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파하소서
“영구히 파멸된 곳을 향하여 주의 발을 옮겨 놓으소서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나이다”(시74:3)
녹취자: 이병두
주님의 백성을 기억해 달라는 기도를 2절에서 드린 후에 3절에서는 주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기억되지 않으면 안되었던 그 모든 시온의 상황에 대하여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탄원을 드리고 있습니다.
‘영구히 파멸된 곳으로 주의 발을 드십소서’ 라는 것은 ‘다른데로 가지 마시고 이쪽으로 오시옵소서’ 하는 정도의 뜻입니다. 우리가 발걸음을 떼어 놓을려면 이렇게 발을 들어야 발걸음을 떼어 놓습니다. 그런 뜻으로 ‘발을 드십소서’ 라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이쪽 방향으로 길을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뜻입니다. 그리고 ‘영구히 파멸된 곳으로’라는 것은 이 시온의 형편이 얼마나 비참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악한 자들에 의해서 유린된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구히’라고 되어 있는 구절은 저의 생각으로는 ‘영구히’라고 번역하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혹은 ‘파멸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바로 그 땅으로 주님이 발걸음을 옮겨 주시옵소서’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리로 와주십시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리고 악한 자들에 의해서 시온과 성소의 파괴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주며 인간적인 눈으로는 그것들이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시인이 하나님께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대안은 하나님 자신이 발걸음을 그곳으로 옮겨주시는 것이라고 못박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일들에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일로써 일을 처리하거나 일로써 그 일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서 시인이 말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일이나 하나님의 영광에 관계된 일은, 일로써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거기에 와주시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대안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성소가 유린되고, 시온이 황폐하게 된 것을 해결하시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하나님 자신이 바로 그 시온에 오시고, 그 성소에 오셔서 당신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것 이외에 다른 일이 대안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늘 지키시는 시온과 언약이 깃들어 있는 예루살렘과 당신의 임재를 약속하신 성전이 더럽혀지며 파멸되고 황폐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그것은 먼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함께 살아가면서 죄짓고 악을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그런 황폐함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당신과의 영적인 관계를, 눈에 보이는 언약의 땅의 질서들을 통해서 그들의 영적인 밤이 어는 경점에 와 있는지를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시온이 황폐하게 되고, 성소는 유린되고 예루살렘에는 커다란 위기가 찿아 왔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고 돈을 모아서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소와 관련된 것들을 정비하라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건축학적인 접근이지 신학적인 접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나 하나님의 약속이 깃들여 있는 시온과 예루살렘성의 온전함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주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그들을 뽑아 세우셨을 때 의도하신대로 하나님 앞에 그러한 백성들이 되고, 그런 백성들에게 합당하게 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만이 시온과 예루살렘과 성소가 제대로 서 있는 것입니다.
어제 설교드린 바와 같이 우리 인간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의 성소를 지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원수들로부터 거룩성을 보호하고, 한편으로는 그 성소의 거룩성을 확장해 나가는 사명이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장기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원수들의 파멸을 보면서‘이 파멸된 곳으로 당신의 길을 잡으시옵소서’라고 하는 이 간절한 간구는 결국, 원수들이 파멸하고 간 것을 바로세우고, 다시 이 시온과 성소가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이 일에 대한 대안이 ‘주님이 직접 여기에 오시옵소서’하는 기도입니다. 결국, 그것은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그 뜻이 이루어지고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의 구약적인 전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여호와여! 주는 하늘을 가르시고 이 땅에 임하시옵소서’라고 노래했던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인이 이야기하는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나이다‘라고 하는 것은 성소를 더럽히고 파멸된 장소로 만들었던 그 끔찍한 악행들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침공을 두고 이 시를 쓴 것이라고 한다면, 그들이 와서 성소의 모든 기명들을 뜯어가고 성소를 훼파한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을 행하였는데 이런한 악에 대한 대안이 ’주님께서 이 상태가 개선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이 파멸된 곳으로 주님이 발을 드시옵소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모든 파멸과 문제들을 해결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탄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이 깃든 이 시온이 이렇게 파멸되고 성소가 더럽혀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심으로써 하나님을 믿는 여호와의 종교가 비록 율법에 나오는 제사와 성소에 관한 규례들을 주께서 엄히 명령하셨고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시지만, 그것은 성소와 하나님의 율법에 자동적으로 매달인 그런 힘 있는 약속이 아니라, 언약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게 사는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성소의 영광과 축복이 있다’라고 하는 여호와 종교의 영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과 싸웠던 ‘아벡의 전투’를 기억할 것입니다. 