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품에 있을 때
“너희가 양 우리에 누울 때에는 그 날개를 은으로 입히고 그 깃을 황금으로 입힌 비둘기 같도다.”(시 68:13).
갑자기 전체적인 문맥의 흐름을 깨면서 그러면서 앞 뒤 내용하고는 다른 내용이 들어와서 마치 삽입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시인은 여기에서 “너희가 양 우리에 누울 때에는 그 날개를 은으로 입히고 그 깃을 황금으로 입힌 비둘기 같도다.” 이 시인은 시를 쓴 사람이지만 그러나 우리들이 이 시편의 시를 전적인 시로 그렇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시인일 뿐만 아니라 이 사람은 선지자였어요. 그래서 학문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저는 시편에 나온 상당히 많은 구절들이 주님께서 시인에게 직접 말씀해 주신 직접적 전달에 의해서 기술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마 이 부분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오히려 이것은 시인이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이 신적 전달의 형태로 선지자의 입을 빌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직접 화법이라고 설명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비둘기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날개를 은으로 입히고 그 깃은 황금으로 입혔다.” 날개를 은으로 만들고 그 다음에 그 깃털은 황금으로 만들었다고 하니까 이것은 하나의 문학적인 비유지만 최고의 값진 보물로써 비둘기를 만든 것을 보여주는 거죠. 이 비둘기는 구약에서도 평화의 상징이에요. 또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새이기도 해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와 같은 형체로 임하셨던 것을 나타내심은 결코 우연이라고 말할 수가 없죠. 이러한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가장 존귀하게 그렇게 은으로 그 날개를, 그리고 깃털을 황금으로 입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평화를 주시고, 그리고 지극한 평화 안에서 이스라엘이 존귀한 나라가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러면 그렇게 수많은 대적과 원수들이 이스라엘을 에워쌌는데도 어떻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여전히 평화를 주셨을까? 사실 앞 뒤 문맥으로 보면 여기에서 이스라엘을 차라리 독수리로 묘사를 해야지 맞거든요. 그런데 가장 힘이 없는 짐승인 그 비둘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유하면서 양쪽에는 치열한 전쟁의 묘사를 등장시킵니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그러한 진리가 숨어있는 것이죠.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의 평화로운 상태는 하나님에 의해서 보전된다 라고 하는 것이에요. “천만인이 에워쌀지라도 나는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시인이 자기를 에워싼 그 모든 대적들보다 더 강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신뢰함으로 그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천만인이 자기를 에워쌌으나 하나님이 자기를 지켜주시기 때문에 자신은 오히려 안연할 수 있다고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이에요. 마찬가지로 수많은 대적들이 에워쌌기 때문에 오히려 이 시인은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이 자신들을 지켜주시는 그 샬롬을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수많은 대적을 이기는 진정한 힘이 하나님과의 평화로운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악인은 검불과 같고 그리고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지푸라기와 같아서 불타 버리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백성들, 삶의 뿌리를 하나님께 내리고 있는 사람들은 수많은 열왕들이 에워싸고 치열한 전쟁 속에 있어도 그들은 결코 두려워하거나 그리고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극한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그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에요.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언약 백성들이 이방의 나라를 정복하는 비결에 대한 암시도 내포하고 있어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라고 말입니다. 땅을 기업으로 얻기 위해서는 치열한 전쟁을 통해서 정복을 하든지, 돈을 많이 벌어서 사든지 그렇게 해야지 땅을 기업으로 얻을 수 있었던 때였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그래서 이것은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알고 어진 마음으로 사람들 안에서 살아갈 때 그때에 땅 끝까지 미치는 감화력과 사람들을 다스리게 하는 인격적인 승복의 능력을 보여주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질이에요. 이스라엘 나라는 무력과 전쟁을 통해서 자신의 영토를 넓혔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의 정복의 한 모형일 뿐이었어요. 그래서 이제 그 예언의 성취가 이루어진 지금은 더 이상 창과 칼로 이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사단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로 사람들의 마음을 정복하면서 세우는 나라에요. 정복을 하고 난 후에는 잔인한 보복이 뒤따랐지만 그리스도의 왕국은 복음으로 정복한 후에는 끊임없는 용서와 사랑의 일치를 이루는 나라에요. 이러한 모든 평화의 한복판에는 다름이 아닌 하나님과의 샬롬이 존재하는 것이에요. 바로 그 일을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름을 받은 공동체임을 오늘 성경은 보여주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그 큰 사랑과 놀라운 은혜를 하나님께서는 매순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죠. 그 모든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을 합당한 방법으로 정복하기 위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요.
그러면 언제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존귀해졌는가?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가 양 우리에 누울 때에” 그랬습니다. 갑자기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양이라고 부르시고 양 우리를 말씀하시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이 강하게 해 주시는 나라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만들어준 나라임을 보여주는 것이죠. 양이라는 말 자체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그러한 백성이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의미에요.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 우리에 누울 때 하나님이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그 은혜의 품 안에 있을 그 때에 이스라엘은 가장 존귀해질 수 있었던 것이에요.
그래서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자신이 존귀해지는 법을 압니다. 그 존귀는 이 세상에서 박수를 받고 많은 사람에게 갈채를 받고 혹은 눈길을 끔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의 영광은 그 놀라운 하나님의 통치와 사랑 안에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를 잘 지킬 때 그가 가장 존귀하고 아름다운 것이에요. 물론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똑같은 그릇으로 사용하려고 하시지는 않아요. 어떤 사람은 금그릇처럼 귀하게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질그릇처럼 덜 귀하게 사용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 모든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영광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영광의 차이 때문에 오히려 그들 모두를 아름답게 보시고 그래서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 당신이 창조하신 이 세계에서 아름다운 존재로 여기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비록 내가 역사의 주연을 맡고 있지 않아도 그 주연 옆에서 빛이 흐린 조연이 됨으로서 하나님 앞에 전체의 연극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는 충분히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인 것이에요. 물론 소망을 이 세상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식의 조연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만일지 모르지만 자기의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면 결국은 이 세상에서 더 귀한 그릇이든 적은 그릇이든, 크게 쓰임을 받는 것이든 작게 쓰임을 받는 것이든, 더 빛나는 별같이 쓰임을 받든 흐린 별처럼 쓰임을 받든 그것은 결국 모두 하나님 당신의 뜻을 이루는데 이바지하기에 각자 각자가 없어서는 안될 삶의 모양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죠. 그래서 밝기와 크기와 그 모든 모양이 이 세상과 관련되어 있을 때는 차이가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지정하셔서 우리에게 섭리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한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 우리에 누웠을 때에, 주님의 품안에 있을 그 때에 그 안에서 넉넉히 쉼을 얻고 있을 그때에 가장 존귀한 존재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장 큰 본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우리가 있어야 할 그 자리를 찾는 것이에요. 넘치지도 말고 모자라지도 않게 주님이 지정하신 그 곳에서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은혜 안에서 온전해 가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러면서 우리가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를 드러내게 될 때 하나님은 거기서 그 사람을 가장 존귀하고 영광스럽게 만드셔서 그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시는 것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