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 날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시 86:7)
본문해설
이어서, 5절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회상한 시인이, 6절과 7절에서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 호소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하는 소리를 들어주옵소서.”라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안 계신 곳이 없으신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신다는 표현은 전부 다 우스운 표현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우리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하나님을 묘사함으로써 우리를 신앙적으로 격려하고 도덕적으로 훈계하십니다. 귀를 기울인다는 이야기는 정신과 마음을 모아 어디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파악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바로 귀를 기울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내용은 자신이 매우 특별한 어려움에 처해있고 하나님께서 집중하셔서 자신의 처지에 주목하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원하는 탄원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
시인은 “여호와여”라고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것 같지만,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있는 언약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러한 언약을 하나님 앞에 기억하면서 자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간구하는 소리를 들어달라고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하나님 앞에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 간구하고 간절히 부르짖는 장면을 보시기 바랍니다. 시인이 이렇게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신앙의 유익은 어려움을 당했을 때 혹은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알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는 데 있습니다. 만약에 시련과 환란을 당했는데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호소할 수 없다면 그것은 매우 불행한 신앙생활이 됩니다. 시인도 우리와 똑같이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 앞에 여러 가지 삶의 사태들을 만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삶의 사태들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시인이 가지고 있는 깊은 신앙심 때문이었습니다. 그 신앙심이 환란 날에 누구를 붙들고 누구에서 기도하고 누구에게 매달려야 하는지를 깊이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시련을 만나거나 고난을 당해서 하나님께 호소하고 간구해야 할 시간에 사람에게 호소하고 사람에게 매달리면 매우 추해지고, 그렇게 하는 동안 온전하게 하나님을 향하지 못하는 마음이 됩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모으고 간절히 호소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시련과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행복이 있게 마련입니다.
환란의 때에
그러면서 시인이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 세상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 자체가 시련이 아닌 것이 없지만, 특별하게 고통스러운 날들이 계속되어서 환란이라고 부르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지금 하나님 앞에 “내가 지금 환란을 당하고 있습니다.”라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들이 에워싸고, 악한 자들이 시인의 목숨을 노리며 고통을 주는 상황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인생의 시점이든지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 없이 살 수 있는 때는 결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에 확실하게 “여기는 내 인생의 한계다. 그리고 지금 나는 특별한 환난에 처했다.”라고 생각되는 때가 있습니다. 환란이라는 것은 삶의 질서들이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급격하게 움직여서 나와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되는 시간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환란의 날을 세상의 불신자들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신자들에게도 환란의 날을 주십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때로는 불순종하고 악을 행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환란을 주셔서 그들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시는 때도 있지만, 하나님 앞에 비교적 순종하고 그분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환란과 시련은 찾아옵니다. 그 이유는 당신의 백성들을 더욱 순전하게 하시고 온전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시련도 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운동선수와 비슷합니다. 올림픽을 보면, 개막식에서 선수들이 말끔하게 옷을 입고 손을 흔들면서 입장할 때는 누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한번 경기를 해보고 나면 4년 동안 저 선수가 얼마나 치열하게 몸부림을 쳤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경기하는 과정을 통해 모두 드러나게 됩니다. 훌륭한 기량을 가지고 잘하는 선수들을 위해서 특별한 훈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훈련이 그들을 최고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께 순종하고 믿음으로 잘 사는 성도들에게 항상 행복하고 기쁜 일만 있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우리가 옳은 것 같고 훌륭한 것 같아도 하나님은 더 높은 뜻을 가지고 우리를 더 순전하고 온전하게 하시기 위해 때로는 시련과 환란을 주십니다. 이런 시련과 환란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정결하게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더 간절히 매달리는 마음과 하나님을 향한 정신의 집중, 영혼의 집중을 통해 하나님 앞에 우리 삶의 동기와 모든 것들을 정화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고난당한 것이 내게는 유익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님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을 하게끔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 1: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해석
그러면서 시인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여기에서 ‘응답’이라는 이야기는 크게 2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는 자기가 직면하고 있는 사태에 대한 해석입니다. 시인은 악하고 교만한 사람들이 자기를 에워싸고 목숨을 노리고자하는 격렬한 시련의 때를 지납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때로는 자신의 죄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님 앞에 용서와 자비를 빌면서 자신이 하나님께 헤세드의 은혜를 입은 성도라는 사실을 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내가 사는 것이 나의 의로움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사실을 시련 속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련과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시련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하나님 앞에 정확히 깨닫는다면, 시인은 그 깨달음이 무엇이든지 복종할 각오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련을 통해 너를 연단해 정결한 사람으로 만들겠다.”라고 하시면 연단 없이 불결한 사람으로 남는 것보다 연단을 감당하면서라도 정결해지기를 사모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시편의 여러 곳에서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고통을 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에워싸면서 고통의 원인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시인을 찌르기 때문입니다. “네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너를 버렸기 때문이다. 네가 이런 환란을 당하는 것은 너의 이러이러한 죄 때문이다.”라고 정죄 할 때 고통이 마음에 가중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응답’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시련이 가득한 사태에 대한 하나님의 해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닥쳐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나면 깨달음이 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의 영혼에 자유함이 있습니다. ‘아, 이런 일들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시련을 주시는구나.’ 그리고 간절히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든지 그렇게 바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 2: 고난에서 건져주심
두 번째는 시련이 가득한 일련의 사태로부터 이 시인을 건져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응답입니다. 그래서 응답은 언제나 구원하시는 하나님, 자기의 백성을 고통가운데서 건지시는 하나님의 구원하는 행동으로 시작됩니다. 시인은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시련 속에서 나를 건져주셔서 고통스러운 질서들을 바로 잡아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진정한 소망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삶이 시련과 역경으로 얼룩질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을 향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부를 때 우리의 마음은 시련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마음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그 시련을 통해 기도함으로 마음으로부터 멀어졌던 하나님께로 돌아와 다시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우리를 고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시련을 당하든지 주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안에서 새로워지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빕니다.
시편86편 강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