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에게 들려줄 지혜
“만민들아 이를 들어라 세상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 귀천 빈부를 물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묵상하리로다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시 49:1-4).
전혀 분위기가 바뀌어서 그래서 찬송시라기 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교훈하는 그런 내용을 여기에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가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특성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잘 믿는 신앙이 이 모든 탁월한 지혜를 이 시인에게 가져다 주었다라고 하는 것이죠.
사실 여기에서 말하는 이 지혜는 단지 사물의 이치를 잘 깨닫고 파악하는 그런 그 이성적인 지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참된 행복을 위하여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지식을 가르키는 것이죠. 그래서 이러한 지혜를 이 시인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볼 때에 그들이 단순히 자기와 신앙과 종교가 틀린다는 이유에서 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하는 참된 지혜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에게 이 진리를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꽉 차 있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만민아 그 다음에 이 땅의 거민들아 부르죠. 종교와 인종을, 민족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자기가 하는 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들으라는 것이죠. 또 이 세상에는 공부를 많이 하고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도 있고, 또 가진 것 없고 배운 거 없어서 천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있죠. 그것은 바로 참 인간이 누구이고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것이죠. 물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정도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아니죠. 그렇지만 매일매일 결정하고 살아가는 모든 일이 결국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질문이죠.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라고 하는 곳에 들어오게 되잖아요. 그러면 교리를 알고 있든지 모르고 있든지 간에 행동은 하고 살아가기는 해야 되요. 맞죠? 아니 뭐 살아간다라고 하는 것이 뭐 별거 입니까? 이렇게 살아있고, 살아있는 한 자기가 식물인간처럼 살아가는 게 아니니까, 뭐 하나하나 결정을 하면서 가야될 거 아니예요? 당장 오늘 예배 끝나면 그냥 빨리 집에 가 버릴 것인가 아니면 기도를 하다가 갈 것인가라는 것부터 시작을 해서 뭐 요번 주일은 지켜야 될 것인가, 말아야 될 것인가 추석 때에는 여기서 예배를 드릴 것인가, 고향에 가서 예배를 드릴 것인가, 아니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예배를 안 드릴 것인가, 이런 것들을 수시로 결정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잖아요. 그렇죠?
그럼 한 예를 들어서 보면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 결국은 교회에 있게 되는데 그럼 여러분들은 어떤 뜻인가 간에 이 교회에서 많은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잖아요. 그거는 이미 벌써 교회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교회를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을 이미 그런 생각과 판단에 기초해서 행동하는 거예요.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그런 사람들 보고 ‘너는 교회가 뭐하는 곳이냐’ 그러고 물어보면 ‘교회란 성경의 진리에 비취어 보면 이러 이러하고 이러하고 이러하고 이러이러하며 또 이것은 이러 이러하고 이러 이러해서 이러 이러합니다’ 라고 쫙 지혜롭게 진술할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 가운데도 몇 안될 거예요. 체계적으로 교리를 배우고 그것을 익힌 사람이 아니면 그러나 그렇게 자기가 교회라고 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에 대한 체계적이고 잘 정리된 지식이 없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아무것도 생각을 안하고 있는거냐 하면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요? 그냥 아무렇게나 자기 생각나는데로 생각되어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아무렇게나 행동을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어떻게 되죠? 생각과 행동에 일관성이 없지요. 그것을 성경이 지 욕심을 따라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삶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어떤 중요한 것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기초로 나와야 하는 것이거든요. 근데 그런 것들에 대한 지식이 희미하기는 한데 살아가기는 해야되요. 그러니까 그 다음에는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올바른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순간순간 자기에게 부딪치는 느낌에 따라서 생활을 하게 되는 거죠.
마찬가지로 인생을 살면서 우리들이 이런 저런 행동을 하고 하나님 앞에 이런 저런 태도를 하면서 살아요. 그것은 모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리고 나라는 인간은 누구인가 라고 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기초로 해서 그런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거거든요. 그러면 그것을 성경을 통해서 배우고 그렇게 쉬운게 아니거든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하는 것은 쉽겠지만 우리의 삶이 그 지식에 충분히 그 속박을 받으며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더 많은 것들을 올바르게 알아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을 올바르게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 삶은 언제나 불안하고 진리에 기초한 생활이 아니라 순간순간 자기에게 다가오는 느낌을 가지고 살아가는 거예요, 대부분. 그러니까 살고 나서 보면 자기의 삶에 대해서 자기 자신도 일관성이 별로 없는 것이죠. 그럴 때에는 다른 사람을 향해서 ‘인생은 이렇게 사는 것이다’ 라는 것을 들려줄 수가 없는 것이죠. 대부분 이 세상에 있는 무엇인가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삶을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아주 일관되게 그런 삶을 계속해서 살아온 사람이 그런 삶에 대해서 들려줄 수 있는 것이죠. 그렇지 않겠어요?
