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이름에 바치는 감사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 (시 54:6)
녹취자 : 오희정
여기에서 이제 시인이 시에 결론부분으로 내려가면서 원수들에게 고통을 받고 괴로움을 겪다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루시는 그 방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자신이 선하시고 또 성실하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거슬러 악을 행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멸하실 것이라고 하는 확신과 그리고 또 기대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에 제사를,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신앙의 세계에 어떤 신비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도생활을 하다가 보면은 이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습니다. 근데 실제는 문제가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 겁니다. 그런데도 놀랍게 이미 그 일이 이루어진 것처럼 기쁘고 마음에 평안이 오는 겁니다. 그렇죠? 그래서 감사하게 됩니다. 근데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는 감사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문제는 문제대로 그대로 남아있고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 겁니다. 그런 경우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궁금한 게 있게 됩니다. 미래에 이러한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응답이 주어진다, 이것도 우리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응답이 주어질 때에 그때에 주님 앞에 감사하게 된다는 것도 우리들이 이해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건 뭐냐 하면, 그렇게 모든 문제가 그대로 남아있는데도 마음에 밀려오는 그 놀라운 평강과 은혜, 이런 것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라고 하는 겁니다. 이것에 대한 대답은 물론 주님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에 보면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에 평강이, 그 평강이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 것이다’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지 만은 그러나 어쨌든 그 응답이 있는 순간에 요동치고 분요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아주 놀라운 평강이 우리에 심령에 젖어 들게 되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릴 때, 주님이 응답하시면, 그러면 미래에 일어날 일인데도 오늘 우리에게 평강을 주는 겁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 면은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비록 내가 원하는 상황과는 전혀 다르지만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고 했으니 이제 주님에 손에 이끌려서 나는 거기에 도달하리라’고 하는 미래의 일들에 대한 확신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이렇게 삶의 환경에 따라서 요동 치지 않는 평안함과 안식이 있습니다. 그게 바깥에서는 없습니다. 그때에 비록 그 일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 만은 이루진 것과 꼭 같은 그런 기쁨이 나에 마음과 삶 속에 밀려들게 되는 겁니다.
그때 큰 감동이 임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굽이굽이 많은 인생사가 시인에게 있었지 만은 그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커다란 행복을 주었던 겁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 이 시인이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라 주에 이름에 감사하겠습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에 이러한 응답에 대한 확신 속에서 나오는 감사입니다. 여기서 낙헌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제입니다. 그러니까 죄를 씻기 위한 속죄제, 그 담에 화목제, 이런 많은 제사들이 있는데 그러니까 제사는 제사의 형태에 따라서 나눌 때는 뭐 번제, 관제, 요제, 거제 뭐 이런 식으로 나누지만 그러나 이제 제사의 목적을 따라 나눌 때 에는 속죄제, 감사제, 화목제 뭐 이런 식으로 나눕니다.
낙헌제는 이 감사제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거는 꼭 드려야 되는 제사가 아니라 안 드려도 되는데 감사하는 사람이 이 제사를 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시인이 이러한 원수들로 인해서 많이 고통을 받는 가운데서도 이 낙헌제를 주께 드려서 주님께 제사할 것입니다라는 의미는 현재적인 기쁨과 감사가 원수들에게 억압을 당하면서도 이 마음속에 확 일어나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시고 그리고, 그래서 원수들은 빈들에 마른 풀처럼 시들어 갈 것이고, 나는 하나님의 집에 감람나무처럼 번성하리라는 확신, 그리고 기대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이 고백하는 바가 ‘내가 이렇게 주님께 제사하고 감사할 텐데, 주에 이름이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고백합니다. ‘주님에 이름이 선하시니 이다’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선하시죠. 그러나 자기를 스스로 주인삼고, 자기 욕망을 따라서 살면, 하나님에 선하심에 부합하도록 자기가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그거를 직접적으로 원하지는 않아도, 자기를 중심에 놓고 살면, 결국은 하나님에 원수처럼 행동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하나님에 참다운 도우심과 은혜가 없습니다. 멀리 불을 켜 두면 환한 등불이지만 거기에 손가락을 내밀면, 불에 데이듯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과 꼭 같은 마음을 품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시는 질서를 따라 살면, 하나님에 사랑이 충만하게 느껴져서, 하나님이 언제나 선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이 사람처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결론을 내리기를 이 사람은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근데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은 선한 일은 아닙니다. 악인에게 고통을 당하고, 원수에게 핍박을 당하는 고통스런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결국은 ‘누구도 하나님의 그 선하심을 이길 자가 없습니다’ 고백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