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로 언약한 백성들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너의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셀라)”(시 50:4-6).
여기에 나오는 '셀라'라는 단어는 아마도 음악적인 부호일거라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셀라'가 뭔가 음계를 높여서 부르라는 뜻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셀라'라고 하는 정확한 뜻을 거의 다 잊어버렸는데,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 사닥다리를 만난 내용이 나옵니다. 거기에 쓰인 단어하고 앞에 두 글자가 같아요. 끝에 한 글자가 틀린데 그거는 아마도 동사끝에 오는 문자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사라지거나 바뀔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음을 높여부르라는 뜻이 아닐까. 거기 창세기에 나오는 '술람'이라는 단어는 사닥다리가 아니라 고속도로입니다. 그래서 왕들이 다니는 고속도로를 의미하는데 그런 큰 길이 하늘을 향해 맞닿아 있는 것처럼 이 '셀라'도 뭔가 음을 높여 부르라 그런 뜻일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거는 시편을 읽을 때에 읽지 않는 것이 관례입니다. 어쨎든 간에 형식은 그러는데 1절과 3절 사이에 아름다운 시온사이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이야기한 후에 갑자기 시에 초점이 시온을 향해서 클로즈업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시온을 향해서 클로즈업 되면서 하나님이 온 땅과 온 세계위에 당신의 영광을 펼치시는 분이심을 공표한 후에 그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자기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는 거죠. 그래서 거기에 자기의 백성들을 향해서 당신의 성품을 보여주시는데 그게 바로 '당신의 백성들을 판단하시려고' 하는 말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온 땅에 두루 비치는 하나님의 영광을 그 백성들을 통해 발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판단하시고 정결하게 하는 작업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예요. 그래서 한 사람이 주님을 믿고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그가 정말 제대로 된 신자가 되는 것이예요. 그것이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이예요. 마찬가지로 교회가 이 세상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비결은 교회가 참으로 교회답게 되는 것이예요. 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어두운 밤바다에 배들이 항구로 피하기 위해서는 수천개의 조명탄이 항구로 쏘아 올려져서 항구를 대낮처럼 밝혀야 하는 것은 아니예요. 등불 하나만 제대로 빛나고 있어도 그것을 보면서 배들은 피항할수 있는 것이거든요. 미국사람들이 즐겨쓰는 속담가운데 '현존이 가장 훌륭한 선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어떠한 상태로 이 세상에 어떻게 살아있는가 하는것 자체가 최고의 외침이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항상 당신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주고싶어하시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올바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살지 않으면 하나님이 끊임없이 은혜를 부어 주셔도 그 은혜는 그들 안에서 부패하게 되는 것이예요.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제껏까지 부지하고 살아가는 이 육신의 생명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래서 남아있는 우리의 모든 물질과 심지어는 우리의 마음안에 남아있는 은혜, 사랑,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들이 맡고 있는 이 많은 직분과 사명까지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두 은혜로 주신 것들이죠.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인데 그런것들을 우리들이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참된 신앙으로 살면 하나님이 주신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이런 모든 것들 때문에 우리가 뒤로 물러서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솔로몬에게 부귀와 영화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그 부귀와 영화 때문에 솔로몬이 타락하게 된 것은 사실은 그런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주셨어도 신앙이 바르지 않기 때문이 아니예요. 웃시야를 왕으로 삼으신 것은 하나님이시지만 그가 또 교만해서 하나님을 버린 것은 하나님이 주신 그 높은 왕이라는 지위 때문이었잖아요. 이렇게 해서 결국은 그 사람의 어떠함이 가장 커다란 외침이 되는 것이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 온 땅을 이렇게 불로 삼키시고 광풍을 불러 일으켜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위엄과 존귀와 영광을 드러내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시고자 부르신 당신의 교회, 당신의 언약의 백성들을 정결케 하시는 것이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이건 하늘과 땅을 향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장면이잖아요. 이게 고대 근동지방에 전형적으로 나오는데 이거는 재판할 때에 증인으로 삼는 거예요. 근데 사람을 증인으로 삼으면 사람이 늘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거짓말을 하고 그리고 위증을 해요. 그래서 재판을 굽게 만들어요. 그러나 하늘과 땅은 그렇게 위증을 하는 법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하는 말이 명명백백한 것을 가리켜 '하늘도 알고 땅도 안다' 라고 하죠. 그런 표현이 성경에도 여러번 나와요. 그래서 하늘과 땅을 불러서 증인으로 삼으시는 거예요. 변기할 수 없는 당신의 선포를 들려주시기 전에 하나님은 하늘과 온 땅을 불러 선포하시는 거죠. '이 백성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다' 근데 이 제사로 언약했다는게 무슨 뜻이냐고 하면 두 가지 의미를 갖는데, 우선 이 제사는 말이죠, 이미 하나님이 언약을 맺은 백성들에게 계시된 것이예요. 