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을 세우신 하나님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양 지키는 자 중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사
그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능숙함으로 지도하였도다”(시78:70-72)
녹취자: 김유진
78편의 끝부분인 이 구절에서는 다윗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67-69절 어제 본 본문에서 요셉과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고 유다지파와 시온산을 택하셨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결국 역사의 전개를 보면 마지막에 왕국에 분열된 이후에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를 섭리하셨는지 보여줍니다. 그러나 시간관념을 사상하고 보면 하나님께서 마치 당신의 백성들을 선택하실 때, 영원한 작정을 따라서 이 일을 이루시는 것처럼 아직 왕국이 갈라지기 전에도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장막을 버리고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고 당시에 보기에 가장 강건해 보였던 에브라임을 버리고 오히려 많은 이스라엘들이 아파하던 유다지파를 택하시고 시온 산을 당신의 택하신다는 작정을 보여줍니다. 그런 점에서 여기에 나오는 다윗의 이야기는 왕국분열 이야기를 하다가 거꾸로 돌아간다고 할 수 도 있고, 또는 하나님께서 왕국 분열을 내다보시면서 앞으로 전개될 모든 일들의 작정을 이야기하신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은 여기서 다윗의 이야기를 합니다. 다윗은 양을 치고 기르던 목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취하사 그의 백성인 야곱, 즉 이스라엘-북왕국을 가리키기도 하지만-은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애칭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기르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다윗은 -사울이 있기는 했으나-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왕의 모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하나님이 마음에 맞게끔 다스려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는데 이바지 하였는데 그 두 가지 자질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렸습니다.
첫째는 ‘자기 마음에 완전함으로 이 백성들을 길렀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완전함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순수함’을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꽉 찬 상태. 예를 들어 물에 물 아닌 것이 섞이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절대적인 의미에서 완전이라기보다 순전함을 의미합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 앞에 어떠하였던가 하는 것은 성경에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그는 하나님이 마음에 합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뒤따라오는 자 혹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자라고 나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나오는 ‘완전함’은 하나님의 마음을 다윗이 헤아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그 백성을 돌보고 이끌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의 지도자에게 원하는 바입니다.
모든 사람이 지도자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가장 중요한 자격이 마음의 순전함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지도자로서 살아가고 사람들 앞에 나타날 때는 남다른 사람으로 나타나야하지만, 사실은 그는 여러분과 꼭 같은 형제들 중 한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특별히 부르사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게 하시고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는 매우 특별한 자질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이 마음의 순전함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에 보면 다윗이 바로 그런 완전함으로 마음의 순전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고 이끌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보고 살아가도록 만들어주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섬김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커다란 은총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이 직접 이끌지 않고 다윗을 세워 그 마음의 완전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의 뜻을 따라서 그 백성들을 기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한 교회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의 마음이 지도자를 통하여 전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이 지도자를 통해 전달되고 이끌어지는 교회 생활이야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생활입니다.
두 번째,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던 마음의 자질 다음으로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실제로 그들을 지도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손’이라는 단어는 하나의 비유입니다. 성경에서 손은 능력을 가리킵니다. 이사야 53장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또는 ‘나의 의로운 오른 손이 너를 붙들리라’여기서 팔, 손 등은 힘이나 선택이나 능력을 가리킵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보면 다윗은 이스라엘을 지도할 힘과 통치의 기술을 아울러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음의 순전함은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 하나만으로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하면 그 마음 가지고 열심히 신앙생활하면 됩니다. 지도자는 그 위에 능력과 실제로 하나님의 맡기신 뜻에 따라 백성들을 인도할 수 있는 실제적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능숙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도하게 하셨습니다. 예전에는 양들을 치던 목자가 이제는 그 마음의 완숙함으로 자신의 능숙함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최고의 축복을 주시어 이스라엘을 다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지도하게 하셨습니다. 결단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을 의지하도록 다윗을 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훌륭한 다윗의 영도력 아래 나라를 발전시키면서도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에 있어 모본이 되어야했습니다. 다윗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동안에는 하나님께 마음을 합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지만, 그 마음을 버릴 때에는 자신도 깊은 영적인 침체 속에 미끄러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다윗의 치세가 중요한 이유는, 다윗의 치세에서 오는 샬롬의 구조가 마지막 육적 이스라엘 왕국이 무너진 후,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즉, 영적 이스라엘의 통치를 미리 보여주는 모본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의 치세 아래에서 그의 마음에 완전함으로 길림을 받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지도받았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영적인 이스라엘의 교회의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완전하심으로 자기 백성들은 길림을 받고 그리스도의 손의 능숙함으로 지도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시편 78편 장대한 서사시적인 노래는 여기에서 끝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윗을 보내어 태평의 치세를 이루고, 하나님과 화목한 나라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도 화목하고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가 강물처럼 흐를 수 있는지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차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떨지 보여주는 소중한 소재가 되었습니다. 