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눌린 자의 기도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내 마음이 눌릴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시 61:1-2).
성경에 보면 마음이 눌린다는 표현이 종종 등장합니다. 이게 마음이 눌린다고 하는 것은 그 하나님 앞에서 영혼이 평정의 상태를 누리면서 살아가는 그런 일상적인 균형이 깨뜨려지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에요. 그래서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들이 죄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욕망에서 나오는 거잖아요. 욕망에서. 욕망에서 나오게 되는데 이 욕망이,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어느 한쪽이 욕망이 일어나면 그렇게 되면 우리의 마음에 어떤 평정들이 깨뜨려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보십시다. 사람은 누구든지 행복해 지는 것이 자기 욕망인데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그 인생이 하나님이 지정하신 방법으로 행복해지려고 하면 문제가 없는데 갑자기 돈에 대한 욕망이 확 생겨나게 되죠. 그리고 돈을 부정한 방법으로든 많이 소유해야 되겠다는 그 욕망이 커지게 되면 그것은 이미 벌써 이제 의지의 힘이 생겨나는 거죠. 이렇게 되면 영혼이, 마음이, 전체적인 것이 그 돈에 대한 욕망 쪽으로 기울어 들지 않겠어요? 이런 식으로 설명이 되면 돈이든지, 인간의 정욕이든지, 인간의 명예욕이든지, 많은 것들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설명이 되잖아요.
비유를 하자면 이런 손끝에 접시 같은 것들이 있는데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데 어느 한쪽 귀퉁이에다가 물건을 올려놓으면 기울어져서 결국 접시가 쏟아지지 않겠어요? 그렇게 균형을 잃게 될 때 거기에서 온갖 사욕들이 나오고, 그것들이 인간들의 죄를 만들게 되는 것이죠. 단순히 욕망을 줄이고 줄이면 인간이 죄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은 그건 성경적으로 볼 때 옳은 게 아니죠. 물론 이제 욕망을 억제하고 가면 그러면 어느 정도는 평형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불쑥하고 어떤 욕망을 갖게 될 때 그렇게 불쑥하고 솟아오르는 것 말고, 더 깊은 죄의 근원을 가지고 있다고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더 깊은 죄의 근원이 그게 바로 우리의 모든 사악한 욕망의 뿌리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무리 욕망을 제거해서 마음의 평정을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현상이 제거되는 것이지 실제로 뿌리 자체가 제거 됐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조금만 더 이야기 하자면 그러면 우리의 욕망가운데 죄를 구성하게 하는 욕망이 있는가 하면 우리를 점점 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거룩하고 신령한 욕망이 있습니다. 이 거룩하고 신령한 욕망의 저자는 원천적으로 성령님이에요. 그렇지만 이 욕망은 우리도 역시 거기에 참여하는 욕망이죠. 왜냐하면 우리에게 그런 욕망을 갖게끔 우리 안에서 작용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지만 우리를 배제하고 성령님이 작용하신다면 그것은 우리의 감정일 수 없잖아요. 그래서 결국은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물질이라든지 명예라든지 또 다른 성적인 욕망이라든지 이러한 것들을 품게 되면 영혼이 평형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결국은 인간이 그 욕망에 빠져서 죄를 짓게 되지만은 이 신령한 욕망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향한 갈망으로서의 이 욕망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우리로 하여금 죄에 흐르고 사악에 흐르고 이렇게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오히려 우리들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갈망에 가득 차 있을 때 물론 우리들이 아직까지도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에 부합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불안해하고, 그리고 안타까워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는 평정을 잃어버리는 것 같지만 그러나 사실은 궁극적으로 보면 그러한 간절한 성화의 갈망을 가지고 있을 그때가 사실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가장 큰 평정을 누리는 때입니다. 그래서 같은 갈망이라도 이런 육신의 갈망들은 우리를 끊임없이 흔들어 놓지만,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갈망은 우리로 하여금 높은 평정을 누리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향하게 만들어 주는 거죠.
차이점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 아주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 하나만 더 말씀드리자면 이 모든 욕망은 우리를 집중시키는 놀라운 효과가 있어요. 예를 들자면 여러분들이 ‘냉장고를 하나 바꿔야 될 텐데’ 하는 욕망을 갖게 되면 길거리에 수많은 가게가 있어서 냉장고만 눈에 들어옵니다. 차 바꿀 때쯤 되 보십시요. 온 길거리에 나가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차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 애를 시집을 보내야 될 텐데’ 그러고 보면 생전 쳐다보지도 않던 남의 집 총각들이 수없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욕망이 그런 것들을 관심사를 결정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욕망은 집중하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어요.