그러니까 이 제사의 제도는 하나님이 언약을 맺으신 백성들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 제사제도는 모세를 통해서 율법이 들어오기 전에도 이미 제사가 있었다는 말이죠. 그러면은 모세를 통해서 율법이 들어온 것은 후고 제사는 이미 그 전에 있었는데 정식으로 모든 것들이 갖추어진 다음에 율법이 들어온 것은 모세를 통해서지만, 이미 그 이전에 아담과도 언약을 맺으시고 노아와도 언약을 맺으시고 아브라함과 그리고 이삭과 야곱과 이렇게 언약을 맺으시는 것들이 먼저 나와요. 그런 것들이 토대가 된 가운데 모세와의 언약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제사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이 당신과 특별한 관계, 언약을 맺은 백성들에게 당신을 섬기고 당신을 만날수 있는 수단으로 주신 그런 은혜의 제도다 이런 얘기예요. 두번째 의미는 이 제사를 통해서 실제적으로 하나님과 맺은 관계들이 구체화되어가는 거죠. 예를 들자면 속죄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죄를 용서받게 되고, 화목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자기 백성들 안에서 그 화목을 함께 구현을 하고, 또 번제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헌신을 표하고 하는 그것이 바로 제사를 주신 목적이예요. 그러니까 제사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에게 주신 것인 것과 동시에 그 언약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게 하는 아주 훌륭한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이 되었던 것이죠. 이러한 구약의 예배는 어떤 것들은 이미 성취가 되었기 때문에 신약의 예배와 연결이 안되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그 정신에 있어서는 신약의 예배의 뿌리가 되는 것이예요. 그러니까 오늘도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예배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미 하나님과 맺은 이 언약 관계가 구체화되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우리들이 예배를 통해서 제대로 은혜를 받으면 자기가 얼마나 커다란 죄인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고, 또 예배를 통해서 자기가 얼마나 비천한 인간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또 예배를 통해서 자기같은 죄인을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것인가 하는 것을 경험하고, 또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인생을 드려서 섬길만한 그러한 존귀하신 분이라고 하는 사실도 예배를 통해서 또 깨닫게 되는 것이예요. 그런 모든 것들이 바로 하나님 앞에 매우 소중한 그런 모습들이란 말이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이 뒤로 물러갈때 하나님이 항상 문제로 삼으신 것이 뭐냐하면 제사예요. 제사를 왜 그렇게 드리냐. 또 성경에 보면 '제사를 나는 안기뻐한다' 그얘기는 제사제도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혐오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릇된 방식으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 때문에 받으시는 하나님의 슬픔을 보여주는 것이예요. 그러니까 제사라고 하는것 그 자체가 원래 보다 넓은 의미의 제사인 하나님 앞에 드리는 삶에서의 예배의 핵심적 표현이예요. 그래서 넓은 의미에서 예배로써의 삶이 하나님 앞에 드려지면 그의 받으심직한 삶 때문에 좁은 의미의 예배가 빛나게 되고 좁은 의미의 예배에서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게 되면 결국은 넓은 의미에서의 예배인 삶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연속 선상에 있는 거거든요. 이스라엘은 그것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한 시대의 교회가 정말 하나님 앞에 영광을 이 모든 세상을 향해 드러낼수 있기 위해서는 교회가 하나님 자신으로 충만해야 해요.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도 기뻐하지 않는 하나님을 그 백성들이 무슨 목적으로 전파하겠으며 또 전파한들 전파받은 사람들이 교회에 왔을 때 하나님에게 싫증난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보면서 무엇을 배울수가 있겠어요? 교회가 그렇게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먼저 당신의 교회를 심판하는 거죠. 그래서 불이 삼키고 사방에 광풍이 불게되는 그 일을 하나님이 세상에 행하시기 전에 먼저 교회에 임하게 하시는 거죠. 올바르지 않게 당신을 섬기고 믿는 사람들을 혼내시고 쇄신하시고 정결케 하셔서 그들을 통해서 온 세상에 당신의 법을 선포하시는 것이예요. 그러면서 6절에서는 '하나님은 재판장이시다'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재판장이시다라고 할때 재판하시는 하나님은 제일 먼저 자기의 백성들을 먼저 재판하시는 거죠. 자기의 백성들을 먼저 깨끗하게 하신 후에 하나님이 또한 이 세상에 있는 백성들을 심판하셔서 해돋는데 부터 해 지는데까지 온 세상이 하나님의 것임을 드러내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모든 죄악이라고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당신 자신의 임재의 영광을 교회에 채우고 또 그 교회를 통해서 온 땅위에 당신의 임재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신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에 거스리고 반항하고 사는것을 그것을 죄악이라고 부르는거예요. 그래서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바라시는 그러한 삶은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과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그 안에서 기쁨을 누리며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고 공경하는 기쁨속에 참여하도록 그렇게 백성들에게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당신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본이요 도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러한 모든 사람과 그 사람에 의해 전파되는 해돋는데부터 해지는데까지 온 세상을 판단하시고 하나님이 재판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시는 것이예요. 그래서 우리의 예배속에서 하나님이 정말 아름다우신 분이시고 그리고 은혜를 충만하게 내려주시는 분이심을 우리 모든 사람들이 깨닫고 기뻐하며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이것이 진정한 삶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