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베푸시는 은택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 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 주시나이다 주의 은택으로 년사에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초장에는 양떼가 입혔고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였으매 저희가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시 65:10-13).
어떻게 보면 군더더기와 같은 이 긴 노래를 65편 뒤편에다가 이 시인이 붙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65편의 구성을 찬찬히 살펴보면 아주 정교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그 시온으로부터 동심원을 그리면서 바깥으로 펼쳐져 나가는 전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자비로우심, 그 능력을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온의 하나님이 당신의 임재로써 자비와 사랑과 능력을 보이시고 그리고 언약백성들에게 그 모든 은택을 베푸시고 그리고 급기야 나아가서 이 땅에 있는 모든 자연만물까지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 능력 있는 인도를 받으면서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이 한편으로는 위대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며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당신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성경은 사중 내지는 오중 적으로 하나님이 당신이 만드신 이 세계를 향해 베푸시는 사랑을 부격으로 표시해요. 즉, 하나님이 당신이 만드신 이 피조 만물에 대해서 아버지이심을 보여준다는 거죠. 그 사중의 방식이라는 것이 뭐냐면, 제일 먼저 하나님은 가장 넓게 보면,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이 모든 만물에 대해서 아버지가 되시는 거죠. 그래서 지극히 선하신 성품으로 마치 아비가 자식을 돌보듯이 당신이 창조하신 세계와 모든 만물들을 돌보시는데 이것을 창조적 부격이라고 얘기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당신이 지으신 선인과 악인을 포함하는 모든 인류를 향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가지고 돌보시는 거예요. 이걸 가리켜서 인류적 부격이라고 그래요. 그런가 하면 세 번째 범주로 들어오게 되면 이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안에 있는 모든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부격을 행사하시는 것,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들은 신정적 부격이라 이렇게 표현해요. 신학적으로..그러면 이제 벌써 세 겹이 들어왔죠 그죠? 모든 창조물에 대해서, 인류에 대해서, 그 다음에 이스라엘에 대해서 들어왔잖아요. 그리고 이제 한 번 더 들어오게 되는데 이것은 뭐냐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당신이 구속하신 백성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거죠. 이거를 양자적 부격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을 양자적 부격으로부터 그 다음에 신정적 부격, 그 다음에 인류적 부격, 마지막의 창조 모든 세계에 대한 부격으로 하나님이 당신 사랑을 확장하시는데 이 모든 사랑의 근원이 뭐냐면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간에 아버지로서, 성부와 성자를 사랑하시고, 또 아버지로서 성부와 성령의 사랑을 받으시는 바로 그 삼위일체적 부격 그것이 그 모든 것의 핵심을 이루는 거죠. 그래서 가장 중심적인 삼위일체적 부격, 그 다음에 양자적 부격, 신정 국가적 부격, 인류애적 부격, 창조적 부격, 이렇게 해서 당신의 사랑을 이 모든 세계에 펼치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뭐냐면, 아버지의 이런 어머니를 닮은 부성을 가지고 당신이 창조하신 이 세계를 돌보고 살아가는 것이에요. 그러면 이것은 우리에게 아주 놀라운 동심원적인 적응을 갖는 거죠. 그게 뭐냐면 우리가 가장 많이 사랑해야 할 것은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마치 성자, 성령께로부터 아버지가 사랑을 받으시듯이 우리가 그렇게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심에 오고 그리고 거기에서 이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동심원을 확장해 가면서 마지막에는 악인을 포함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인류애적으로 펼치고 급기야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신 들에 깃든 한 포기의 풀, 그리고 발 아래 구르는 돌멩이 하나 까지도 그 창조주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돌보아서 그래서 가장 선한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기대하시는 삶이라 이런 이야깁니다. 그런 것을 하나님께서 펼쳐 보이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적당한 때에 비가 와서 그 이랑이 평평하게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이에요? 밭을 갈잖아요? 이랑이...그러면 옛날에는 관개 시설이 잘 안 돼 있으니까 대부분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의존하잖아요? 근데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대개 이른 비가 내리면 그 비로 씨를 뿌리고 마지막에 늦은 비가 내리면 그 비로 곡물이 마지막 결실을 하면서 햇빛을 받고 추수를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그것이 그 넉넉하게 비가 내려서 이렇게 흙이 있고 고랑이 있는데 그 고랑 사이가 물로 가득 매워져서 평평하게 되는 거예요. 