이 기독교는 그렇게 생각없이 살던 삶을 돌이켜서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과 세계와 그리고 인간의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올바로 알도록 가르쳐 주는 그 인간이 그렇게 역사이래 찾고 싶어했던 그 참된 삶에 이르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유일한 종교예요. 다른 종교와 모든 사상에 혹시 타당한 이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렇게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들에게 가르쳐 준 참된 진리 중 일부를 어떻게 빌려다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사상대로 오류를 함께 섞어서 진술해 낸 것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죠.
언젠가 호텔에 있었는데 언젠지 기억이 안나는데 호텔의 서랍을 이렇게 뒤져보니까 불경이 나와요, 불경. 아마 그 호텔 주인이 대게 거기 성경이 들어있는데 성경과 불경이 같이 들어 있어요. 아마 그 사람이 불교 신자였나봐요. 펼쳐서 탁 보니까 깜짝 놀랬어요. 무슨 골로새서를 읽는 것같이 골로새서 뒤편에 가면 생활에 관한 교훈이 나오잖아요. 나오는 가운데 어떤 얘기가 나오냐면 제가 한번 여러분들에게 설교 속에서 그런 설교한 거 기억하세요? 때로는 원수가 친구보다 고맙습니다. 왜냐하면 친구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언제나 그 사랑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약점을 잘 못 봐 그리고 언제나 내 편이에요. 그런데 원수는 나에 대해서 미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의 잘못된 부분을 잘된 부분보다 더 잘봐, 그래서 자기를 혹독하게 비난하는 것이 아프기는 하고 거기에는 악한 의도가 깃들여져 있지만은 항상 그런 거는 아니지만 종종 자기가 못보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못보는 진실을 보는 경우가 있다. 그 얘기가 불경에 그대로 쓰여있는 거예요. 내가 한 이야기인데 여기 왜 써 있나.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원수는 친구보다 나을 때가 많으니라 친구만 가까이 하지 말고 원수도 가까이 두라, 왜냐하면 그가 너에게 지혜를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그런 얘기예요.
모든 진리는 원래 하나님의 것인데 그것들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 속에도 묻어있고 특히 인간의 심성속에 뭍어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가르칠 수 있을 만한 충분한 지식이 아니에요.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분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하는 것, 인간이 죄인이라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기에는 너무나 충분한 지식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핑계할 수 없게 하는 지식이에요. 그런 지식들이 흩어져 있는데 그것들을 가져다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대로 버무려서 그래서 인간 마음대로 만들어 낸 것이 이 세상의 종교와 사상이에요. 그러니까 그것은 어떻게 보면 진리들을 일부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들을 비벼낸 것들이 올바른 방식으로 비벼낸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가치가 없는 것들이에요. 그래서 그것들이 무엇이고, 그리고 어떻게 주님을 믿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을 올바로 보여주기 위해서 정리해 놓은 것이 바로 성경의 진리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얼마만큼 인생을 살고 나면 이렇게 이 땅에 있는 귀하고 천한 모든 인간들, 가난하고 부요한 모든 인간들, 피부 색깔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민족이 틀리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인간들에게 들려주지 않으면 안될 그 참된 인생의 지혜, 이것을 이 시인은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도 얼마만큼 신앙생활을 하고 나면 이런 것들이 우리의 마음에 있어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만약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것이 인생과는 상관이 없이 우리의 인생은 인생길을 가고, 가다가 너무 고달프면 한번씩 비상구를 열고 탈출해 보려는 생각을 가진 나머지 들어오는 곳이 신앙의 세계라고 하면 이것은 오히려 완전히 반대로 된 신앙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신앙을 통해서 정말 하나님께서 이루고 싶어하시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참된 창조의 목적대로 적합한 인간이 되고 그 창조의 목적에 이바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이런 신앙을 우리에게 주신 궁극적인 목적이에요. 요약을 하면 참된 신앙은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에요. 그리고 그런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해서 그리스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자력으로는 그렇게 될 수 없는 인간을 그리스도의 은혜로 힘입어 그런 인간이 되게 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우리들이 중간적인 목표를 갖는 것이죠. 이게 뭐냐하면 참된 신자가 되는 것이에요. 참된 신자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 만드시려고 했던 참된 인간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그런 온 맘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그렇게 신앙으로 살아가는 생활이 될 때 그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런 아름다운 신앙생활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삶 전체에 걸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지식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인간이 누구인지, 하나님 앞에 누구인가 아는 지식이 모든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지식의 기반이 되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되는 것이죠. 그리고 전심전력하여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섬기며 살아가는 그것이 내 인생의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살아갈 때 그때 우리의 삶의 견고함과 지혜가 더해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그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그런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에요.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삶과 믿음의 지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