이유는 흔들리지 않는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시기 위해서 흔드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마음이 올곧고 온전하여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은 시련과 환난속에서도 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붙드시는 것이죠. 산이 흔들린다는 말이 두번이나 나오는데, '산이 흔들려 바다가운데 빠지든지, 산이 요동할 지라도'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산을 옮기는거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예요. 그런 요동하지 않는 산이 흔들리고 무너지고 한다는 표현은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할수 없는 큰 격변하는 시련이 자기의 인생중에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그래도 두려워하지 않을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하나남이 기뻐하시고,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시인을 하나님이 전적으로 흔들어 놓아서 그래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게끔 만들어주시는, 이런것이 바로 신앙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