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오르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즐거이 부르는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 가시도다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우리 왕을 차양하라 하나님은 오 땅에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양할지어다"(시 47:5-7).
여기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전형적인 찬양을 보여줍니다. 그 하나님이 올라가신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즐거이 찬송을 부르는 중에 올라가시고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는데, 올라가신다는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다는 것보다도, 그런 개념도 포함하겠지만, 왕이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용상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왕의 의자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왕이 생활을 하면서 우리와 똑같이 먹과 마시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이렇게 생활하면서도 나라를 다스리지만, 왕이 만주백관을 거느리고 용상에 오르는 것은 정식적으로 나라를 통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개 그런 어명을 후원을 거닐고 밥을 먹다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국상을 논의할 때 용상에 올라 만주백관이 배알한 가운데 거기에서 어명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왕에게서 볼 수 있는 나라를 통치하시는 위엄을 하나님에게 대입해서 그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것 자체가 이렇게 모든 나라에 백성들을 통치하기 위해서 보좌에 오르는 임금처럼 묘사를 한 것입니다. 그것이 언제 일어나는가 하면 이스라엘이 즐거이 찬양을 부르는 가운데 주님이 오르시고 나팔 소리가 나는 가운데 주께서 오르시는 것입니다. 언약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한 전심의 경배가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이 위엄과 온 나라를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위엄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많이 느낀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께 많이 순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느끼되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순종에는 주님에 대한 경험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성품에 한 부분에 대한 빗나간 느낌이 우리로 하여금 절대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을 하게 만들지는 못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어느 순간에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사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중대하게 경고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이 두려우신 분이시라는 것을 아주 뼈져리게 느끼게 됩니다. 그런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순종하지는 않습니다. 온전한 순종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의 느낌에서 나온다기보다는 거기에서 시작될지는 모르지만 완성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깊은 공경의 마음. 그래서 그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인간과는 질적으로 다르신 무한히 높으신 하나님이시다라는 경배의 마음. 그 온 마음으로 드리는 경배의 마음 안에서 인간은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을 드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경배를 드리기 때문에, 오늘 성경에서 하나님이 즐거이 부르시는 중에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십니다. 모두 이스라엘이 전심으로 드리는 찬양가운데 하나님이 올라가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찬양은 단지 가락이나 입술로 나오는 찬양이 아니라 자신의 전 존재를 하나님 앞에 고백적으로 드리는 그런 진실한 헌신 속에서 나오는 찬양이며 경배입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은 완전히 인간에 의해 영광을 받으시고 그렇게 하나님을 전심으로 찬양하는 인간의 마음에는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순종하겠노라고 하는 순종의 결단도 함께 서려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나님이 올라가시는데, 그래서 그 하나님을 뭐라고 고백했는가 하면 온 땅에 왕이십니다. 사실 언약백성에게는 자기 나라만 자기 나라이지 남의 나라는 자기 나라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어느 한 나라나 지역의 신이 아니라 온 땅과 만물을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생각이 언약 백성들 속에 아주 강력합니다. 다만 하나님이 자기들과는 매우 특별한 관계를 맺으시고 사랑을 보이시며 자기 안에서 이미 주신약속을 따라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와 은총, 그 사랑은 자신들에게 부어져서 흘러넘치고 그래서 결국 하나님이 이 모든 세계의 창조자이신 것을 이방의 모든 민족들에게도 드러내는. 그래서 성경에 보면 언약 백성들만이 아닌 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사야서나 예레미야, 에스겔서 같은 곳에 풍부하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실재로 선지자들이 그 곳에 가서 예언을 하기도 합니다. 요나 같은 사람이죠. 이런 것을 보더라도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온 땅의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자기들만이 아니라 모든 온 세상을 질서 있게 통치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지혜의 시로 찬양할지어다 하고 노래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입니다. 하나는 노래를 부르고 찬양하는 당사자들에게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뛰어나고 탁월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제대로 찬양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로 알고 그런 하나님의 위엄과 자비, 그 영광을 제대로 노래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를 찬양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하나님을 제대로 찬송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지혜의 시입니다.
또 하나의 의미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시는 우리를 지혜롭게 합니다. 성경에 보면 시편의 표제어 가운데 '마스킬'이라는 제목이 붙은 시가 있습니다. '샤칼'이라는 히브리단어에서 나온 말인데, 직역을 하자면 '지혜롭게 하는 시'라는 듯입니다. 어떤 시는 계속 읽으면 분명히 하나님을 향한 찬양인데 그 찬양을 읽으므로 하나님이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으시는지 그래서 하나님이 누구시고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지혜의 빛을 주셔서 분수를 모르던 인간에게 분수를 알게 하시고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던 인간에게 그것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이 온 땅과 자기 자신의 생명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셔서 그래서 자기로 하여금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될지를 깨닫게 하시는 효과가 있는데 그게 바로 마스킬의 효과입니다. 이런 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지혜의 시로 찬양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찬양하려면 더 많이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그분의 위대하심을 알고, 그렇게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할 때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분명하게 깨닫게 되고 자기를 알게 되어서 이 세상을 하나님이 자기를 지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신령한 지혜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신자의 삶에 있어서 찬양은 매우 중요합니다. 찬양과 예배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자세와 정신으로 살아야 될지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