그것은 곡식을 기르는 밭이 물 댄 동산과 같이 된다는 뜻이거든요? 그것은 최고의 기름진 상태를 의미하는 거죠. 걱정할 것이 없는 거죠. 그렇게 적절한 때에 하나님이 비를 내려 주시고 그렇게 내려 주시는 비를 하나님께서 그렇게 적절히 내려 주시고 그 내려주신 가운데 그것들을 잘 돌보고 가꾸어서 그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시게끔 그렇게 돌보는 것인데 하나님이 그렇게 자연의 모든 만물들을 잘 돌보셔서 그것들을 아주 결실케 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과 그리고 이 피조세계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러면 그렇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하나님이 잘 돌보셔서 그래서 풍성한 열매로 인간을 넉넉히 먹고 살게 할 때, 사람들 사이에는 다툼과 분쟁이 현저히 사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히브리어에 보면, 전쟁이라는 단어가 미르하마라는 단어인데 이게 떡이라는 단어에서 왔어요. 떡은 레헴이고, 전쟁은 미르하마에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의 생각에는 결국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한 투쟁이다..그런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실제로 흉년이 들면 민심이 흉용해지고 그리고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거죠. 먹고 살기 넉넉하고 부유하면 남의 나라를 침공할 생각도 안 하고 그리고 침공 받을 정도로 약해지지도 않아요. 그 뿐만이 아니죠.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먹고 배부를 때, 종들도 편안한 삶을 누리고 심지어는 그 수확의 소출을 먹으면서 모든 짐승과 그 다음에 야생동물들도 여유를 갖게 되는 거죠. 하나님께서 그런 하나님의 창조주적인 부격으로서 부성으로서 이 모든 세계를 돌보시는 거죠. 그것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서 그것을 해석할 수 있어야 돼요. 그 해석의 방식이 하나님 중심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되는 거죠. 예수님이 비유하신 가운데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그가 뭐라고 말합니까? 흉년이 들어서 곡식을 많이 거뒀는데 그 다음에 곡식을 더 이상 저장할 곳이 없어요. 한참 생각한 끝에 창고를 짓고 곡식을 잘 보관하자....이제 많은 수확을 거뒀으니 이제 먹고 즐기자....그리고 자신의 영혼에게 이르는 거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그것은 결국은 그 자신에게 그러한 풍년을 주시고 모든 것을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추호도 생각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 관련하여서 자기의 축복 받은 상황을 해석할 수 있는 마음이 전혀 없는 상태를 보여주는 거죠. 그것이 바로 멸망하는 사람들의 특성이에요. 우리들이 고난과 재앙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뜻을 생각할 뿐만 아니라, 풍요롭고 모든 것이 여유롭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을 때 하나님이 자신을 그렇게 형통케 하시는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이 주시는 그 풍성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어떤 경륜이 있으셔서 자신에게 주시는 것인지, 그것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 마땅한 감사를 드리고 또 경륜 속에서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그 모든 축복을 인해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본분이에요. 그래서, 주님을 진정으로 만나고 그리고 그 사랑과 은혜를 깊이 터득하게 될 때, 그 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그 모든 은총과 사랑을 교회 안에서 예배 드릴 때 뿐만이 아니라 교회 바깥에서 일상적으로 생활하면서 수많은 만남 속에서 심지어는 오늘 아침처럼 내리는 봄비 속에서도 하나님이 이 모든 만물을 향한 변함없이 신실하신 사랑과 그리고 그 큰 능력을 우리들이 발견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언약 백성들의 내적인 생활이에요. 그래서 우리들이 은혜를 많이 받으면 이런 해석의 능력이 현저하게 증진돼요. 그래서 어려움을 당할 때뿐만이 아니라 모든 일들을 형통하게 하실 때도 아주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나 같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수시로 발견하게 돼요. 그래서 그 분께 감사와 찬송을 돌리게 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은혜가 떨어지게 되면, 그런 해석의 능력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우리의 매일 매일의 일상 속에서 발견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그 큰 능력을 매일매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일상적인 변화 속에서 그것을 읽어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될 때, 그 때 어디든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들이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늘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믿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