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근원에서 나온 자들
“이스라엘의 근원에서 나온 너희여 대회 중에서 하나님 곧 주를 송축할찌어다 거기는 저희 주관자 작은 베냐민과 유다의 방백과 그 무리와 스불론의 방백과 납달리의 방백이 있도다”(시 68:26-27).
오늘 읽은 이 본문은 이제 그렇게 전쟁중에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승리하게 하시는 경험을 노래한 다음에 그러면서 그런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복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근원에서 나온 너희 들이여 라고 노래합니다. 원래 이스라엘 이라고 하는 것은 그 두가지 그를 함께 이야기 하고 있죠. 멀리보며는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 이잖아요. 그죠. 그래서 그 야곱이 계명 하게된 사건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밧단아람에서 돌아와서 형을 만나고자 할때에 커다란 두려움이 앞섰잖아요. 형에게 그렇게 잘못하고 축복을 가로챘으니깐 말이죠. 그래서 다들보내고 얍복강가에서 혼자 하나님앞에 기도하게 되죠. 여기서 천사와 더불어 씨름을 하는데 결국은 그것이 자기의 아집인 것을 깨닫고 울며 회개하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 이름 이스라엘 이라고 바꿔 주시는 거거든요. 원래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이 하나님과 겨뤄서 이겼다 이 뜻이거든요. 하나님과 겨뤄서 이긴게 뭐에요. 결국은 하나님앞에 자기 방식대로 살던 삶에 대해서 회개하고 하나님앞에 뉘우치는 그 장면이잖아요. 그래서 결국은 회개하는 자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보다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찾아오셔서 그를 용서하고 그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를 이야기 하는 거거든요. 이것을 가리켜서 언약적 은혜라고 이야기 하는 거에요. 이렇게 이야기 하면 이해가 아주 쉬울거에요. 우리들이 자식들을 기르잖아요. 자식들이 어떤 때는 부모마음에 잘 어울릴 때도 있지마는 젼혀 부모마음에 어울리기는 켜녕 부모에게 고통을 줄 때가 있잖아요. 그때에도 자식은 부모를 버릴 생각을 해도 부모는 자식을 버릴 생각을 하지 않잖아요. 그게 바로 자녀와 부모의 관계잖아요. 그러니깐, 하나님이 그런 언약관계를 왜 유독 이스라엘백성들과 맺으시니냐 이건 하나님의 사랑이에요. 그런 언약관계를 기초로 놓고 보면서 그것이 결국은 또다른 의미로서는 이스라엘백성 전체가 되는 거죠. 뜻이 두가지로 나뉘어 지는 것이 아니지 않겠어요. 왜냐하면 이스라엘 그 자체가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의 후손이기 때문이지요. 그런 이스라엘백성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의 근원에서 많은 자손들이 나오잖아요. 그런 자손들은 너희는 대회중에서 하나님 곧 주를 송축할 지어다. 그들이 모두 모였을 때 너희들은 그 하나님을 송축하고 찬송하거라. 주님을 경배하거라, 그렇게 노래하고 있는 거에요. 그러면 그렇게 이스라엘 근원에서 나온 사람들이 대외중에서 하나님, 주를 송축하여야 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바로 그때에 맺으신 그 언약을 지금도 계속하고 계시고 그 후로도 그들은 수없이 국가적인 전쟁을 겪어야 됬지만,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셨고 그런 전쟁과 같은 삶을 개인의 차원에서 끊임없이 살아가지만, 거기에서도 하나님이 늘 함께하셔서 그래서 당신의 크고 놀라운 뜻들을 보여 주신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송하라는 고백이 나오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이제 거기는 저희 주관자 작은 배냐민과 유다 방백과 무리와 스블론의 방백과 납달리의 방백이 있도다. 나와요. 저는 아직도 왜 열두지파가운에 이렇게 한 네지파 정도만 거론이 되었는지, 적절할 해석을 전 잘 못찾겠어요. 그렇지마는 이제 분명한 것 하나는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지파들을 거론을 하면서 제생각에는 지도자들을 거론하는 것 같아요. 여기에 방백이라는 말이 계속나와요.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런 지파들의 이름을 거론을 하면서 그 지파는 각각 달라도 그 사람들이 각각 이스라엘의 근원에서 나온 후손들이고 하나님의 언약관계에 대한 충실한 주님의 태도는 관계는 이렇게 어느 한 지파속에서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파속에서 나타난 거죠. 유다가 중요한 지파이긴 했지만, 그러나 작은 지파인 베냐민에게도 나타났고 그리고 스불론의 방백과 납달리방의 방백에게 까지도 나타나서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는 것, 언약관계 안에서 그들을 지키시고 그들을 붙들어 당신 앞에서 살게하시는 모든 것들을 주님이 친히 보여주셨던 거에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들을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행하시면서, 그러면서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셨을까 는 생각이듭니다. 그게바로 그들의 모든 삶에 개입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이 자신들은 혼자이고 하나님이 자신들을 지켜주신다고 하는 확신들이 없을 때 조차도 그 때 조차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붙들어 주셔서 당신을 위해 살도록 만들어 주시고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것이죠. 인간은 사람이기 때문에 약속을 어기기도 하고 그리고 식언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하지만, 주님은 인생이 아니시기 때문에 후회도 없으시고 식언도 아니하시고 그리고 당신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끝까지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신앙의 관권은 바로 그렇게 변함없는 하나님앞에 자신도 어떻게 반응하면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주님한분을 굳게 붙들고 주님의미하며 살아야 될것입니다. 잘못했을 때에는 돌아가서 용서를 빌고 주님의 은혜를 다시 받고 바르게 살아가는 대도 힘이 없을 때에는 주님께 간구하여 그렇게 바른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으면서 그렇게 살아갈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야할 바인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