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자의 탄식
“인자들아 너희가 당연히 공의를 말하겠거늘 어찌 잠잠 하느뇨. 너희가 정직히 판단하느뇨. 오히려 너희가 중심에 악을 행하며 땅에서 너희 손의 강포를 달아 주는 도다”(시 58:1-2).
Ⅰ. 하나님의 공의
언제 이 시를 썼는지는 쉽게 판단하기가 어렵겠지요. 그렇지만 다윗의 시라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시편58편 전체가 사회 속에서 굽어있는 하나님의 공의, 그로 말미암아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영광의 실추, 이런 것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시인이 바로 그런 속에서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시편 58편에 보면 ‘인자들아 너희가 공의를 말하겠거늘 어찌 잠잠 하느뇨.’ 하면서 등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서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언약 백성들을 향해서 하는 말이에요.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의를 행하며 살아야 될 의무가 있지만 그러나 특별히 언약 백성들은 그렇게 살아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간섭하심에 있어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대충 살아도 편안했는데 하나님을 알고 말씀의 법을 깨닫고 나면 그대로 살지 않을 때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언약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의무가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려보내는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언약 백성들이 공의를 져버린 삶을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공의는 올바르지 않게 되어가는 언약 백성들 안에서 누군가 그 삶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강력히 탄핵하고 믿음으로 살아야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외칠 때에 그 때에 비로소 공의가 서는 것이에요. 그런 사람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모두가 올바르게 살지 않는 일에 있어서 이익을 얻고 있다고 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예언자적인 기능이에요. 그것을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이죠. 정확하게 바로 그 뒤에 이렇게 망가진 언약 백성들의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외치지 못하는 이유가 나와요. ‘오히려 너희가 중심에 악을 행하며 강포를 달아주는구나.’ 이것은 뭐냐 하면 시장이나 거리에서 물건을 사고 팔 때의 모습이에요. 그래서 물건을 달고 그 저울에 단 물건을 가지고 서로 흥정하면서 돈을 주고 물건을 건네는 광경이잖아요.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상거래가 그 사회에서 일반화 되어 있는 것처럼 이렇게 공의가 무너진 속에서 사람들이 강포하게 힘이 있는 사람들이 법이 되어서 약한 자들을 꺾고 이익을 취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조금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죠.
Ⅱ. 언약 백성들의 삶
대개 이 강포와 포학은 이익의 문제를 가지고 일어나는 것이죠. 언약 백성들의 삶의 특징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거기에 자신이 복종함으로써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수많은 이익의 문제가 서로 얽혀있을 때조차도 그 때 조차도 오히려 자기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자신을 꺾고 그 이익을 배제한 가운데 언약 백성으로서의 삶의 본분으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그게 바로 언약 백성들의 삶이고 그런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건지시고 많은 시련과 환란 속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이끄셨던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도하시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백성들의 당연히 살아야할 삶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언약 백성들의 삶을 보면서 그들의 선포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자신들의 처지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복을 느끼게 하시기 위함이에요. 그것이 바로 언약 밖에 있는 사람들을 시기 나게 하는 방법이었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말로만 하나님을 말할 뿐 아니라 삶으로 하나님을 보여주는 백성들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죠.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언약 백성이 아닌 사람들은 누릴 수 없는 많은 언약적 축복을 주시는 것이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아무리 많은 죄를 짓더라도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죠. 또 하나님의 뜻을 알아도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과 힘을 하나님이 끊임없이 공급해주셔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 살게 만들어주시는 것이죠. 이것이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들에게 주신 은혜였습니다. 이러한 모든 은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에게 필요한 물질적인 것과 지상의 자원들을 공급해 주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러한 모든 하나님께로부터 섭리 속에서 받는 모든 축복들을 하나님과의 언약의 매우 특별한 시행으로 보고 거기에서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이 얼마나 큰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었어요. 그러나 이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고 경건이 사라져가게 되면 하나님이 일반섭리에서 복을 많이 베풀어 주실수록 오히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하나님의 계획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반응이 나온다는 말이죠. 마치 부모를 사랑하는 효성스러운 자식들은 부모가 무엇을 해주면 그것을 통해서 부모의 마음을 함께 느끼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불효한 자식들은 부모가 무엇을 해주면 부모로부터 받는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언약 백성들도 그렇게 된다는 것이죠.
Ⅲ. 경건한 자의 삶
그래서 경건의 가장 큰 대의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경건을 가지고 사는 것이에요.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올바른 대의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올바르고 그리고 의에 넘치는 삶을 살아주기를 원하시는 것이죠. 그 일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언약 안에 있지 않은 사람들이 전혀 알 수 없는 이러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원천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승리,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혜, 사랑, 용서, 이런 모든 영적인 자원들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세상에서 섬길 최고의 섬김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충만한 가운데 우리들이 우리의 마음의 성향을 따라서 사는 그 삶이 하나님 앞에 공의로운 삶이 되고 자비로운 삶이 될 때 그 사람 자신은 하나님을 섬기는지 몰라도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섬김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