다윗의 시대는 끝나고 이스라엘 왕국은 하나의 밀알처럼 썩어서 사라지고 그 실체인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미 이 세상에 임하였고, 임한 그 나라는 완성을 향하여 나아고 있는 중입니다. 그 완성에 이르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종자 씨로 교회를 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역망적으로는 다윗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치할 때 영광스러운 모습을 역망하며, 앞으로는 이루어질 실체로서의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전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적인 실체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사랑의 질서가 하나님을 향해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그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입니다. 그 나라는 사랑의 질서가 왜곡되지 않고 가치의 순서에 따라 사랑의 질서가 정해집니다. 주님의 정해놓으신 교회와 왕국의 질서들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되 일체의 억압이나 강요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하고 꾸밈없는 사랑 때문에 일치를 이루어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따르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불완전한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교회의 질서,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를 따라 살아가는 것은 미래의 완성될 영광스런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임을 입증하는 훌륭한 시금석이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는 완전하신 하나님이 세우신 모든 사람도 완전해질 것이며, 모든 사람이 완전한 영화의 상태에 들어가 어떤 불순물이나 찌끼도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겠기에 그 순수한 마음속에서 사람들도 일치를 이룰 것입니다.
그러나 종자씨로 택한 이 교회는 아직까지 공중권세 잡은 자들이 이 세상의 죄악을 상당히 주관하고 있고 비록 하나님이 그들을 괴멸시키셨으나, 아직까지 그들은 남아서 여전히 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그 죄에 부분적으로 감염되어 잔존하는 죄가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미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하나님의 생명이 흐른다는 점에서는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의 요소는 가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순전하게 되지 않았다는 면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만큼이나 세상 나라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당신의 교회에 진리와 생명을 주시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깊이 순종하며 자신을 꺾고 순종하며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교회에서 제일 먼저 배워야할 것은, 어떻게 다윗이 하나님의 사랑하신 것처럼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셨는지를 생각하며, 제일 먼저 교회 안에서 사랑을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오셔서 ‘네게 단 한 가지 소원이 있으면 말해보라. 내가 그것을 이루리라.’고 하실 때, 우리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사랑 그것을 나에게 충만히 부어주셔서 당신을 따르게 해주십시오.’라고 구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구하게 되는 모든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있을 때만 필요한 것입니다, 심지어 '내 남편의 건강, 우리 부모의 장수, 우리 아이들의 형통함'을 구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면 더 이상 시집가고 장가가지 않고 우리의 가족도 따로 없이 모두 하늘에서 한 가족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 기도제목조차도 이미 한계성과 한시성을 가진 것으로 영원한 기도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한없이 많은 것을 주셔도 그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이 한 가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지 않으면 다윗조차도 하나님 앞에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한 회원이 되어 지체로 살아갈 때 제일 먼저 배워야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랑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배워야할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따라 순종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명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실제적인 자기복종의 삶이야말로 이 불완전한 이 세상의 질서 속에 섞여있는 교회 안에서 이 세상을 살지만 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유일한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삶을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배우기는커녕 신앙 안에서 사랑을 배우기보다는 신앙의 이름을 자기의 욕망을 확장하는 것을 배워 예수조차도 이 세상의 영달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을 겸손히 사랑하고 자신을 티끌같이 낮추기 보다는 오히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하고 신앙 안에서 자신이 떠받들어지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삶을 사람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순종의 삶은 또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순종에 관해서 듣기는 좋아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위해 자신 안에 남아 있는 모든 질서들을 아직까지 지지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질서조차도 자기의 마음의 질서에 맞지 않으면 어린 아이가 길거리에 주저앉아 먹던 것을 팽개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고집을 피우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질서들도 무시해버립니다. 그런 것들이 어떻게 신앙이라 말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됨으로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데 이바지할 수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 앞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깊이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일평생 사랑을 배우고 자기복종을 배우는 사람들이 되어, 여러분을 구원하시고 그리스도의 목양을 받으며 그의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능숙함의 지도하게 하신 것들이 하나님의 위대한 영적인 왕국인 -이스라엘이 아닌-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데 티끌만큼이라도 이바지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편 78편을 끝내면서 우리가 받는 도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