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박 받는 자의 소망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니 저의 힘을 인하여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시 59:9).
Ⅰ. 산성
여기에서 시인이 원수들에게 에워싸여서 박해를 받고 고난을 많이 당할 때 그것을 대응하던 방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성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로 크게 재성과 나성이 잇습니다. 이 재성과 나성이라는 것은 성을 축조하는 목적과 관계된 것이에요. 그래서 어느 지역전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쌓은 성이에요. 이런 성은 도시나 어느 지역 그리고 국경 이런 것들을 막기 위해 쌓은 성이죠. 그러나 또 다른 종류의 성이 있는데 그것은 뭐냐 하면 왕궁이나 아니면 전쟁을 하기 위한 장소를 보호하기 위해서 쌓은 성이에요. 이 산성은 바로 그런 전투를 위해서 쌓은 성이란 말이죠. 그래서 항상 나라를 꾸려갈 때에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그리고 국민의 생명과 나라의 주권을 보존할 방책을 세우게 될 때에 이러한 성의 축조 계획들이 나오게 됩니다.
시인은 전문적인 군인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마도 이런 산성에서 외적을 물리쳐본 경험도 있을 것이고 또 이러한 산성에서 강력하게 저항하는 적군을 섬멸하기 위해서 공격해본 경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산성에서의 싸움은 굉장히 어려운 싸움이지요. 이러한 성을 쌓을 때 단순히 성을 쌓는 것이 아니라 천연적으로 공격하기 어려운 그러한 지형을 택해서 성을 만드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노회에서 수양회를 갔는데 압록강을 바라보며 북한을 위해서도 기도했는데 마침 고구려시대 때의 옛 영토에 가보고 고구려가 어떻게 그렇게 큰 나라를 상대로 그렇게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을 보면서 참 깜짝 놀랐습니다. 산성이 하나 있는데 우선 고구려가 앞에 큰 산이 있어서 다른 외적이 쳐들어오기가 어렵고 만약에 그렇게 해서 성이 함락되면 이 사람들이 도망갈 수 있는 성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성이 참 신기한 게 아주 가파른 길을 걸어서 올라가면 꼭 봉우리 위에다가 쟁반을 논 것과 같은 그런 지형지물이 있어요. 그래서 많이 들어가면 거기에 오만 명이 들어갈 수 있대요. 그런데 거기는 사면으로 전부 다 깎아지른 벽이고 올라가는 길이 유일하게 한 통로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신기하게 그 산꼭대기에 샘물이 있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것을 먹고 버티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제 전쟁이 나서 불리해지면 마지막에 거기를 올라가는 것이에요. 먹을 것을 모두 갖다 쌓아놓고 그 다음에 올라가는 것이죠. 조금만 버티면 겨울이 와요. 그런데 거기의 겨울은 혹독하게 춥거든요. 그러니까 쌀이나 이런 것들을 전부 다 먹을 것들을 불사르고 그리고 그 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이죠. 그러면 그 먼 길을 온 병사들이 보급을 받으면서 그 겨울을 나야되는데 거의 불가능한 일이랍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모두 스스로 물러가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다시 내려오는 것이에요. 이렇게 하면서 나라의 역사가 지켜지는 것이에요.
Ⅱ. 시인이 말하는 산성의 개념
시인이 하나님을 나의 산성이시라고 불렀을 때 그것은 바로 이러한 개념을 보여주는 것이죠. 하나님이 자기의 산성이시라는 것은 최소한 다음 세 가지 이상의 개념들을 보여주는 것이죠.
1. 환란 중에 피할 수 있는 하나님
우선 첫째는 뭐냐 하면 환란 중에 피할만한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러니 이 산성은 마지막의 피난처에요. 우리도 우리의 인생을 살면서 우리의 힘으로 삽니다. 그게 우리의 일상생활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인생의 진정한 마지막 힘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때로는 하나님께 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의 상황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그때에 우리는 그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할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형통할 때에는 자기가 대단한 능력이 있는 줄 알지만 그리고 얼마든지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꾸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진정으로 환란이 올 때에 그는 마지막 피할 수 있는 분이 하나님뿐이시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신앙은 환란을 당해보면 알아요. 평소에 신앙이 있는 사람인 것 같아도 신앙이 없는 사람은 마지막에 이 극한 환란이 일어날 때 하나님께로 피하지 않아요. 그러나 신앙이 비록 없는 것 같아도 환란을 당할 때에 진짜 신앙이 있는 사람은 결국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피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것이 산성이라는 말이 보여주는 첫 번째입니다.
2. 보호해주시는 하나님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여기에서는 첫 번째가 하나님께로 피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는 하나님의 보호에요. 그러니까 이 산성은 평지에서 싸우면 일대일로 물리칠 수 있는 적들도 산성에 숨어버리게 되면 그러면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열 명이나 혹은 백 명을 투입해서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되는 것이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성중의 하나가 서울 근교의 남한산성이에요. 물론 북한산성도 있습니다만 북한산성은 제가 면밀하게 관찰해보지는 않았는데 남한산성은 자주 가니까 가보면 도저히 공격할 수가 없어요. 깎아지른 듯 거의 절벽수준이고 그리고 적군이 올라오면 정확하게 눈에 띄어요. 그래서 결국은 그 구멍으로 화살을 쏘고, 뜨거운 물을 붓고, 뜨거운 기름을 끼얹고, 돌을 굴리고 하면서 결국은 적군의 침입을 이겨내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러한 산성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병사를 죽여야 하는 것이죠.
이 시인이 수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십니다.’ 라고 했을 때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난과 그리고 원수들의 끊임없는 대적과 공격 속에서 그는 하나님이 그 자신을 산성에서 보호해주시는 것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러 곳에서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요,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반석이시오, 끊임없이 그 하나님을 전쟁과 관련지어서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호가 되어주십니다. 우리의 인생의 문제가 많은 것 같아도 결국은 마지막은 그 인생의 문제가 무엇이든지 우리가 피할 곳은 주님뿐이에요.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문제가 무엇이든지 주님의 품안에서 우리의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게 되는 것이죠.
3. 하나님을 경험함
또 한 가지 이 산성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 산성은 결국은 환란 속에서 하나님께로 피하고 거기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경험하게 되는 것인데 이 과정을 통해서 이 언약백성들은 환란 속에서의 하나님과의 특별한 교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산성은 아주 작은 곳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리고 피하게 되면, 그러면 그 산성으로 피하게 되면 멀었던 사람들이 모두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환란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과 매우 가깝게 교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죠. 물론 믿음으로 하나님의 품으로 피하는 사람들만 그렇지요.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평소 같으면 우러러볼 수도 없는 왕이나 황제가 작은 산성에 백성들과 함께 피해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매우 가까이에서 그분을 뵙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환란을 당하여 산성과 같은 하나님께 피하게 될 때에 우리는 그분과의 인격적인 교제의 깊이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환란 속에서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거기에서 이 시인은 자기를 고치시는 하나님의 은혜, 자기를 시련가운데서 건져주시는 특별한 보호, 이 모든 것을 경험합니다.
Ⅲ. 핍박 받는 자의 소망
그래서 그는 노래했습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는 유익이라고 말이죠. 또 고난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고난을 당한 후에는 하나님 앞에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고 노래하지 않았습니까? 형언할 수 없는 지혜가운데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당신과의 관계 속으로 돌아와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끊임없이 다루십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도 여전히 환란과 시련을 만나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도 박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것입니다. 누구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언약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인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