그래서 악한 욕망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주목하고 세상을 바라보게 만들지만, 신령한 갈망은 하나님을 앙망하도록 만들어 주는 거죠. 그래서 무엇이든지 집중하고 갈망하면 그러면 불안은 있게 마련이죠. 왜냐하면 갈망하는 사랑의 감정 자체가 그것과 합체하고자 하는 갈망인데 세상이 우리로 부터 멀리 있으니까 세상은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얻지 못했으니까 그 갈망이 생기고, 또 안타까움이 생기듯이 우리가 거룩해지고자 하나님을 갈망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이 다 된 것은 아니에요. 거기에서 오는 어떤 하나님과 교제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거룩한 갈망 차이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을 갖게 되고 그렇게 되는 거죠.
그러나 이제 놀라운 것은 이렇게 하나님을 갈망하고 그리워할 때는 우리의 마음이 눌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갈망하면 갈망할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그분의 손에 붙들려 살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고 해서 마음이 집중된 가운데 하나님 한분을 전심으로 앙망하고 의지하는 그러한 믿음생활을 하나님 앞에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영적인 생활의 모습이에요.
‘하나님 때문에 마음이 눌린다’ 이런 표현은 성경에 잘 안 나오고, 대게 눌리는 것은 뭐냐 하면 자기 안에서 발견한 자기의 죄, 혹은 자기 안에서 불현듯 발견하게 되는 커다란 욕망의 크기, 그것의 죄 됨, 혹은 어느 한 순간에 깜짝 놀랄 정도로 확 밀려오는 절망과 불안, 이런 것들이 대게 마음을 눌리게 하는 것들이에요.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많이 받고 변화되기 전에 성령의 조명이 있잖아요. 성령이 우리의 마음을 확 비춰주실 때 우리는 예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자기 자신의 죄를 보게 되고 크고 아주 놀라운 죄들을 발견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깊이 절망하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죄의 큰 크기를 발견하고 깊이 절망하게 될 때에 그때에 우리는 눌림을 경험하게 됩니다.
누른다는 것은 그야말로 압력을 가해서 우리로 하여금 정상적인 생명을 이어갈 수 없도록 누르는 것이죠. 그 때에 제일 경험되는 그 커다란 불편이 무엇입니까? 몸이 압사할 정도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면 목을 누른다든지 가슴을 누른다든지 제일 위협받는 곳이 호흡기능입니다. 숨을 쉴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이런 현상들을 우리들이 실제로 신앙생활하면서 경험합니다. 자기 안에 있는 죄를 발견하게 될 때에도 이렇게 눌리게 되지만 자기의 믿음의 크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큰 시련을 만나게 되었을 때, 어떤 절망 같은 것들이 밀려옵니다. 그때에 이런 것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경험하면서 이제 하나님 앞에 이 시인은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을 것입니다. 그랬잖아요. 땅 끝에서부터. 이게 이 당시에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세계의 생각은 이 세계 전체가 커다란 쟁반처럼 생각되고, 그 위의 하늘은 쟁반 위에다가 엎어놓은 플라스틱 바가지 같은 거라 이렇게 생각했다는 거죠. 하얀 투명한 바가지 같이. 땅 끝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쟁반처럼 있어서 물이 계속 흘러서 저 끝에서는 물이 계속 이렇게 떨어지는 평평한 곳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땅 끝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땅에서 떨어질 것 같은 위기 가운데 있는 절망의 가장자리, 한번만 더 비가 오든지 물이 쏟아지면 함께 끝없이 떨어질 그런 처지라는 것을 얘기하는 거거든요. 거기에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늘 평탄하고 안락한 길을 걸어가도록 만들어 주시지 않습니다. 사랑하실수록 그래요. 왜냐하면 내버려 두면 우리는 끊임없이 부패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소금을 치시든지 기름에 담가 놓든지 삶으시든지 말리시든지 그렇게 해서 식품을 보관하는 사람처럼 우리도 그렇게 다루십니다. 그 모든 것들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고 갈망하게 하시기 위함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절실하게 매달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간구하고 의지하면 그렇게 살아가게 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주님이 사랑하는 시인에게 그러하듯이 우리도 때로는 땅 끝에서부터 하나님 앞에 부르짖지 않을 수 없도록 때로는 만들어 주시는 거죠. 그래서 시인은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유의해 주시옵소서 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결국 우리가 의지할 바는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신자의 본분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