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소서
나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고 돌이키사 나를 위로하소서. (시 71:21)
녹취자: 이현정
이 부분은 번역이 많이 잘못되지 않았는데 조금 다릅니다.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당신의 나의 명예를 더욱 크게 해 주십시오 " 원래는 '겟올라티'라고 해서 나의 위대함 나의 큼 이렇게 됩니다. 나의 큼을 더욱 크게 해 주십시오 입니다. 그래서 의역을 하면 당신은 나의 명예를 더욱 증진시켜주시고 돌이키사가 아니라 다시 한번 나를 위로해주시옵소서"이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구절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이 시인이 받고 있는 정신적인 수치감 무슨 뜻인지 아시죠. 그러니까 원수들이 에워싸고 자신을 비방하고 많은 모욕을 가할 때 밥을 못 먹고 옷을 못 입고 하는 그런 종류의 물질적 고생이 아니라 부끄러움과 수치가 얼마나 컸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윗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가 왕으로 있을 때 나라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백성들의 존경과 신망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큰 섭리가 있었지만 그의 왕국에 압살롬의 반란이 일어나고 황망하게 예루살렘에 법궤를 남겨둔 채 망명의 길을 떠나야했던 그 때 모욕과 부끄러움이 가득했습니다. 자기를 존경하고 사랑하던 많은 부하들이 등을 돌리고 자기의 목숨을 노리는가 하면 백성들의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비난했습니다. 그 때에 한때 사랑을 받고 백성들에게 존경과 신망을 받던 사람이 겪었을 그 수치와 마음의 고생을 우리가 어떻게 모두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은퇴했지만 이름만 대만 잘 아는 코미디언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사람을 만났는데 그분의 간증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인기가 하늘을 치솟다가 어느 날 갑자기 팬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차갑게 대했을 때 죽음 밖에는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주님을 만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런 것 이지요. 그 정신적인 수치와 부끄러움을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커다란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면서 시인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빌었던 것은 이렇게 하나님이 나를 윈수들의 조롱과 악인의 박해에서 건지시는 모든 과정을 통해서 나의 명예를 더욱 증진시켜주십시오.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나의 부끄러움과 수치를 영광으로 바꿔 주십시오. 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시편을 읽을 때 마다 항상 새겨 두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면 경건한 언약백성들이 생각하는 바는 자신의 명예와 하나님의 영광이 동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사람이 탐욕이 있고 하나님 밖에서 영광을 구해보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면 자기의 이름을 내는 것과 하나님의 영광이 충돌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만약에 그 사람이 하나님의 법도대로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받는 곳에서 자기혼자 영광을 받는다는 것을 불가능 합니다.
여러분 신앙 없는 사람이 목회자를 존중해 주는 것을 존중해 해주는 것을 본적 있습니다. 발톱에 때만큼도 안 알다가 그러다 그 사람이 깊이 회심하고 될 때 그 때에 그가 정말 목회자를 존중히 여기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인들은 자신의 명예와 하나님의 영광이 아주 떼어 놓을 수 없이 연결이 되어있다 이렇게 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시인이 나의 명예를 더욱 증진 시켜주십시오.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시인이 끊임없이 수치를 당하고 멸시를 당했던 그 모든 것들을 경험하고 보면서 이렇게 자신이 악인들의 멸시거리가 되고 조롱거리가 된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나의 명예를 다시 증진시켜주십시오 하는 이 탄원은 단순이 자기를 높여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많은 악인들 속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대한 태도가 바뀜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바뀐 태도를 이들이 입증해줄 수 있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 백성의 도리입니다.
하나님의 명예와는 상관없이 나 자신을 위해서 알려지고 높여지고 드러나기를 원하는 것, 이런 것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기쁨이 된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시인은 이런 관점에서 자기의 명예를 더욱 높여 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돌이키사 나를 위로 하소서. 히브리어 성경에는 다시 한번 혹은 반복해서 나를 위로 해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어디로 멀리 떠나셨기 때문에 하나님보고 돌아오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예전에도 나를 명예롭게 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셨던 하나님. 오늘도 나를 명예롭게 하시고 다시 영광스럽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탄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들에게 위로가 되십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기 때문에 위로 받지 못하고 사는 것이지 하나님을 앙망하면 어느 때에든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위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확인하심으로서 우리에게 위로를 베푸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시 하나님께 사랑을 받게 하심으로 위로를 베푸십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환경의 변화 속에서 고통을 받던 우리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환경을 이끌어주시고 위로해주시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는 어루만지시는 중요한 비결입니다. 이 시인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위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사람에게 구하고 시련 속에서 인간들에게 자비를 구하고 도피처를 찾는 것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부패하게 만들고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품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이 마지막 피난처인 당신께 피하고 이 세상에서 많은 고난과 시련을 받았다 할지라도 주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힘입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시인에게 위로자가 되셨던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에 에워싸임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시인에게 위로가 되었고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은총의 표증들은 원수들은 부끄럽게 하고 이 시인은 영애롭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고난 속에서 자신의 위로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시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연주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에 연주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공명되게 하시고 우리의 삶속에서 아름다운 행동, 덕스러운 우리의 실천들을 통해서 가락처럼 울려 퍼지게 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좋은 연주자일수록 정말 연주를 해야 될 시간이 오면 그 모든 현을 다시 조율하기 시작합니다. 늘어졌던 실들을 팽팽하게 당기고 너무 팽팽한 실들은 늘어뜨려 주어서 그 현들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도록 조율해 줍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연주하실 때 아름다운 곡조가 울려 퍼지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마음을 조율하지 못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조율하십니다. 때로는 고통을 통해서 우리의 줄을 팽팽하게 하시고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심으로 고난과 시련으로 팽팽해진 우리의 어떤 마음의 줄들은 늘려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으로 다섯 손가락을 삼아 연주하실 때 아름다운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겉 사람은 날마다 후패합니다. 어제도 장례를 다녀왔는데 우리의 인생이 살아있다는 것은 그냥 살아있다는 것뿐이지 우리의 내일은 하나님의 수중에 있습니다. 얼마나 인생을 길게 사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보람일수는 없을 것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날 동안에 주님의 손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마음을 연주할 때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한 가락을 낼 수 있도록 주님이 우리의 마음을 연주하실 때 그 가락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이 세상에 울려 퍼질 수 있도록 그렇게 연주되기 위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고난도 필요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 한가운데를 통과하게 하십니다.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배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의 실망.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될 줄 알았던 환경으로부터 기대에 어긋나는 고통을 받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조율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마음이 자신의 아픔과 고통, 시련과 괴로움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신을 조율하신 다음에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삼아 가장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실 수 있도록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마음에 오셔서 그래서 당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서 우리의 마음을 연주 하십니다. 굽은 마음을 펴고 뒤틀린 마음을 올바르게 해야 합니다. 심사가 꼬이고 마음이 어그러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마음속에 아름다운 가락이 나오도록 연주되는 것을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찬양)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를 바라볼찌라.”
이렇게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불러 당신 앞에서 살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명예와 영광은 주님의 그것과 결탁되어 있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을 때 마다 주님이 모욕 받는 곳에서 우리의 이름이 높아지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명예가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곳에서는 우리들이 충분히 높아지기를 원하고 그래서 우리를 통해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사모합니다. 오늘도 주님만으로 위로를 삼으며 살아가던 이 시인을 본받아 여러분의 모든 위로와 참된 사랑이 오직 주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깊이 기억하고 우리의 삶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삶의 변화들을 통해 어린아이처럼 주님을 붙들고 그 분께만 위로와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