전쟁에 불리해진 이스라엘은 법궤을 앞세워 전쟁에 나갔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기 때문에, ‘이 법궤를 메고 나가면 하나님도 따라오실 것이다‘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보기 좋게 패하고 법궤는 원수들의 손에 빼앗겨 버렸습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굉징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능력이 종교적인 의식이나 법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영적이고 도덕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법궤을 가지고 나아갔을 때에는 전쟁에 졌는데, 오히려 그 법궤을 빼앗긴 상태에서 ’이제는 법궤까지 빼앗겼으니 하나님이 완전히 우리를 떠나셨다‘라고 생각할 때, 하나님 혼자 기적을 일으켜 그들에게서 법궤가 돌아오게 하신 사건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똑바로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의 일생은 자신이 이 세상에 살면서 주님을 섬기는 것이, 주님의 성소의 영광에 이바지 하고 주님의 거룩한 시온의 번영과 부흥에 어찌하든지 이바지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신자의 가장 중요한 직무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에게 있어서 개인적인 삶이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저런 행위를 하고 이런 저런 태도를 가지고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에는 개인적인 일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진 하나의 공동체로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우리에게 있어서 개인적이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든지 우리의 영혼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심지어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무엇으로 봉사하든지 간에 그것들은 모두 성례전적으로 공동체에 봉헌이 되어, 어떤 사람들의 행동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데 이바지하고, 어떤 사람들의 행동은 하나님의 교회를 흠 있게 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교회를 파멸하는데 이바지합니다. 항상 죽을 때까지 이 사실을 기억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인간으로 태어난 그 사실을 인정하는 한 언제나 ‘나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져 있고, 나는 교회의 일부다‘라는 생각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끊임없는 연합 속에서 자신의 한 인간으로서의 소명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고, 한 신자로서의 소명은 바로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주님의 성소의 거룩함을 지키는 자들로 소명 되었다고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과연 오늘날 흩어진 많은 보편 교회의 성도들 중 그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빌며 그리스도의 몸을 자신의 몸처럼 여기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과연 오늘도 어떤 사람들이 시온산을 생각해 달라고 하나님께 빌고, 주의 성소가 파멸된 것을 인하여 하나님 앞에 안타까워하며, 주의 성소가 원수들에 의해 짓밟힌 것 때문에 하나님께 탄원하고 호소하는 자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모두 이기적인 욕심에 사로 잡혀 각기 자기의 안목에 옳다고 생각하는 소욕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들의 하나님의 성소와는 상관이 없는 이런 삶의 태도들은 결국, 영원한 것들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것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앙망하며 주의 거룩하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주의 교회가 그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교회가 되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끊임없는 평화와 합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화)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국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군인들이 하루빨리 이 전쟁에서 이기고 나라를 되찾고, 자기 나라의 백성들을 이 비참한 전쟁에서 구원해 내야 된다는 일념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다툼은 거의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고, 나머지는 그 핵심적인 가치에 종속되어야 하는 가치입니다. 만약 군인이 이런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 의견이 서로 달라도 분쟁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전쟁을 함에 있어서, 내가 지위가 무엇이며 어떤 자리를 차지 할 것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결국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분쟁과 성소가 황폐해진 상황에서도, 끝없이 야기되고 있는 사람들 속에 있는 끊임없는 분열은, 결국 교만과 이기심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교회가 교회답게 되는 것은, 인간이 애써 노력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윤리적으로 반응하며, 은혜를 받으면서 주님의 교회는 올바로 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행하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갱신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자신이 그 교회에 계신 것과 그곳이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장소와 구별되는 됨으로써, 다른 장소에서는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줄 알고 살았다가도 바로 그 장소에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며, 주님 앞에 자신의 중심을 바라보며 참회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하나님 영광을 갈망하며 사는 삶의 변화들이 일어나게 될 때에 비로소 시온의 영광이 있는 것이고 예루살렘에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교회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주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나타나도록 아버지 앞에 빌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