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판단하소서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판단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시 54:1-2).
이 54편도 다윗의 시입니다. 특별히 사울에게 쫓겨 다니던 때에 지은 시라고 여겨집니다. 이 시에서 이제 다윗은 다윗에게 독특한 신앙 고난 받을 때에 하나님께 피한 신앙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다윗이 시편 54편 1절에서 ‘나를 판단하소서’ 2절에서는 ‘귀를 기울이소서’ 여기서, 판단하소서라고 하는 이런 구절들이 다윗의 시편에서 후렴구처럼 아주 자주 등장하게 됩니다.
이것이 무엇을 가리키냐 하면 다윗이 가지고 있는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 주권사상과 연결이 됩니다. 무슨 뜻이냐면, 하나님이 이 모든 세계와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자이시다 라고 하는 신앙의 고백이다. 그래서 인간사에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그리고 우연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고 또 그렇게 우연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미치지만은 그러나 그것이 결국은 인간들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것이다 라는 사상이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선한일과 악한일의 모든 것을 사용해서 결국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섭리 속에서 이루어가시지만 그 일어나는 각자의 사건 하나하나는 모두 하나님께서 선악 간에 판단하시고 거기에 대해서 평가를 내리신다는 것이지요. 그게 하나님의 주권사상 이예요. 또 하나, 이 사람이 보여주고 있는 생각은 그러한 주권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께 피한다는 그러한 신앙사상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그런 판단을 내리시는 하나님께로 피하는 거죠, 도망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떤 판을 내릴 때, 그런 판단을 내리시는 주님께로 피하는 것, 그것이 다윗이 생각하는 신앙생활이죠.
그러니까 자신을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죠, 다윗이 한 번도 왕이 되겠다는 마음을 품거나 혹은 하나님께 그것을 간청한 적이 없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선택하셔서 이 사람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으셨는데, 그것 때문에 사울에게 그렇게 지독한 미움을 받으면서 그러면서 핍박의 멀고먼 길을 걸어가야 되었던 거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 다윗이 하나님께 나를 판단해 달라고 호소하는 거죠.
이것은 비록 그가 완전한 사람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서 살고자 하는 그러한 주광사상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기대죠. 판단이라는 이 말은 법정적인 용어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시험해서 판단하는 거죠, 이러한 판단을 하나님께서 개인에게도 행하시기도 하시고 나라에게도 행하시는 거죠, 특히 이스라엘에게 그렇게 행하시는 거죠 이스라엘 나라에 이 일을 행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러한 판단을 통해서 심판을 내리시는 거죠. 그러면 전쟁도 일어나고 기근도 들고 해서 큰 환란을 만나게 되요. 그러니까 이 판단은 무조건 자신에게 유리할 수만은 없죠. 유리하게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비록 완전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신앙이 있어야지만 그게 가능한 거죠.
다윗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어디에서도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그러나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고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오류와 잘못이 있어도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주님의 은총을 바라는 마음이 하나님께 기울여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나를 판단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판단이 다윗에게는 곧 구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완전하지 않아도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주님께 매달리기 때문에 악인에게는 긍휼이 없는 심판이 있을지라도 자신이 하나님의 그 저울에 달아보아서 판단 받을 때에 모자라는 것이 있을지라도 주님의 언약백성인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2절에서는 기도를 들어달라는 간구를 하나님께 올리고 있습니다. 1절의 내용이 하나님 앞에 자신이 판단받길 원하는 마음이었다면, 2절에 내용은 귀를 기울여달라는 탄원의 내용이었습니다. 자~이것은 뭐죠? 하나님이 무엇을 판단하실 때 그릇판단하시거나 잘못판단하실리는 없죠. 그러면 하나님이 공정하게 판단을 하신다면 그러면, 다윗을 괴롭히던 모든 사람은 완전히 악한 사람들로,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 앞에 완벽하게 선한사람으로 그렇게 구별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될 수 없죠.
그러니까 여기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거죠. 한편으로는 이러한 하나님의 판단에서 모자라고 부족한 자신을 변화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호소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러한 판단이 속히 임하여 자기를 이 악인으로부터 건져주시길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심판은 이중적 측면을 가지고 있는 거죠.
만약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이 올바르게 살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한다면 그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에게는 핍박받고 고난 받는 환경 속에서 구원의 날이 되겠죠. 만약에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날이 그야말로 심판의 날이 되겠죠. 그러니까 구약에 나오는 여호와의 날이라고 불리우는 이 심판의 날이 악인에게는 두려워하는 날이고 의로운 백성들에게는 기다려지게 되는 날이 되는거죠. 그날이 바로 주님께 큰 위로와 상급을 받는 날이 되기 때문이죠.
그렇게 본다면 이제 오늘 이 시편에서 시인이 ‘나의 말에 내 입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 기도를 들으소서.’ 하는 이 탄원은 단순히 기도를 들어달라는 말일뿐 아니라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관계를 기초로 모든 것을 판단함에 있어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호소인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지만 그 올바르게 사는 그 자체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에 호소하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다윗은 인생 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그런 역경의 때를 하나님 앞에 이기는 비결을 터득하게 된 거죠. 이런 신앙의 원리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계속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내편이시라 여호와가 나와 함께 하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오.” 이렇게 기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주님이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삶에 있어서 중심이 되셔야 해요. 비록 우리가 완전하게 살지는 못할지라도 마음 중심이 주님께 곧게 고정되어 있어서 그래서 우리들이 부족할 때에는 그 주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면 주의 도움을 구하는 그런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지켜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저희들이 이렇게 주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고 바랄 수 있도록 하나님이 힘을 주시옵소서. 우리들은 부족하나 주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게 하시고 우리들은 연약하나 주님을 전심으로 믿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앞에 우리가 항상 오를 수 없으니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면서 또한 주님께 긍휼과 자비를 호소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온전히 주님만을 바라고 의지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힘을 주시고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